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발렌어스 브랜드 다이어리 03

by 장재현입니다

중국에서


상하이에서의 경험은 생각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상하이 공항에 도착해 선배와 일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고 숙소로 갔다.

내가 주어진 시간은 두 달. 해야 할 일은 메뉴 개발 및 자재 조달, 주방 동선과 서비스 형태 짜기.

그리고 중국 스태프들을 교육하는 것. 이게 전부다.

하루 4시간 남짓한 근무시간에 나머지는 전부 자유시간.

외근이나 연장근무를 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시간이 날 땐 운동을 하거나 다양한 볼거리를 구경하고, 동료들과 저녁을 먹으러 다녔다.

상해는 정말 큰 도시였다. 서울보다 나을 리가 없다 생각했던 나의 상상은 상해의 시스템과 규모, 청결상태에 민망해하고 있었다. 딱 경험한 만큼만 상상할 줄 아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그런 상상력을 가진 나 같은 사람들은 생활 패턴이 변할 때 전에 했던 고민들의 실마리를 찾아내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사는 방식을 경험하는 것 또한 문제를 단순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상해에선 허세 가득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자신감이 가득한 대답을 하고, 결과가 안 따라오면 뻔뻔하게 그럴 수도 있지 않냔 식으로 대답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을 너무 크게 보지 않아도 되는구나. 저지르고 해결하는 방법도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고민만 하다 문제를 크게 해석해서 뒷일이 겁나 포기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좋은 경험이었다.


기회를 잡는 것이 과정의 무모함을 계산하는 것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다.

분명 망설이다 시도하지 못한 일들은 언젠가 처음이거나 영원히 시도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시도해야 한다.

그래야만 더 잘 해낼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결론이 생겼다.

분명한 건 나는 처음보다 두 번째를 더 잘 해내는 사람이다.



번화가의 밤은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을 하는 동안 생각은 정리가 되었다.

멀게는 전문가가 사용할 제품을 만드는 것.

그리고 가장 가까운 미래엔 내가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더 개성 있고 효율적인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생각하고 있던 제품은 조리화였다.

나와 내 동료들은 주방에서 조리화를 신고 일을 한다.

대부분의 조리화라는 개념은 고무신을 의미한다.

스펀지 비슷한 재질의 본드가 다 떨어져 나간 사출화를 신거나, 신출내기들은 앞코에 쇳덩이를 달고 있는 무거운 신발을 신곤 한다. 다양한 이유로 필요한 신발들이었지만, 필요하단 이유로 중요한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구멍이 뽕뽕 뚫린 크록스 제품들이 주방 신발을 대체했다.

안전화의 대체제가 크록스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지만 요리사 제품은 대부분 그렇다.



현재 요리사 제품 시장은 사용자 경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팔리던 시절 형성된
그때 모습을 그대로 답습한다.
생산자가 더 이상 제품 개발을 진행하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 시장규모라면
그래서 사용자가 다양한 선택을 하고자 기존 생산자들에게 요구할 수 없다면
사용자가 직접 생산자가 되는 방법밖에 없었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이곳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편한 사실이었다.



어렸을 때 성수동은 미싱기 돌아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구두공장에서 일을 하셨다.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라 부르기 시작할 때부터 구두를 만드셨다.
많은 수제화 공장들이 문을 닫고 나서도 그 일을 하고 계신다.


그런 환경이 내가 가진 문제 해결 방향의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도 사업이었다. 여전히 머릿속에선 감히 내가 해도 되는 게 맞나 확신이 안 섰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나와 내 동료들이 사용할 개성 있는 제품의 다양한 등장은 요리사들의 개인 브랜딩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설령 내가 실패하더라도, 하지 않았을 때 보다 했을 때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다는 것.

아무것도 결론지을 수 없지만, 그 두 가지만큼은 확신이 있었다.


그 확신을 실현하기 위해선 담장 밖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앞으로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어떤 것이든 오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결과를 가져와야 했다.



무조건 다양한 경험이 필요했다.

그래서 첫째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직접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볼 것", 둘째는 "그 일을 하던 사람들이 쓴 책을 더 많이 읽어볼 것", 그리고 아이템을 선정하기 전에 아이템이 될 만한 것들의 작업을 이해할만한 일을 가볍게 해 볼 것이었다.


귀국 후 할 일로 "메일 보내기", "수제화 만들기", "가죽공방 다니기" , "브랜딩, 마케팅 커리큘럼 등록하기" 그리고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 만날 기회를 만드는 것 등, 주방에서의 경험 외에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