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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톤 Feb 09. 2023

01. 중학생의 나는

완벽에 대한 강박

프롤로그에서 언급했다시피, 열여섯 살 때까지 나는 짧지만 굴곡 없는 인생을 살아왔다. 서울시 의회상을 받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3년간 다닐 중학교를 처음 만난 건 예비소집일이었다.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고 조용히 앉아있었던 기억밖에 없는데도 후에 나의 1학년 담임선생님은 그날을 이렇게 회상하셨다.


"나는 그때부터 네가 마음에 들었어. 반듯하고 야무져 보였거든."


확실히 나는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인상이었다. 6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열세 살밖에 안 된 나를 세자빈 같다고 묘사하셨을 정도니까.


내가 어쩌다가 중학교 내에서 나름의 유명인사가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어 듣기 평가 성적이 반에서 나 혼자 100점이었을 때? 아니면 수리 사고력 대회에서 1등을 했을 때? 어쨌거나 나는 공부를 잘했고, 중학교 성적을 전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첫 시험 결과는 정확하게 기억한다. 국어 95점, 나머지는 올백.

 

당시 많은 사람들이 공부법을 물었다. 진부한 답변이지만 나는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 아니, 교과서를 통째로 외웠다. 교과서를 읽으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형광펜을 치고 그 부분을 달달 암기했는데, 조사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에 형광펜이 칠해졌다. 한 마디로 교과서를 싹 다 외운 것이다. 중얼중얼 입으로 말하며 머릿속에 입력한 후 백지에 쓰면서 복습했다. 물론 중학생 때라 통했던 방법이지만 그때의 나는 두 달에 한 번씩 형광펜이 다 닳는 걸 보며 뿌듯해했다.


그렇게 공부했던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시야가 좁았기 때문에 학생이라면 당연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운 좋게도 투자한 노력과 시간 대비 효율이 좋았다.


시작부터 정점이었기 때문에 라이벌은 없었다. 그래서 더 갈증이 났다. 내가 이겨야 하는 건 나뿐이라 더 힘들었다. 왜 전부 다 백점을 받지는 못하는 건지. 나는 후회 없게 열심히 했는데.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1등을 해도 별로 기쁘지 않았다.


결국 올백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제일 잘 본 시험은 딱 한 과목이 98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100점이었다. 그때 친구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마저 매 시간마다 나에게 질문하셨다. 이번에는 올백이야?


그 물음에 부정으로 답해야 하는 내가 너무나도 싫었다.


열네 살 당시 내 신체는 158cm에 37kg이었다. 타고나길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어쩌다 보니 마른 편이었다.


정작 나는 외모에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몸이 특별히 자랑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날 부러워했다. 연예인급 스펙 아니냐, 어떻게 40kg이 안 넘을 수 있냐, 그런 칭찬들에 알게 모르게 물들여졌다.


다만 우리 중학교에는 매점이 있었고, 급식이 맛없으면 그냥 안 먹고 넘어가던 초등학생 때와는 다르게 친구들과 매일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매점에 드나들었다. 그래서인지 중학교 2학년의 나는 키가 1cm밖에 자라지 않은데 비해 몸무게 앞자리가 4에 도달했다.


그래봤자 40kg 초반이었으니 여전히 마른 체형이었다. 평소처럼 급식실에서 식판을 받고, 급식 지도 선생님께 인사하고 지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내가 1학년 때 가장 좋아하던 선생님께서 지도를 담당하셨는데,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도 드디어 살이 조금 찌긴 쪘구나. 작년에는 체육복 바지가 헐렁했는데, 이제는 몸에 좀 붙네."


악의적인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이 더 보기 좋다는 뉘앙스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 나는
살도 찌면 안 되는구나.
예뻐야 하는구나.


다행히도 식이장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나는 거울 속 내가 늘 통통해 보였다.

S 사이즈가 몸에 맞지 않을까 봐 옷을 사는 것이 두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원래도 낯을 많이 가리기는 했지만 더 어릴 때는 그렇게 조용한 성격은 아니었다. 장난을 많이 치는 남자아이들과도 곧잘 어울렸고, 학교가 끝나면 저녁때까지 친구들과 떼를 지어 노는 게 일상이었다. 말수가 줄어들기 시작한 건 열네 살 때부터였다.


아무 말 안 해도 모두 나를 좋아하고 부러워하는데
입을 열면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나의 생각과 사고와 소통이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가 되지는 않을까.


지금은 확실히 인간관계가 좁지만, 초등학생 때는 인맥이 꽤 넓은 편이었음에도 늘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거는 건 언제나 긴장됐고, 유머 감각이 좋거나 말을 재미있게 하는 성격은 확실히 아니었기 때문에.


어른들에게 사랑받는 법은 비교적 쉬웠다. 예의 바르고 해맑고 싹싹하게. 타고난 성격도 일정 부분 있었고 부족한 구멍은 노력으로 메꿀 수 있는 영역이었다. 다만 또래 아이들은 착하고 모범적인 아이보다 재밌고 털털한 아이를 좋아했다. 성격을 노력으로 바꾸는 건 너무나도 넘기 힘든 허들이었다.


그래서 늘 조용히 웃었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런 나에게는 성격이 착하고 웃는 게 예쁘다는 칭찬이 하나 더 늘었다.


완벽해야 하는구나.
성적도, 외모도, 인성도.
나는 지금 그 모든 게 완벽한 사람이고
더 발전할 수는 없으니 유지해야 해.
조금이라도 변하면 안 돼.

완벽해야 사랑받을 수 있어.


나는 그 당시에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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