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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톤 Nov 27. 2022

Prologue: 전교 1등만 모인 학교

평범하지 않은 학교에서 평범하게 살아남기

합격

이 두 글자를 본 순간 나는 말 그대로 오열했다. 그날은 중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겨울날이었다. 수학학원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휴대폰 액정 위에 무수히 많은 눈물방울을 떨궜다. 운전하시던 엄마는 내가 불합격한 줄 오해하셨을 정도로.


눈물이 많은 내가 유일하게 잘 울지 않던 시기는 중학교 시절이었다. 3년 동안 운 기억이 다섯 번도 채 되지 않는데, 역설적이게도 내 인생 전체에서 가장 많이 울었다고 기억하는 때가 바로 이 날이다. 합격했는데 왜 그렇게 우냐는 엄마의 가벼운 핀잔을 들으며 나는 눈이 부은 채로 웃었다.


나 마카롱 먹을래. 합격하면 마카롱 열 개 사서 쌓아두고 먹는 거, 로망이었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엄마는 내가 평소 가장 좋아하던 마카롱 가게 앞에서 날 내려주셨다. 추운 겨울 공기가 눈물 자국이 눌어붙은 내 볼 위를 스쳤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나 이제 그 학교 학생이구나.


대학 입시철 한가운데에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얼마 전 2023 대학 수학능력시험에 응시했다. 이제 곧 뉴스에서는 고교별 명문대 합격자 수를 발표하겠지.


나는 그 뉴스에서 꽤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는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 출신이다. 아직 졸업하지 않았으니 '출신'이라는 표현이 부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분류 명칭 역시 ‘전국 단위’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일 때도 있지만 편의상 자사고라고 칭하려 한다.


16년간 나는 큰 노력 없이도 공부에서는 늘 1등이었다. 성적으로 줄 세워지는 이 사회에서 언제나 먹이사슬 최고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모두가 부러워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 언제나 예외적이고 언제나 특별 대우를 받는 사람. 중학생 때는 소위 전교 1등이라고 불리며 3년간 매 시험에서 평균 99점을 넘길 정도로 독보적인 성적을 받았다.


짧은 인생 동안 내 이름과 가장 많이 함께한 수식어는 ‘완벽’이었다. 공부 외적으로도 굴곡 없는 인생이었다. 미술 과목 교과우수상을 받고, 합창대회에서 2년간 지휘자로 인정을 받을 정도의 예체능적 능력이 있었다. 친구와 크게 다퉈 본 적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좋아했다.  처음 보는 같은 학교 친구에게 예쁘게 생겼다며 마주치면 인사해도 되겠냐는 말을 들어본 적도 종종 있었다.


사실 그 속에서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성적이 좋다고 해서 왜 나에게 인격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완벽함을 요구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당시 나는 상냥하고 잘 웃는다는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조금은 추잡한 감정들을 모두 억누르며 살았다. 이제 나조차도 내 진심이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할 때 즈음 나를 지탱하는 끈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이 학교에 지원했다. 오만한 말이지만 평범하게 살아보고 싶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 속에서 나도 때로는 유치하게, 때로는 하고 싶은 대로, 때로는 일탈을 즐기면서 살아보고 싶었다.


막상 입학하고 보니 또다시 1등이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학교는 내가 초심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꽤나 평범하게 살았다. 어떤 과목은 교과 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잘했고, 어떤 과목은 아무리 공부해도 남들보다 못했다. 출전한 대회에서 어느 날은 상을 받았고, 어느 날은 성과 없이 빈손으로 돌아왔다. 학교 친구들 중 누군가는 내 이름을 알지 못했고, 누군가는 인사도 해본 적 없지만 나를 알았다. 전교생이 내 얼굴과 이름을 알던 중학생 때와는 달랐다. 그 약간의 자유가 무명이라는 해방감을 선물해 주었다.


모든 사람의 학창 시절은 다르고, 그래서 그만큼 가치 있다.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학교를 내세워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게 사실 조금은 영악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 학창 시절 역시 특별하기에, 16년간 완벽한 모범생으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그저 지나가는 학생 1이 되어버린 나의 이야기도 누군가는 궁금할지도 모르게 때문에, 나는 내 십 대의 마지막을 글에 띄워 마무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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