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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주 Jun 08. 2024

[기고] 2. ‘너희들’ 큰부리 까마귀에게

- 다른백년, <운주의 생명의 경계에게>

‘너희들’ 큰부리 까마귀에게     

안녕. 난 오늘도 옥상에서 너를 한참 보다 왔어.

늘 마주치는 넌 같은 애일까. 다른 애일까. 안타깝게도 난 아직 너희 하나하나를 식별할 만큼 섬세히 생김새를 파악하지 못해. 인간 세계에선 동아시아권 외 인간 얼굴을 식별하는 것도, 동물 세계에선 동정(생물의 분류학상의 소속과 명칭을 바르게 정하는 일)하는 것도 서툴거든. 너희들은 소통 커뮤니티를 가진 텃새라는 걸 알게 되었어. 죽은 친구가 있으면 주검에 모두 몰려 시간을 보내는 행위를 하는 동영상을 봤는데, 우리의 ‘애도’와 닮았단 생각도 했어. 우리 집에서 종종 보이는 너는 10마리 내외의 무리 중 한 마리겠지? 산책하다 전봇대에 너희가 종종 모여 아악아악 계모임을 하는 듯한 모습을 엿보기도 해. 그러니 그냥 ‘너희들’에게 쓰는 편지라 생각할게.      

가끔 너희를 셀 때 ‘명’이라 해야 할지, ‘마리’라 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적이 많았어. 요즘 비인간 동물들을 ‘마리’가 아닌 ‘명’(命)으로 세자는 운동이 있어. 공장식 축산업에서 죽어 나가는 동물들을 그저 ‘마리’로 헤아리면 그 생명들의 무게가 폄하된다는 취지에서 말이야. 공감이 참 많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흐름이 거북했어. 목숨(命)의 무게를 똑같이 하자는 말의 취지가 이해 가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거야. 과연 모든 비인간 동물의 범주가 내 안에서 동등할까? 나는 내 집 안의 모기와, 살처분을 당하는 돼지들과, 너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져. 내가 비인간 동물을 ‘명’이라 부른다면, 그렇게 부를 수 있는 비인간 동물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인간 사회에서도 그래. 성소수자인 나는 내 차별이 너무 크게 느껴지지만 이주민, 농부, 다양한 노동자들 등등 내 경험 밖 차별들에는 정말 쉽게 무심해지곤 해. 그들이 어떤 피해를 입는지, 생존권에 위협을 받는지 등의 사실에 피곤하면 귀가 열리지 않아. 해결할 수 없는 막막함을 더 만나기가 무서워서. 내 고통이 네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걸 자꾸만 느껴.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회에서 나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거나, 그것들에 질문을 던지고 품을 내기엔 내 삶의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하다 생각할 때가 많았어. 체력과 이야기가 없으면 아주 쉽게 내 입장에 갇혀버려. 그래서 ‘명’이란 말을 쓰는 걸 주저했어. 나에게 자격이 없게 느껴졌거든.      

 이랬던 내가 조금씩 바뀌고 있어. 비건을 지향한다든가, 텃밭을 잠깐이나마 일궈보고 시위를 나가고 액션을 준비하는 등 행동하는 시간이 쌓이고, 나를 포함한 사람들을 지켜보며 알게 되었어. 모두 때로는 모순된 말을 하며 괴로워하기도, 자기를 지키려고 애쓰기도 한다는 걸. 여력이 없으면 상황을 외면하며 자신을 지키기도 하더라. 서로 치고 치이는 이 난잡하고 곤란한 세상에서 시끌벅적 나오는 말들은 ‘계속해서 나아지려는 노력’ 중 일부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말’은 의지를 표명하는 초석이라, 내뱉어야 뭐든 시작이라도 하는구나. 실제로 행동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전두엽을 깨우는 건데, 해당 부위의 뇌는 주로 앞머리에 위치해서 이마를 톡톡 치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말하면 단호히 시작하는 힘이 생긴다더라. 난 일상에서 너희들을 지켜보며 그 모습들을 편지로 쓰고 싶어. 너희의 삶을 알고 싶은 나의 바람을 담아. 글자가 뚝뚝 끊어질 땐 찌푸린 이마를 톡톡 두드려가며.     

 내가 처음 너희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가덕도신공항 반대 운동을 통해서였어. 신공항을 짓는 여러 가지 문제점 중 하나가 ‘조류 충돌’라더라. 가덕도와 그 인근 낙동강 하구는 철새들의 거점인데 비행기가 날아다니게 되면 날아오던 철새와 부딪히는 게 큰 문제가 될 거라고 했어. 그때 난 너희의 아픔에 공감하기보다, ‘이것은 하나의 문제다’라고 생각하며 접근했어. 하루는 ‘버드 스트라이크’ 사진을 쳐보는데 갑자기 네 고통이 확 와닿더라. 비행기가 파손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충돌로 몸이 갈린 채 얼어버린 너와 다른 새들의 주검은 나에게 충격이었어. 엔진 속에 빨려 들어간 모습은 정말 처참했어. 우리가 너희를 포함한 다른 새들의 길과 보금자리를 아무렇지 않게 빼앗을 권리가 있을까? 그나마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개발 사업 전 시행하는 환경영향평가 조사에서 쉽게 여러 새들의 이름을 지워가기도 하면서.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할 대체 서식지를 준단 핑계를 대기도 하면서 말이야.     

