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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Oct 05. 2020

몰라서 못 풀겠는데요 VS 모르니까 풀어봐야지

“몰라서 문제를 못 풀겠어요.”

혜지가 말했다. 

“모르니까 문제를 풀어봐야지.”

내가 말했다.

몰라서 문제를 못 풀겠다는 혜지와 그래도 문제를 풀라는 나의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수학은 개념이 중요하다고, 혹은 개념 이해가 안 된다고 개념 강의만 듣는 학생이 있다. 이것은 올바른 공부법이 아니다. 개념이 문제에서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직접 부딪쳐보는 게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뭉툭한 개념이 깎여 나가고 예리해지기 때문이다. 문제를 통해서 야만이 비로소 개념이라는 허상이 실체로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곱하기를 예를 들면 ‘3 곱하기 5가 15’라는 것은 들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사과가 3개씩 5묶음이 있으면 15개이고, 5개씩 봉지에 들어있는 빵이 몇 봉지가 있어야 15개가 되는지 묻는 문제를 풀어보면서 배수와 곱셈의 개념을 ‘알게’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문제로 숙련도와 정확도를 길렀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 현재 학교 시험의 본질이다. 개념이 이해가 안 된다고 문제를 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수영을 하는 데 물속에 뛰어들지 않는 것과 같다. 음파, 음파 하는 숨쉬기와 발차기를 배울 때마다 왜 하는지 의문을 가지기보다 몸에 습득하는 게 우선이다. 수영을 하기 위한 몸의 부위별 움직임을 익힌 후 수영을 실제로 하면서 강사가 중요하다고 한 것이 하나씩 와 닿게 된다. 그제야‘알게’되는 것이다. 수학이 수련 학문이기에 수영과 원리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질문을 가지는 시점도 중요하다. 단원 시작 단계에서는 뭘 알고 싶은지 모른다. 이런 상태에서 설명을 들어도 들을수록 어렵게 느낄 뿐이다. 이럴 때는 ‘질문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편이 좋다. 알아서 문제를 푸는 게 아니다. 아는 것을 테스트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구체적인 질문 거리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고민의 지점을 쌓아놓는 게 필요하다. 문제를 풀면서 왜 이렇게 되는 거지? 이 문제는 이렇게 푸는데 저 문제는 왜 그렇게 풀지 않는 거지? 하면서 생각의 덩어리를 키워나간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해결이 되는 것도 있고 그래도 남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때 교사에게 질문을 하면 된다. 그렇게 나온 질문은 보다 구체적이기 때문에 대답도 세부적일 뿐 아니라 단원의 이해와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에 후련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이어서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면 사고의 폭이 넓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질문하는 태도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다. 질문을 가지는 건 호기심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지 결코 멈출 이유는 아니다. 자동차라면 시동은 끄지 않은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상하다고 느낄 때마다 시동을 끄고 들여다본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내용이었지만 완주하고 나니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런 거였구나를 아는 경험이 쌓이다 보면 다음에 어려운 것이 나와도 겁을 먹지 않게 된다. 조바심보다는 ‘이건 좀 이상한데?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생각해봐야겠어’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성격적으로 대범하거나 상상력이 큰 학생들은 문제없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운동이나 춤 같은 비학습적인 영역에서 성취 경험을 쌓는 것도 태도를 기르는데 좋은 방법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열린 태도는 배울 것이 많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심리적인 문제, 가르칠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혜지한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물을 무서워하는 아이한테 물에 뛰어들라며 등을 밀어서는 안 된다. 경험이 중요하다. 물에서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수영에 거부감이 없듯이 같이 놀아준다는 생각으로 놀았다(문제를 풀었다).


이번에 혜지가 어려워한 것은 원에 보조선을 긋는 것이었다. 

“어떻게 알고 선을 그어요?”

(이렇게 저렇게 그으면서 시행착오를 하다 보면 감이 생기는 거지만) 나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긋고 싶은 대로 한번 그어봐.”

“이렇게요?”

“좋아. 그렇게 하고 문제 한번 풀어보자.”

“안 나오는데요?”

“그럼 다르게 그어볼까?”

세 번 만에 혜지가 그은 게 맞았다. 

“잘하는데? 또 해볼까?”

어떻게 해도 안전하다는, 실수를 통하지 않고서는 배울 수 없다는 걸 그저 몸으로 새겨나갈 수밖에 없었다. 나의 역할은 안전한 그물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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