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이

by 장재현입니다


네가 우리에게 왔던 날도 추운 겨울이었던 것 같다.

볼이 아린 날씨가 되면, 작은 가방에서 빼꼼히 내민 너의 뚱한 표정이 떠오르곤 한다.

너는 눈을 참 좋아했다.

어쩌면 네가 눈을 좋아했다고 혼자 착각했는지 모른다.

눈이 많이 오는 날마다, 첫눈이 올 때마다 네게 얼마나 보여주고 싶었던 지,

나는 매번 눈이 올 때면 그렇게도 너를 떠올렸다.

금방이고 녹을지 모르는 눈이 날 조급하게 만들던 건,

잠깐이라도 네게 눈을 보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항상 집에서만 있어야 했던 네가,

계절을 기억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으니까.

25년 12월 4일, 올해도 눈은 내렸다.

어제는 첫눈치고 눈이 무척이나 내렸고

그날 너는 우리 곁을 떠났다.

-

넌 항상 내 베개 맡에 너의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목에 담이 와 다음날엔 힘들어함에도,

네가 나를 아낀다는 마음에 내심 반가웠다.

너의 그 따뜻함이, 그 묘한 집착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


차를 살 때도, 이사를 할 때도, 휴식 차 놀러 갈 때도 항상 네가 우선이었다.

너를 기쁘게 하고 싶었다. 새로운 공간에 간 너의 표정이 얼마나 해맑은 지 알고 있으니까.

그 표정을 보는 게 좋았다.

볕이 잘 드는 공간에 앉아, 나른한 표정으로 볕을 즐기다, 풀이 많은 공간을 나의 곁에서 거니는 것을 좋아했다.

모험하듯 짧은 다리로 돌아다니다, 내가 어딨는지 확인하고 신나서 돌아오던 네 모습이 여직 눈에 선하다.

너는 그랬다. 너의 즐거움을 나와 나누고 싶어 했다.

네가 즐거울 때마다 나를 돌아보던 너의 모습을 기억한다.

같이 하자고 말하는 듯했다.

너의 즐거움은, 나와 나누고 싶은 것이었다.

그렇게 너는 항상 나를 기다렸다. 즐거울 때도, 우울할 때도.

-

너는 그랬다.

문 앞에서 기다리던 건,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밤늦게 들어오는 나였다.

꽤 무뚝뚝한 네가 기지개를 켜며 반가워할 때면, 거의 비슷한 네 표정에서도 너의 반가움을 읽을 수 있었다.

너는 그랬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쉬는 날이 줄었다.

그만큼 네가 문 앞에서 날 기다리던 시간이 늘었다.

나는 너의, 그런 너의 시간이 미안했다.

-

심장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걱정하지 않았었다.

너는 아파 보이지 않았으니까.

상태도 좋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생길 수 있는 것들 중 일부라는 전문가의 설명에,

나와 좀 더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사실 알고 있었다.

재작년 이맘때 즘부터 너는 산책을 힘들어 했다.

여전히 함께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너무도 힘들어 했다.

나와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했다는 걸 알고 있다.

항상 내 가방에 들어가 나와 자전거를 타고, 좋아하던 공원을 거닐었다.

그때도 넌 항상, 날 확인했다.

난 그런 너의 눈을 보는 걸, 너의 뒷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네가 이렇게도 사랑하는 시간을 많이 줄 수 없음에, 너의 하루가 기다림으로 채워져 있음에 켜켜이 쌓인 죄책감이 존재했다.

-

심장이 좋지 않아 산책을 자제할 것을 당부받았다.

핑계 삼아, 너를 자주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또 너를 보는 시간이 줄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줄었으니까, 어쩔 수 없기도 했다.

그렇게 올해를 보낸 것 같다.

우리는 그 사이 아이를 낳았고, 이사를 했고, 너를 떠나보냈다.

-

병원에서 너를 받아 들고, 너를 치료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다른 병원으로 급하게 이동하는 차 안에서,

너는 아마 내게 작별을 건넨 것 같다.

그렇게라도 나를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내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던 의사의 말을 듣고 네게 남길 수 있는 말은 미안하단 말 뿐이었다.


모르겠다.

나는 네게 할 수 있는 말이 미안하단 말 밖에 없었다.

그저 남겨진 내가 걱정되었다.

네가 담긴 상자를 받아 들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생각했다.


네가 담긴 상자를 들고 병원을 나와보니, 눈이 엄청 많이 내렸다.

택시를 탈 엄두가 나지 않아, 그저 천천히 걸었다.

너를 데리고 집에 가야 했으니까.

네가 담긴 상자는 따뜻했다.

눈이 많이 왔지만 너를 들고 있는 손은 시리지 않아서 신기했다.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날 너와 함께 했던 산책을 떠올렸다.

우비를 입고 바보처럼 걷던 네가 떠오른다.

발이 시려워 옴짝달싹 못하던 네가 생각났다.

그러나 오늘 눈은, 너에게 닿지 않고 상자 위로 쌓여갔다.

-

강아지 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네가 좋아하는 것들과, 평생 산책도 하고 맛있는 것도 잔뜩 먹고, 친구도 많이 사귈 거라고 한다.

아내는 네가 아픈 걸 싫어하기에, 급하게 간 것일 거라 애써 위로했다.

그래, 그러면 다행이다.

-

나이가 들수록 전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너의 이번 생이 전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 생엔 이런 관계 말고, 내가 너한테 고기를 잔뜩 사줄 수 있는 관계면 좋겠다.

네 건강을 생각지 않고, 네가 먹고 싶어 하는 것들을 원 없이 사주고 싶다.

너의 기다림들을 보상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

남겨진 나는 평생 너를 가슴에 품고 살아갈 테다.

멀쩡하다가도 시선이 닿는 곳마다 네가 보여 툭툭 너를 쏟아낸다.

우리의 시간에 담겨있는 너를, 나는 지워내지 못할 테다.

콩아, 너에 대해 내가 후회하던 모든 시간을 털어내지 못하기에, 나는 여전히 네게 미안하기만 하다.

어느 곳에 선가 마음에 담아뒀던 만화의 한 장면처럼, 어쩌면 나의 삶 끝에 네가 기다리고 있다 날 마중 나올지도 모른다생각 하기도 한다.

그땐 네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내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 할지도 모르고, 어쩌면 내가 네 덕에 행복했다 생각했던 순간들이 네겐 행복하지 않았던 기억이라,

나와 마주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

그래도 콩아, 나는 네가 이렇게 떠난 게 너에게 다음 삶이 주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언젠가의 네게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한번 더 온다면,

형은 너랑 함께 지낸 시간들이 정말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 시간만큼이라도, 나와 아내의 곁에 와줘서 고마웠다.


나의 콩아.

눈이 오면, 나는 그 누구보다 너를 먼저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오늘은 날이 정말 맑았다.

눈이 오지 않는데도 네가 그립다.

아마 평생을, 그렇게 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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