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운주 May 07. 2024

구례살이 준비기- 사람들 만나기

- 여행자로 살아보자!

난 부산에서 줄곧 살아왔다. 그리고 2주 뒤면 구례로 이사를 가려고 한다. 좀 더 자연에 가까이 맞닿는 삶을 살고 싶어서. 일상에서 계속 다양한 자연 관찰을 하고, 그런 사람들이 많은 곳을 가고 싶었다. 동시에 퀴어로 조금이라도 삶을 이해받을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있을수록 소수자 정체성은 지워지기 십상이고, 좁은 인맥망에 부대껴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봤다. 구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한편으론 겁도 많이 난다. 하지만 귀촌 인구가 많아 지역 텃세가 비교적 덜하고(마을마다 또 다를 수 있다), 읍임에도 교통편이 좋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산악형 국립공원, 지리산을 가까이 끼고 있는 곳이 구례다. 또, 비교적 가까운 곳 여기저기서 다양성을 가져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곳을 놓치고 싶진 않더라. 구례에서 적어도 1년은 살아보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계속해서 만들어 가다 보면 어느새 어디서든 "만들어져" 있겠지. 어차피 유토피아는 없다는 걸, 삶에서 계속 느꼈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 분통 터질 때면 또 보란 듯이 소소한 행복들이 있는 게 인생이었다. 두려움이 내 선택을 좌우지하는 것에서 변하고 싶다는 갈망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용기 내어 소통하며 그저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얘기하고 다니고 싶다. 거절이 무서워 말을 삼키고, 실패가 두려워 도전도 안 하긴 싫다. 살아보다 안되면 또 다른 곳으로,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아야지. 어차피 우린 모두 지구에서 제각기 어떤 중심부에 휘말린 여행자들이니까.


2달 정도는 부산과 구례를 왔다 갔다 하며 구례와 산내에서 사는 다양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녔다. 주거와 삶과 꿈에 대해 많이 들었다. 구례는 하동과 함께 귀촌 핫플레이스로 땅값과 집세가 참 많이 올랐다고 한다. 아참, 빈집은 많은데 부동산 매물은 금방금방 빠진다는 얘기도 들었다. 여기서 얘기해 본 대부분의 친구들은 오래된 시골집을 수리해 가며 사는 경우가 많았다. 월세는 20만 원에서 25만 원 선. 하지만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만큼 기름보일러를 쓰는 경우가 많고, 오래된 집이 많은 만큼 겨울에 외풍이 잘 들어 이런저런 집수리 비용으로 나가는 돈도 무시 못했다. 또 과수원 옆집이면 농약이 집으로 들어오니 호흡기가 약한 사람이라면 참고해야겠다. 그리고 겨울에 여유비용 없이 귀촌을 했다가, '방한, 방풍 수리 -> 돈 듬 -> 하지만 돈 없음 -> 집에서 추위와 싸움 -> 견디다 아픔-> 돈 듬 -> 드러누음 -> 하지만 돈이 필요함-> 아파도 일함 -> 드러누음 -> 하지만 돈이 필요함-> 아파도 일함' 의 굴레를 반복하며 고생하는 친구들의 눈물 나는 얘기도 들었다. 집에서 전류가 흐르는 듯 해 주인에게 얘기했지만 문제를 고치려면 집을 싹 다 뜯어고칠 수밖에 없단 얘기에 무력히 살다가 얼마 뒤 집에 불이 나 급하게 이사한 적이 있다는 친구도 있었다. 보일러 기름통까지 불길이 닿았으면 난 이 자리에 없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섬뜩했다. 3월 초, 2주 정도 짧게나마 시골집을 살아보니 내가 얼마나 화석 연료에 의존하고 살았던 사람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기생충이 많이 붙은 물살이(어류)가 약욕을 할 때, 너무 오랜 시간 갑자기 높은 농도의 약욕(혹은 민물욕)을 하면 죽는다 했다. 남 얘기가 아니다. 알아서 순환하는 자연을 담보 삼은 도시. 덕분에 계절도 잘 못 느낄 수 없는 이 공간의 안락함에 찌들어있던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자연에 맞닿는. 순환을 느끼는 삶을 살고자 갑자기 여기저기 수리해야 하고, 겨울엔 춥고, 여름엔 지네가 까꿍 하는 집에서 산다면? 음. 텃밭이 있는 집, 마당이 있는 집. 너무 살고 싶지만. 생태적인 삶을 계속 추구하고 싶지만. 뭐, 언젠가 살지 않을까? 나는 구례에서 일자리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조용히 부산에 있는 원룸의 짐을 정리해 조금씩 본가로 옮겨두고, 구례를 왔다 갔다 하며 읍내에 풀옵션 원룸 발품을 팔고 다녔다. 덕분에 내 물건들과 공간을 점검하며 가치관을 다시 한번 세우는 시기가 되었다. 당장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은,

 1. 면허 따기(일을 구하고 생태조사를 하고 다니기 위해 이동기가 있으면 정말 편해진다)

 2. 혹시나 하게 될 일의 스펙트럼을 늘리기 위한 생태 분야 자격증 공부

 3. 지역 연고 만들기

 4. 집 이었다. 

이제 나름대로의 준비를 해두고 이 주 뒤면 이사를 하게 된다. 여유가 될 때마다 얘기를 조금씩 해보려고 한다.


23살 때쯤이었을까. 가족에게 끌려가다시피 갔던 미국 관광에서 자이언트 캐년의 지층들을 보고 시간이 내게 쏟아지는 것만 같단 황홀한 압도감을 느꼈었다. 한 층 한층 쌓여 이 거대함이 되기까지, 수십만 년이나 흘렀다니.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서고에서 지층 비스무리한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세상엔 참 많은 사람들이 오직 연결되고 싶어서, 공감받고 싶어서, 도움 되고 싶어서, 이해받고 싶어서 불특정 다수에게 이야기를 하는구나. 이 벽돌들을 다 메꾸는구나. 요즘은, 강 속에서 돌을 줍고 다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받는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공간이 변한 만큼 흘러들어와 나를 흐르게 만든다. 부산에서 기후위기 활동을 하며 자연에 대한 이야기들, 정책을 들을 때는 늘 '금지', '규제', '보호' 등의 이야기가 많이 들려왔었다. 아무래도 대규모 건설 반대 활동을 해서인가. 이곳에서도 골프장, 댐 건설 반대 얘기들을 듣다 보면 다를 바 없겠지만. 그전보다 땅에서, 산에서, 강에서 함께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는다. 사계절 속에 나도 함께 하는 존재라고 느낀다. 다 함께 만들어가는 자연에서, 나도 조심스레 내 욕구를 풀어놓고 부대끼며 살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