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정 Oct 31. 2020

도구로서의 공부

준이가 과외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다. 준이는 뭔가를 잊어버리는 일이 많았다. 연습장, 문제집 등등. 어제는 숙제로 내준 프린트를 놓고 왔다. 그동안 이런 일로 선생님들에게 얼마나 혼이 났을까 싶어서 아무 말하지 않았다. 꾸지람이 효과가 있었다면, 준이의 건망증은 이미 고쳐졌을 것이다.


준이의 전화기는 항상 울려댔다. 대개는‘용가리’,’ 대두’라고 저장되어 있는 친구(라고 추정되는) 인물들에게서 오는 전화였다. 특이한 점이라면 이들은 전화를 받지 않아도 받을 때까지 계속한다는 것이다.


오늘은 준이가 숙제를 손도 대지 않고 왔다. 

“친구들하고 피시방에서 노느라 못했어요.”

“용가리하고 대두랑?”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면서 해맑게 웃는다.


학원에서 과외로 바뀌고, 선생님이 달라지면 기존의 문제들이 사라질까? 예전 습관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상태라면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앞서의 지난한 과정이 다시 재현될 뿐.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방해가 되었던 습관을 하나씩 바꾸어야 성적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준이야, 성적 올리고 싶어?”

“당연하죠.”


하지만 본인의 소망이 아닐 수도 있다. 부모님의 기대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는지도. 자꾸 빠뜨리는 게 증거다. 무의식이 작용한 것일 수 있다. 결혼반지를 깜빡하고 끼지 않는 일이 잦았던 남편이 정신과 상담을 받았더니 자신에게 속박(결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처럼.


“너는 현재 성적에 만족할 수도 있고, 어쩌면 다른 것을 하고 싶을 수도 있어. 우선 그것부터 고민해봐.”

일주일이 지났다.

“준이야 생각해봤어?”

그런 질문을 처음 받아본 준이로서는 막연한 기분이었다.

“제가 공부 말고 다른 걸 하겠다고 하면 부모님이 가만있겠어요? 못하게 할 게 뻔한데 제가 고민하는 게 무슨 소용이에요?”

“그럴 수 있겠네....”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부모님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

“그러면 집도 없고, 돈도 없는데 어떻게 살아요?”

“계속 이렇게 살아야 되나?”

“아니죠, 대학을 다른 지역으로 가면 해방이죠.”


준이는 자신을 억압하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공부와 관련된 것을 하나로 뭉뚱거려서 피하려고만 했다. 마지못해서 억지로 하는 척했는지도 모른다.

"수도권에 있는 대학을 가야겠어요."

"그러면 부모님이 더 이상 참견하지 않을까?"


공부 잘하는 걸 목적 말고 도구로 생각해보라고 했다. 부모님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독립하는 도구로.  그러는 사이 자기 통제능력이 생기고, 그건 앞으로 준이가 하는 일에 반드시 필요할 테니까.


"일주일이라도 스스로 절제하는 모습을 보이면 부모님의 잔소리도 한결 줄어들걸?"


도구로서의 과외, 나한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작가의 이전글 몰라서 못 풀겠는데요 VS 모르니까 풀어봐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