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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유오에이(U.O.A)

#01. 소회

by 장재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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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암을 오픈한 이후로 머릿속에서 줄곧 놓치지 않으려는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시각.

기획을 한답시고 이래저래 내 생각에 매몰되기 시작하면 스스로가 무척이나 설득된 채 자기 세계에 빠진다.

해서 생산자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기보단, 소비자 관점에서 문제를 해석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매번 시행착오에 빠지게 되는데, 깊픈의 오픈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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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통의 추억, 나만의 기능.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싶었던 공동의 추억. 엄마의 기억, 생선구이의 희소성, 그리고 내겐 익숙했던 음식들.

향토음식만큼이나 설득력 있고 클래식한 음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손님들은 향토에서 받는 느낌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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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육수가 왜?

꽁치가 들어간 김치찌개, 멸치육수, 가다랑어 육수와 피시스탁, 매운탕과 지리.

내겐 한없이 익숙했던 생선육수의 나열. 끝나지 않는 조리법과 재료 사용법의 나열.

돼지고기가 등푸른 생선으로 바뀌었고, 그 특성에 맞게 육고기보다 훨씬 더 깊은 맛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생선이 들어가요? 국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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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할 때마다 마주하는 편견과 고정관념들.

안암에서 마주했던

뜨겁지 않은 국밥에 대한 푸념들, 이딴 게 돼지국밥이냐는 말들이 머릿속에 또 떠오른다.

내가 하는 일은 번번히 사람들의 편견과 마주한다는 게, 근데 아이러니하게 이게 우리의 향토음식이 모티브라는 게.

없어지는 덴 없어지는 이유가 있지, 싶다가도. 약간 억울한 심정.


- 생각보다 사람들은 생선이 들어간 국이 익숙치 않네...



등푸른 생선이 가지는 비린내를 분류해 보면, 황화수소와 트리메틸아민이 주성분인데-

황화수소는 겉면을 숯불의 복사열로 태워서,

트리메틸아민은 유지방으로 가두거나 중화반응을 만들어서(유리지방산이긴 하나)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우리가 제공하는 것들이 메리트로 느껴질 걸로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것 역시 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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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 아이스크림은 센스 있는 포인트는 될 수 있으나, 가격이 높은 것에 대한 설득력이 생기진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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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향수, 사회화


음식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그 기억이 음식이라는 매개체로 전파되는 것은 대게 가지고 있는 어떤 음식에 대한 추억에서부터 구현되며, 이는 분명한 논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어 어머니와 고등어, 된장국은 그 향수를 건드리는 키워드가 될 거라 생각했다.

-틀린 게 아니었다. 할머니가 해준 음식, 서울에서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을 줄 몰랐다. 엄마가 해준 음식 같아서 행복했다 등의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헌데, 그 기준에서 놓쳤던 것은 사회성.

"깊픈에서 엉겅퀴 된장국이라는 거 파는 데 가볼래?"

나 생선 들어간 거 못 먹어.

"아 그래? 그럼 딴 데 찾아보자."

소속된 집단 중 1명이라도 먹지 못하는 음식이라면 오지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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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생각을 못했을까.

향수는 있는데, 사회화된 인간의 집단을 놓쳐서

향수를 경험할 기회조차 못 가지는 거, 사업으로서 문제 있는 거지.


#3. 그래서 그대는


1. 메뉴를 늘렸다.

먹기 싫은 사람을 설득할 방법은 남겨둬야지-

그럼 넌 이거 먹어, 우리 하나씩 먹어보자. 어? 먹어보니까 맛있네? 가 가능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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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격을 낮췄다.

엄마의 음식이 모티브인 만큼 좋은 것을 사용하려 했으나, 그 재료에 관한 기호를 확인하곤 메뉴의 구성을 변경했다. 가격을 낮추고, 아이스크림을 단품구성에서 세트구성에 포함시키도록 변경. 아이스크림의 설득력을 포기하고 세트에 포함시켜 세트 메뉴 설득력을 높이고, 아이스크림을 손님에게 제공하는 것이 추가점으로 느껴지도록 메뉴를 재설계했다.

