#4. 이유
깊픈을 시작하게 된 이유에 대해 개인적인 이야기는 이미 했지만,
직업으로서 음식을 대하는 사람의 이유가 또 있다.
본질적인 것에 대한 탐구.
그 탐구의 영역에서
나의 뿌리를 찾는 것은 나의 역사를 분해하고, 분해해서 나열하고, 그걸 재정립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방식으로 메타인지를 시도해야 하는데, 나의 삶에서 나는 꽤 여러 번 이방인으로 존재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 메타인지를 지속했다.
그 과정에서 넓게는 인종을, 성별을, 그리고 국적을 받아들였고, 내가 태어난 사회의 폭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어떤 차등적 삶을 살 수 있게 되는지를 이해한다.
문화에 따라 가치관이 정립되는 방식이나 잘잘못에 대한 기준도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고, 그 덕분에 어느 곳에서든 내가 나로 존재하는 법을 어렴풋이 눈치채게 된다.
그 이야기를 전부 차치하고 내 어릴 적, 직업인으로 우리 한식을 바라봤을 때 우리 음식은 매력이 없게 느껴졌다. 그랬기에 해외를 갔고, 우리 음식이 아닌 남의 음식을 배워보고, 그 과정과 시스템을 경험해 보았다.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의 특성에 따라, 또 조리 과학과 기술의 최첨단을 달리는 곳의 근무자들의 성향에 따라, 문화의 흐름에 따라 어느샌가 일본음식이 트렌드였다가 그 트렌드가 프랑스 음식에 접목되거나, 또는 아시안 음식에서 자주 사용하는 스파이스들과 조리방식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지켜보니 재료를 다루거나 사용을 결정한 모든 것들이 한, 양, 일, 중식 등의 일반적인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식이 매력이 없는 게 아니라 대중음식 시장에서 경쟁력 있게 판매할 수 있는 제품 또는 상품의 제약이 있더라는 것이다. 한국 음식은 다 빨갛고, 다 조미료 쓰고, 된장 아니면 고추장이네.
가 아니라, 그 국내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가격의 제품의 경쟁력이 떨어졌을 뿐이다.
그래서 시작한 첫 번째 프로젝트 "안암(ANAM)"은 재료 해석에 국가적 제약을 둘 게 아니라, 실제로 그 재료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두고 직업인으로서 결정을 거쳤고, 두 가지 방식으로 조리한 부드러운 돼지고기,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국밥을 콘소메(consommé)와 밥을 가니쉬(garnish)로 해석해 보자 하고 생각했다.
다이닝에서 재료를 해석하는 방식을 기술적으로 배웠고, 그에 따라 원하는 맛과 향, 식감, 저장방식등을 결정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기술로 대중음식을 하면 사람들도 그 방식에 반응하고, 더 다양한 재료에 대해 이해하지 않을까?
그 질문이 첫 번째 프로젝트 안암이었다.
둘째로 "재료의 선택과 집중"이 시장에서 효과를 발휘할까?라는 질문이 있다.
안암은 국밥집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돼지고기 전문점이다.
등갈비, 목살, 등심과 안심 등, 돼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부위를 대게 사용한다.
조합은 클래식하고, 조리방식과 해석을 다양하게 해서 익숙한 듯 특별하게 느껴지도록 신경 썼다.
(그 덕에 재료의 사용에 국적 구분 없이 필요한 재료를 필요한 곳에 접목시킬 수 있었고, 그 방향성이 호응을 얻기도 했다. )
깊픈엔 이 질문에 대한 나의 새로운 질문이 있고, 착오가 있던 대답에 대한 새로운 대답도 있다.
"한식"이 정말 매력이 없는 것일까?
잘 나가는 외식업 전문가들은 해외에서 잘되고 새로운 것들을 휙휙 하고 들고 온다.
현지에서 잘되는 걸 테니, 잘되겠지.
특히 일본과 관련된 음식들은 정말 쉽게 트렌드가 되는 것 같다.
왜 해외에서 가져와야만 할까. 쉽게 경험하게 된 해외의 찰나를 가져오는 것은 둘째로,
"한식"이 정말 매력 없는 것일까?
깊픈을 오픈하기로 마음먹고 기획을 하는 단계에서 확신을 가진 것은,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내 경험이 짧았을 뿐, 기획하는 내내 경험했던 각 지역엔 수많은 지역색을 가진 음식과 재료를 해석하는 방식들이 있었다. 한국사람이 음식을 먹거나 대하는 문화의 방식엔 공통점이 있고, 비슷한 카테고리고 구분이 되는 것들이 있다. 비슷한 음식이 지역별 차이가 있는 이유는 그 지역의 생존방식과 재료 공수에 따라서 달라진 게 아닌가 싶다.
현재 깊픈에서 주메뉴로 준비하는 "엉겅퀴 국밥"은 울릉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인데,
실례로 울릉도와 가까운 포항에선(울릉도 들어가는 배가 포항에 있다.)
시래기와 꽁치를 넣은 시래기 꽁치국이 있는데
시래기를 구하기 어려운 섬 특성으로 울릉도에선 물엉겅퀴를 넣어 사용하다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섬마다 그 섬의 재료가 한국적 특성에 맞게 만들어진 각재기국, 멜국, 갈칫국, 여타 생선을 넣은 국들은 물고기 잡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토속음식으로 존재한다.
민물고기도 마찬가지.
조상들이 우리 땅에 맞게 재료를 해석해 온 방식이 있다는 것.
그렇다면 대중이 먹는 식재료를 가지고, 우리와 시점에 맞게 해석하는 것.
나는 그게 직업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닮은 사람들이 먹는 음식, 어렸을 땐 지겹게 먹었던
등 푸른 생선들이 사라지고 있는 세상에 적응하는 것도 방법이겠으나,
우리 조상들이 재료를 해석했던 방식과 문화를 소실하는 것도 내키지 않거니와
그 지혜를 남김없이 습득하고, 본질적인 것을 찾아내어 소개하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깊픈은 대답한다.
우리의 토속음식을,
실제로 익숙하여 특별한 지 몰랐던 재료를, 잃어가면서야 특별해지는 그 재료들을
우리 방식으로 해석하여 우리의 선택지에 다시 올려놓는 것.
한식을 정의함에 있어, 한국인이 먹는 음식이라고 이야기하면
우리의 음식은 뚜렷한 문화를 담고 있기에 그 음식의 매력을 논하기엔 되려 내게 부족함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아는 만큼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그에 맞게 재료를 선택하고 해석하여
옛것으로부터 새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깊픈을 쌓아 올리려고 한다.
한민족이 이 땅에서 먹고 자란 지혜와 본질적인 것들을 한 번쯤 들여다보면 좋겠는데 하는, 그 마음이다.
깊픈을 운영하면서 안암과 가장 다른 한 가지는
가족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 그리고 생선을 발라먹는 아이를 볼 수 있다는 것.
특정 연령대가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가 오는 식당이라는 것.
우리는 식문화를 통해 우리의 주장을 하고 있고,
나는 우리의 식문화가 충분한 매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게 한국의 맛인지 아닌진 모른다.
그래도, 한민족이 쌓아 올려온 식의 문화는 넘치도록 매력적이다.
깊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이 바다와 엄마, 그리고 본질적인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하니까.
본질적인가? 나는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