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실, 가출, 여행
영영 잃어버리고 만 물건들 중에는 소중한 것들이 많았다. 가격대가 꽤 높아서 두 달 동안 고민하다 구입했던 하늘색 우산, 틈날 때마다 읽으려고 편지를 넣어두었던 반지갑 같은 것들. 오천 원 주고 산 접이식 우산은 6년째 잘 쓰고 있고, 하루도 빠짐없이 들고 다니는 체크무늬 지갑에는 오염 한 점 없는데. 딱 하나 잃어버리는 것은 희한할 정도로 가장 아끼는 물건이었다.
아쉬워하고 고민하다 끝에는 물건이 나를 떠나버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실물을 되찾으려던 그 모든 노력이, 물건이 나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버린 건 아니었을까?
분실이 아니라 가출이었다면 보내주어야 할까?
분실물을 되찾았던 날도 가끔이지만 있었다. 은색 타원 안에 카라꽃이 조각된 목걸이는 꽤 오랫동안 내가 가장 좋아하던 액세서리였는데, 대학교 오리엔테이션 때 어쩐지 허전한 기분이 들어 목 근처로 손가락을 더듬어보았다. 목걸이가 어디 갔지. 아침에 분명 걸고 나왔는데. 목의 가벼운 무게감은 옅은 불안감으로 다시금 무거워졌고, 신체검사를 받을 때 잠시 풀어 두었던 기억이 다행히도 금세 떠올랐다.
오리엔테이션이 다 끝나고 찾으러 가면 점심시간이라 아무도 안 계실 터였다. 그렇다고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기에는 강당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기에 시선이 신경 쓰였다. 진행자의 말소리는 어느덧 가사를 알 수 없는 배경음악이 되어버렸고,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강당 밖으로 뛰어나갔다.
길을 잘 알지도 못하던 학교에서 볼이 새빨개질 때까지 무작정 달렸다. 숨이 찰 때까지 달리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타려던 버스가 눈앞에서 지나가도, 초록불로 바뀐 신호등이 깜빡여도 서둘렀던 적이 없는데. 당시의 나는 좋아하는 게 너무도 없어서 아직 달리는 법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욕심내는 법을 잊지 않아서. 사랑하는 법을 기억하고 있어서.
무사히 되찾은 목걸이는 서너 달 뒤에 결국 내 손으로 쓰레기통에 넣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은 세정제로 아무리 문질러도 깨끗해지지 않을 정도로 색깔이 변해버린 것이 원인이었다. 아침마다 뿌리던 향수가 닿은 게 문제였을까? 아니면 내 사랑이 무언가를 자꾸만 녹슬게 해서? 급속도로 지저분해진 모습을 보고 있자니 버림받는 기분을 들게 하는 것보다는 잃어버린 채로 두는 것이 나았을까 싶기도 했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는 언젠가 인형을 잃어버린 소녀에게 인형을 대신해서 편지를 써 주었다고 한다. 울지 마, 나는 세상을 구경하려 여행을 떠났어. 내 모험에 대해 너에게 편지를 쓸게. 그렇게 모험담을 담은 편지를 몇 번이고 전해주다 마지막에 새로운 인형을 안겨주었을 때, 소녀는 구겨진 얼굴로 자신의 인형과 다르게 생겼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때 카프카는 다시 한번 인형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여행이 나를 변화시켰어.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가출이 아니라 여행이었을 수도 있겠네. 그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처음의 그 인형이 아니잖아. 그래도 그 말이 조금 위안이 되었던 건 여행이었다면, 적어도, 내가 지긋지긋해서 떠난 건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만약 여행이었다면 돌아오지 않더라도 보내줄게.
온갖 걱정과 불안만 끌어안고 사는 내 모습이 신경 쓰였는지 그 사람은 목걸이를 새로 선물해 줬다. 작은 진주알로 장식된 은 목걸이. 이건 잃어버려도 되니까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걸고 다녀. 별로 비싸지도 않고, 그냥 예뻐 보여서 샀어. 그 말에 나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고 날을 세워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네가 나에게 준 것 중에 잃어버려도 되는 마음은 없어.
하지만 이전의 목걸이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새 목걸이를 맞이할 공실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 차이를 조금쯤 이해한다. 나는 절대로 다음을 기다리지 않지만 너에게는 늘 내일이 있다는 게, 단순한 싫증이나 변심과는 조금 다른 종류라는 것.
분실물을 정의하는 것은 애착이라는 짧은 두 음절의 단어가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냥’ 우산이고 ‘그냥’ 지갑이면 똑같은 제품을 다시 사면 될 일인데, 그걸 어렵게 하는 단 하나의 마음. ‘그냥’의 가치조차 갖지 못한다면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쓰레기로 사라지게 하는 잔인한 구별법. 그러니까 무언가를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는 내가 상대에게 있어 제자리이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카프카의 마지막 편지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네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아마 대부분 잃어버리게 될 테지. 하지만,
결국 사랑은 다른 형태로 돌아오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