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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주 Nov 14. 2024

구례살이 준비기(2)-면허따기

면허에 대한 소고

1. 면허는 1년 전쯤 땄다. 구례에 오기 전, 생계를 위한 경제활동과 생태조사를 다니려면 차가 거의 필수적이었다. 무면허 시절, 적기에 정말 차를 타야할 때 태워다 주시는 감사한 분들도 그동안 많았다. 내가 차를 몰게 된다면 그 분들처럼 많은 사람들을 태워 다녀야지. 특별히 트럭을 몰 일은 없을 거 같아서 2종 오토로 학원을 등록했다.


2. 장내 기능 시험은 수월했다. T자 주차와 그 외 다양한 기능들은 학원에서 3일동안 가르쳐준 교육을 그대로 실행하면 되었다. 기계 안에 있으면 내가 기계가 된 듯한 기분을 종종 받는다. 하지만 나는 동물이라서 내 앞의 1종 시험자가 사이드 브레이크를 넣지 않고 출발해 바로 떨어지는 불상사를 보고서 약간의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했는데, 내 조수석에 어른인 내가 타고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지켜주고 있단 상상을 하니 차분해졌다.


3. 도로주행 시험에서 한번은 떨어지고 두번째에 붙었었다. 첫번째 시험에서 내 앞 시험자가 운전대를 떨리는 손으로 잡고 2차선으로 들어가다 가드레일에 박을 뻔하고 떨어졌다. 시험 시작 1분 남짓 벌어진 일이었고, 그 분은 불합격을 했다. 뒷자석에 타고 있던 나도 함께 뇌정지가 왔다. 기능시험을 칠 때를 생각하며 어른인 내가 함께 하는 상상을 억지로라도 하려했다. 운전석으로 자리를 바꾸며 내 머리에 자연스레 떠오르는 상상은 반대였다. 내 머리 속엔 어린 내가 조수석에 타고 있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 지켜줄게. 혼자 고요히 시험치는 장내기능과 달리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위라 그럴까? 나는 있지도 않은 아이를 데리고 타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4. 출발을 하고나니 생각보다 차분히 운전을 할 수 있었다. 보행로가 있는, 교차로 구간에서 유턴만 잘 통과해 돌아간다면 나는 합격이다. 보행신호시 유턴 구간이었고, 보행신호는 차를 타고 있는 내 시야에선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보행로 내 사람의 유무와 맞은 편 교차로에서 출발하려는 차들을 눈치껏 보고 유턴해야하는 상황이었다. 할아버지가 지나가고 계셨고, 나는 할아버지가 계시니 자신있게 유턴을 했다. 그 순간 조수석 검사관은 불합격이라며 도로 옆편에 차를 세우라 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알고보니 할아버지는 파란 신호가 아니었지만 보행을 계속 하고 있었고, 맞은 편 차들은 할아버지를 기다리다 곧 바로 달리려던 찰나에 내가 유턴을 한 거 였다.

 옆켠에 차를 대고 뒤를 돌아보니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검사관님께선 나보고 상황을 좀더 살피지 않고 너무 빨리 유턴을 했다고 말해주셨다. 조금만 천천히 했으면 합격할 수 있었을텐데 아쉬워하시며. 주행 연습할 때 유턴마다 신호를 잡기 힘들었던 내가 상황을 좀더 살피지 못하고 조바심을 냈었다. 사실 유턴에 자신이 없어 좀더 상황을 꼼꼼히 보지 않고 얼른 한 게 맞다. 하지만 그 때의 난 이 사실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불합격 통보를 받고 집에 돌아가는 내내 속으로 할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내 시험비 5만원이 이렇게 날아갔네.


5. 시간이 흘러보니, 시험에서 떨어진 경험을 해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날 나는 평소 내가 겪었던 5,60대 남성에 대한 냉소부터 늘어놓으며 내 실수를 합리화하려 들었다. 어떤 심상으로 차를 몰아야하는지 톡톡히 느낄 수 있던 순간이었다. 도로는 죽음과 마주하는 공간이다. 찻길에서 종종 로드킬을 당한 고라니와 고양이, 삵들을 보아왔다. 나는 내 편의와 이동성을 위해 이 위험성과 희생을 안고 가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톡톡히 느꼈다. 차를 모는 것에 대한 권력을 다시 한 번 체감했다.


6. 한동안 가족 차를 종종 몰며 감을 잡고 있다가 이제 내 차가 생겨 다시 운전 연수를 받는다. 분명 운전학원을 다녔는데 왜 운전연수를 또 받아야하는지. 앞으로의 내 안전과 리스크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지금 30만원을 더 투자하기로 선택한 거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간다. 운전면허 학원에서 내가 배운 건 주입식 교육이었다. 함께 도로를 아주 빠른 속도로 공유하는 공간에서 교통 흐름 읽는 법을 배우지 않고 면허를 따는 게 말이 되는 상황일까. 차선은 언제 어떻게 눈치껏 바꿔야 안전할지, 고속도로와 시내 도로는 어떻게 다른지 등등 경험적인 감각을 전혀 길러보지 못한 채 면허가 취득되는 시스템이 이상하게만 느껴진다. 죽음과 직결되는 행위에 이렇게 쉽게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 그 책임은 누가 지게 되고 무엇을 담보로 지게 되는지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허술한 국가 시스템때문에 개인에게 목숨을 담보로 짐지우는 일들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7. 내가 타게될 차는 캐스퍼 ev 전기차다. 광주에서 첫차를 생산했기에 전남 지역의 열띤 지원, 때마침 떠오른 전기배터리 폭발 이슈로 인한 시류를 타고 보조금이 천백만원 나왔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구례에 오기 전까지 난 차가 크게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아 면허를 따지도 않았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이동권을 늘리는 게 시야를 얼마나 넓히는 일인지, 또 동시에 어떤 공간과 신체들은 차가 필수불가결한 상황에 놓인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차가 가지는 위험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마음 한켠이 무겁기도 하지만, 무엇이 맞고 틀린지 알 수 없는 세상에서 하나하나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들의 속성과 한계들을 알고싶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얻게 된 차를 오래오래 몰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사고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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