 큰부리까마귀야, 너희는 인간들만큼이나 어디서든 보이더라. 도심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까마귀들이 실제로 너희고, 2010년부턴 한국에서 폭발적으로 수가 늘었다고 들었어. 가덕도에 새매, 솔개, 황조롱이, 벌매 등 맹금류 새를 조사하러 나갔던 날, 동네 주민분들이 오셔서 너희에 대해 말씀하셨어. 떼로 몰려다니며 쓰레기를 ‘디벼서’ 고양이 새끼마냥 아주 거슬린다는 웃음과 한탄 어린 얘길 들었지. 가사노동을 하는 아주머니를 방해하는 네 모습이 그려져 같이 웃게 되더라. 그 뒤, 내 머릿속에 너희는 하늘 고양이가 되었던 거 같아.      

 동이 틀 무렵, 태양열을 받은 대지가 한껏 데워지면, 후끈해진 공기들이 상승하고 너네는 그 기류에 가파르게 몸을 내맡겨 날더라. 철새로 날아오는 맹금류를 농락하며 쫓아내기도, 놀기도 하는 너희. 함께 조사하던 선생님께서는 벌매나 새매의 활강을 방해하는 너희를 보며 양아치 같다고 하셨지만 난 그 모습이 지극히 인간과 닮았다 생각했어. 나중에 찾아보니, 영역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철새들을 경계하는 행위(mobbing)의 일종이라며? 인간 사회에서는 집단 폭력, 왕따, 텃세 등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비슷하게 보이는 너네 집단 행동을 못마땅하게 보나 봐. 실제로 너희들은 유익한 정보들을 서로에게 알리고, 배신하는 행위를 용서하지 않는 면모를 보이기도 하는 사회적 동물인데.     

 때로는 역풍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춤하기도, 기류 사이사이를 헤집으며 장난을 치기도 하는 너. 입을 벌리고 멍하니 햇빛을 반기는 너. 내가 친근감을 느끼듯, 오래전부터 다른 사람들도 네게 많은 감정을 느꼈나 봐. 한국에서 길조라고 여겨지는 까치보다, 오히려 까마귀에 대한 속담이 훨씬 많더라? 88개가 넘던데? 그중 대부분이 부정적인 얘기들이라, 너희에 대한 편견이 더 강해졌나 봐. 이것마저 사람들이 너희에게 친근한 감정을 얼마나 오래전부터 느껴왔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 사람은 가까이 있는 이의 흠이 더 잘 보이거든.      

 하늘과 땅 사이, 새. 인간의 여러 얼굴들을 바람처럼 조롱하며 넘나드는 너희. 여러 신화, 민담, 농담을 드나들며 말의 경계를 비집고 자유로이 활강하는 너희. 흔해서 구박받지만 살아남아 오늘도 아악아악- 얘기를 나누는 너희 까마귀과. 동서고금 막론하고 세계에 퍼져 여러 신화와 구전에 남아 있는 게 사실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네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들어. 인간이 다른 종들을 하등한 생물이라 업신여기고 경계 지을 필요가 없다는 걸. 우리도 여느 생명과 같이 타자에게 겁먹은 채 방어를 하며 누군가를 해할 수 있는 존재인 걸 몸으로 느낄 때 인간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들을 조금이나마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걸. 우린 모두 내 삶의 영역을 너무나도 지키고 싶은 약한 존재들이야. 쉽게 금수가 되고, 괴물이 되는걸.


 요즘 너희를 유해 야생 동물로 지정할지 아닐지 논의가 계속되고 있더라. 환경부는 네가 정전을 일으키고 도심에서 쓰레기를 뒤지며 사람을 공격하기 때문에 위해성을 가졌다고 보고 있어. 유해조수로 지정하는 것이 함부로 죽일 수 있다는 말이 아니란 보도가 올라오지만, 난 이 얘기가 미덥지 않아. 이미 유해동물로 지정된 많은 비인간 동물들이 너무 많이 죽어가고 있으니까. 


 높은 교목에 둥지 짓는 습성이 있던 까치는 나무가 없어진 도심에서 전신주를 선택해 둥지를 지은 건데 유해 조수가 됐었잖아. 한국전력공사에선 2000년부터 까치를 잡아 오면 몇천 원씩 포상금을 줬었대. 다른 지자체에서도 비슷하게 시행 중이고. 그러곤 까치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경쟁 대상이었던 너희 수가 많아진 거지? 한국전력공사 조류 포획 위탁사업 포상금 지급 내역을 보면 2008년부터 17년까지만 해도 포획한 까치가 215만 1000마리던걸. 나는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입장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만큼 관련 삶의 종사자들이 유해 조수를 지정하라 주장하는 것에 말을 얹진 못하겠어. 다만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존재를 간과하고 지은 우리 구조물의 책임이 온전히 너희에게 돌아가 목숨까지 쉬이 앗아가는 걸 지켜보기만 하고 싶지 않아. 너희가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되어 숨을 빼앗기지 않았으면 좋겠어. 좀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조만간 다른 유해 야생 동물들의 안부를 살피려 해. 네가 활공하는 모습을 오래오래 볼 수 있길. 언제나 우리 주위에 부대끼며 함께 살아가길 바라.     

2023.10.6. 

운주 씀 


[참고자료]     

이유범, “민물가마우지·큰부리까마귀, 유해야생동물 지정 추진”, <파이낸셜 뉴스>,  https://www.fnnews.com/news/202307311351317396     

“민물가마우지 야생동물 지정 추진”,4p.큰부리까마귀의 생태 특성. 환경부 보도자료, https://www.me.go.kr/home/web/board/read.do?menuId=10525&boardMasterId=1&boardCategoryId=39&boardId=1616600     

우리말샘, “까마귀와 관련된 속담 : 88개” , wordrow , https://wordrow.kr/%EC%86%8D%EB%8B%B4/%EA%B9%8C%EB%A7%88%EA%B7%80%EC%97%90-%EA%B4%80%ED%95%9C-%EC%86%8D%EB%8B%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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