3. 시장에 맞게

1) 이야기의 주제만 정해도 괜찮았던 안암은 운이 좋았으나, 깊픈은 더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전달이 되질 않아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존엔 선택하지 않았던 마케팅 채널을 다각화하고, 시장논리에 맞게 상품을 진행도 하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할 사람을 고용하기도 한다.

2) 상권이 술상권이라.

술 안주용 숯불요리를 이것저것 준비해 둔다. 손님들이 와서 먹어보고, 우리의 메인메뉴도 먹어보고, 우리의 다른 메뉴도 먹어볼 수 있도록. 개인적으론 메뉴를 개발하거나,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핑계 삼아 이런저런 전통주를 들여다 놓고 손님들 피드백을 관찰하거나, 어떤 경우에 추가 주문으로 이어지는지 경험을 만든다.

#4. 중간보고


마케팅 채널을 다각화시키고, 여기저기 우리가 하는 음식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 인연이 연결고리가 되어 주변인들에게 소개가 이루어지고, 그 과정을 지속해 보니 "인지"의 관점에서 주장하는 바와 설득하려고 하는 바, 모두 마주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좀 더 집중할 수 있었고 그러면 소위 "죽은 공간"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그러더라. '죽은 공간엔 손님이 찾지 않는다.'

저렴하든, 공짜든, 연이 닿아 찾아오든 전부 손님은 손님이다. 마케팅을 통해 오신 분이라도 그 주변사람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전달하게 되고, 그게 차곡차곡 쌓여야 이야기를 할 자격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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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메뉴를 통해 상대에 관한 설득이 이뤄지는 것들을 목격한다.

오지 않던 사람들이 들어오고, 예약문의가 이뤄지고, 그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익숙하기에 지나고서야 특별한 것들. 언젠가 생각나면 또 오고, 또 올 거라는 걸 알고, 오늘 덮밥을 먹었던 사람이 내일은 국밥을 먹으러 오기도 하고. 그의 덮밥과 그녀의 국밥이 앞접시를 매개로 전달되기도 하고, 미식과 외식의 경험을 쌓아나가는 과정을 보게 된다.


아이스크림은 설득력이 없다.

트리메틸아민과 중화반응에 대해 얘기하면 오 그렇구나-하지만, 그리고 참 맛있고 센스 있는 식사였다고 생각하지만, 그로 인해 1000원을 더 받게 되었을 땐 설득력이 생기지 않는다.

편의점 가면 사 먹을 수 있는 게 아이스크림인데.

지속해야 할 주장인가?

다른 방법으로 주장하니 세트를 구성해야 할 이유가 되더라. 손님들은 아이스크림이 포함된 국밥 때문에 1000원 더 비싸게 먹긴 싫지만, 세트 구성에 5000원을 사용하면서 고등어구이와 아이스크림을 먹는 건 기분 좋은 일이 되거든. 근데 심지어 내가 몰랐던 이유가 있네. 얼마나 재미있어.


다이닝스러운 음식을 하진 않으나, 그래도 비교적 대중음식점에서 밥과 즐길 수 있는 메뉴들로 안주메뉴를 구성했다. 본질은 밥집이고, 녹색소주를 판매하긴 싫어 전통주 위주로 구성을 하는 바람에 여러모로 요릿집이 되었으나- 덕분에 국밥의 설득력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라.

하나만 할 때 생기는 설득력만큼, 다른 음식들이 메인 음식의 설득력을 뒷받침해주는 효과도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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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가을인가? 가을이라.

가을은 어느 동네든 성수기다. 그 지점에서 톡톡히 누리고 있다고 말하긴 어려우나, 분명한 영향이 있다.


우리는 손님의 피드백을 통해 변화한다. 내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될 때까지, 나는 잘 해내보고자 한다.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계속 소비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보기 위한 성장이 필요하다.

역시나, 외식업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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