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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톤 Mar 01. 2023

03. 중학생도 스펙이 필요한가요

입시판에서의 나는 노베이스였다

고등학교 입시가 반년 남은 시점에 처음으로 면접 학원을 찾았다. 집 근처에는 마땅한 학원이 없어서 자동차를 타고 30분 정도의 거리를 달려갔다. 차가운 자동차 창문에 가만히 볼을 대고 창밖을 구경하다 보니, 곧 차갑고 하얀 학원 의자 위에 걸터앉게 되었다. 선생님을 처음 마주하자마자 질문이 시작되었다.


“성적은 3년 내내 올 A 맞지? 동아리는 어떤 거 했어?“


“아, 저는 교지부랑 영자신문반 했어요.”


“교지부? 이과라고 하지 않았나? 수학 교사 지망이라고.”


“그렇긴 한데... 어쩌다 보니?"


지금은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고 있지만, 열여섯 살의 나에게 자발적으로 글을 쓰는 건 상상조차 못 할 일이었다. 단지 글을 쓰는 효율이 좋았을 뿐 즐거운 취미는 될 수 없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서는 교지부가 학교 측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동아리 중 하나였고, 그 표시로 교복에 배지를 달고 다녔으며 회식비도 종종 지원받았다. 그런 이유로 부모님께서 교지부를 추천하셨지만 나는 방송부 아나운서에 지원하겠다고 고집했다. 막상 지원 공지를 확인해 보니 그 해에는 아나운서를 모집하지 않아서 마감 며칠 전에 어쩔 수 없이 교지부에 지원서를 넣었고, 필기시험과 면접을 거친 후 덜컥 합격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들어간 동아리였지만 의외로 적성에 맞아서 꽤 만족해하며 3년을 보냈다.


딸깍, 딸깍. 조용한 와중에 볼펜 소리만 두어 번 울렸고, 선생님께서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시는 듯한 표정에서 깨어나 곧 질문을 이어가셨다.


“혹시 뭐 다른 활동은 없을까? 예를 들면 다른 친구는 학교에서 전자책 제작 프로젝트를 진행했거든. 소논문이라든가, 그런 것도 좋고.”


소논문이라니, 나는 열여섯 살이 되도록 논문이라는 걸 읽어본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 읽은 적도 없는데 써본 적은 더더욱 없지 않겠는가.


“저희 학교에는 그런 활동 자체가 없어... 서? 중학생이 논문을 써요?”


“ㅎㅎ...”


“아, 그래도 어린이 박물관에서 꽤 오래 봉사활동 했고, 학생회 활동 1년 했어요.“


“오, 그건 좋다.”


내 이름 세 글자와 ‘3년 올 A’, 이 두 가지만 덩그러니 적혀 있던 상담 용지 위로 선생님께서 파란색 볼펜을 움직이기 시작하셨다.


“학생회에서 맡은 역할이 뭐였어?”


“원래 총무부 하고 싶었는데, 국어 선생님께서 저를 서기로 추천하셔서 결국에는 그거 했어요."


펜의 움직임이 다시 멈췄다. 미묘한 표정으로 선생님께서는 나를 보며 웃으셨다. 어정쩡한 분위기를 눈치챘지만 그저 해맑게 웃었다. 말하는 당사자인 나도 민망할 정도로 내 대부분의 학교 생활은 자발적인 의지보다는 추천과 추천의 연속으로 이루어졌다. 나의 기호보다는 주변의 바람에 기대어 사는 삶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럼 마지막으로, 독서활동은?"


"저 학기마다 서른 권 정도 읽어서 독서 기록은 꽤 많을 거예요."


"오, 책은 어떤 거 읽었니? 수학 관련으로 좀 읽었으려나?"


"저 그냥 소설 좋아해서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 이런 거..."


풉. 선생님께서 작게 웃으시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그저 좋아서 했던 유일한 활동이 독서였는데, 입시에서 이점을 가질만한 이력은 아니었다. 그때의 독서 기록은 지금 다시 봐도 정말이지 헛웃음만 나온다. 빽빽하고도 빽빽한 독서량에 비해 오로지 좋아서 읽은 게 분명한 중구난방의 제목들. 온갖 소설과 에세이의 향연에서 묻어나는 심각한 독서 편식. 오히려 그 순수함이 서류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평생 서울에서 살았는데도 갓 상경한 시골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얘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제야 이 자리에 앉아 있나 싶으시겠지. '나 여기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데도 이상하게 그 기분이 싫지 않았다.


"그래, 다음 주에 보자."


나는 흔히들 말하는 학군지 출신이 아니다. 그저 평범하고도 평범한 동네. 학원이나 독서실보다는 맛있는 음식점이 더 많고, 노을 지는 한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에서 자랐다.


학원도 거의 다니지 않았던 터라 중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벗어나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스스로가 너무나도 작아 보였다. 이미 충분히 갖추었다고 생각한 건 자만이었나. 그보다 더 무리한 것들이 기본 소양으로 요구되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을 나를 제외한 모두가 당연하게 여겼다. 내가 내세울만한 건 성적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서류 평가에서는 성취도로만 기입되어 높은 원점수가 아무런 의미 없었다.


다들 이 학교를 언제부터 꿈꿔왔던 걸까. 중학교 1학년? 아니, 초등학생 때부터? 고작 도망칠 궁리나 하는 내가 그런 간절한 노력과 마음을 이길 수 있을까?


그래도 한 가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 학교에 가면 내가 바라던 대로 '지나가는 학생 12' 정도로 살 수 있겠다. 아니, 12번 엑스트라도 과분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노베이스라는 차가운 현실이 별로 무섭지 않았다. 일단 하는 데까지 해보는 거지, 뭐.


결국 나는 내가 속했던 반에서 같은 학교를 지망하던 아이들 중 유일한 합격생이 되었다. 창문도 의자도 모든 게 차가웠던 그날에는 선생님도 모르셨을 것이다. 본인 눈앞에 앉아있는 단발머리 아이가 얼마나 미련하도록 성실한 아이였는지. 요령이라는 게 없어서 시험 전에 교과서를 몇 권씩 통째로 외워버리던 아이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지.


나는 면접을 위해 말 그대로 내 모든 걸 재창조했다. '자소설'이라는 표현이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은 고등학교가 아닌 면접 학원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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