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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깊픈(Gippen)

#7. 잘되는 것, 좋은 것.

by 장재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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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하고자 했다.

사업을 하고자 한 건 아니었다.

한동안 내게 돈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나의 가치는 돈으로 증명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파인-다이닝에서 근무할 수 있었고, 일원으로서 능력을 인정받는 게 중요했다.

같은 생각으로 똘똘 뭉쳐 시간을 보내는 비슷한 나이끼리 생기는 경쟁심과 동질감, 유대감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시너지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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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시작했다.

자본주의에서 적응하고 있다는 증명.

현금흐름을 얼마나 만들 수 있는가.

매출이 내 가치고, 유지가 내 증명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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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할 땐

요리, 가치, 품질, 요리, 가치, 품질

을 생각하면 잘할 수 있었다.

그 사이에 속도와 퀄리티 중 선택을 하거나,

이 음식을 손님에게 낼 것인가 말 것인가

그 과정에서 겪는 실패에

셰프에게

"다시 하겠습니다."를

먼저 말하는 용기.

또는

절대 그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집중력을 가지면

하루를 끝낼 수 있었고,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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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니,

없는 곳에서 창조를 할 순 없었다.

나의 삶 전반, 그 이곳저곳에 묻은 경험을 토대로 쌓아 올려

무엇인가를 할 수 있었다.

직업의 의미에서 내가 갑자기 프로그래밍을 하거나,

대수학자가 될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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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에 담긴 이야기에서

한 갈래의 이야기를 뽑아

음식에 담아내는 것.

내 이야기는 내가 제일 잘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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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사업을 해야 했다.

내게 사업은 주어진 환경이고, 나의 기술은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얄팍하게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하고자 하는 것은 그 기술을 활용한 이야기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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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급작스레 누구나 스티브 잡스가 될 순 없다.

살아온 방식이 다르기에, 이야기를 접목시킬 기술의 방식이 다르다.

그는 디자인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의 디자인은 혁신의 상징이 되었다.

손바닥만 한 기기에 모든 것을 담아야 했기에, 손바닥 만한 기기에 수많은 노래를 담아야 했기에

디자인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애플의 기술은 혁신을 할 밖에 방법이 없었다.

디자인은 아름답다의 기준이 아니라, 사용성이 높다의 가치에 맞춰져 있다.

본질적인 것. 그 본질에 대한 인사이트는 잡스 스스로의 경험에서 뽑아져 나온

자신의 이야기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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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 벌레 잡스와 내 인생을 비교한다.

모두가 인정하는 그의 삶의 성공담은 아쉽지만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될 수 없다.

그는 그의 이야기를 했고,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당장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제일 잘하는 것들을 해야 한다.

그건 나의 기술을 활용한 나의 이야기.

매일 실패하던 과정에서 쌓아 올린, 돌아보니 한편에 남겨져 있던 이야기.

그래도 누구나 한번쯤 떠올릴 기억이 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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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되고 보니 돌아봐지는 것들이 있다.

운동회에 오지 못한 부모를 타박하던 나.

친구가 가진 물건에 또다시 부모를 타박하던 나.

나 따위가 세상에 왜 나왔는지 부모 탓을 하던 나.

내 인생은 왜 이모양인지 부모 탓을 하던 나.

그땐 보이지 않던 부모의 멍울이

100일 된 딸 하나를 보면서 괜히 가슴이 미어진다.

옹알 대는 딸에게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상에 대해 다짐하고 약속한다.

맑은 눈을 보며 롯데월드를 가서 솜사탕을 사주고 싶고,

인형극도 보여주고 싶고

나의 삶 전반에 보고 좋았던 기억을 전달해주고 싶다고 약속한다.

그 기억의 끝에

어렵게 시간을 낸 부모와의 기억이 있다.


새벽같이 출근하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

낮잠을 자고 싶던 그 아버지가 새벽같이 아들의 손을 잡고 걷던 보문천의 찬 공기가 기억에 남아 시작했던 돼지국밥집 안암.


등 푸른 생선이 머리와 몸에 좋다며

3일에 한번 꼴로 생선을 구워주던 엄마, 그 좋지 않던 기억에 성인이 돼서야 생긴 콤플렉스, 그리고 그 시간을 벗어나서야, 시장에서 고기를 사 오고 싶던 엄마의 손끝이 생선에 머물렀던 이유를 알게 된 철없는 내가

사실은 엄마가 내게 준 기억과 음식은 정말로 맛있었다고, 엄마 이제 나한테 미안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거 사실은 이렇게나 맛있는 음식이라고.

내 또래에게 남아있을 기억에 대한 이야기, 깊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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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내가 좋지 않은 걸 내놓을 수 있을까.

나의 엄마를 담고, 아빠를 담아,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은 내가.

딸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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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어.

그래도 언젠가

너에게 해준 모든 최선이 항상 아쉬워

난 우리 엄마처럼 네게 항상 미안한 사람이 되겠지.

그때 네가, 이제야 너의 엄마와 아빠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걸로 나는 충분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해.

아빠는 대단한 사람을 될 수 없을지도 몰라

그래도,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론 살아볼게.

그땐 아빠가 할아버지와의 이야기를 담았던 것처럼, 할머니와의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너와 좋았던 기억을 다른 사람에게 잔뜩 이야기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가 어떻게 좋지 않은 것들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돼.


어쩌면 아빠는 대단한 사업가는 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누군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꾼이 되어볼게.

그때 우리 연우가, 아빠 이야기를 좋아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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