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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Oct 31. 2020

수강 취소할게요

4시에 신입생이 오기로 했다. 처음은 항상 긴장된다. 벨소리가 나기를 기다렸지만 조용했다. 시간을 잊었나? 금요일에 상담을 하고 주말이 지난 월요일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4시 5분에서 6분으로 넘어갈 때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학 과외 선생님입니다. 오늘 수업…”

“선생님 죄송해요. 수강 취소할게요. 다음에 기회 되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잠시 멍하게 있었다.


현재 수강생은 7명, 수강생이 늘어도 모자랄 판에 2주 전에 퇴원생이 생겼다. 오늘 오기로 한 학생으로 만회를 하고 수강생 모집에 신경을 쓰자고 마음먹고 있었다. 두 달 만에 온 상담전화였고 꼭 수강으로 이어졌으면 했는데 시강을 하기도 전에 거절을 당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엄마, 수업 있다더니 아무도 안 와?”

“어, 안 온데.”

표정관리가 전혀 안 되는 얼굴로 말했다. 지금 있는 학생들 중에 또 퇴원생이 생기면 어떡하나 싶었다. 나 지금 절박하는구나…


배가 고팠다. 나도 먹어야 하고 딸도 먹어야 하니 뭐라도 만들어야 했다. 카레가 눈에 보였고 아침에 한 밥이 있었다. 밥을 매일 하지 않으니 이런 날은 짜장이나 카레를 하면 좋겠지. 돼지고기는 있고 양파가 있나? 양파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냉장고 밑까지 들쑤셔서 두 개를 찾아냈다. 감자 세 개의 껍질을 벗겼다.


배추김치를 꺼내려다가 이건 뭐지 하고 반찬통 하나를 열어봤더니 6개월도 전에 엄마가 보내준 열무김치였다. 맛이 없어서 안 먹고 뒀던 건데 카레에는 괜찮을 것 같아서 반찬 그릇에 옮겨 담아서 먹기 좋게 잘랐다. 그리고 밥과 카레를 넓은 그릇에 담았다. 김이 펄펄 나는 밥과 카레를 쓱쓱 비벼서 먹었다. 한 숟갈 먹을 때마다 열무김치도 하나씩 얹어먹었다. 그러고 나니 준이가 올 시간이었다.


준이가 숙제를 해왔다며 프린트를 꺼냈고 내가 채점을 줬다. 틀릴 때마다 준이는 “아”하는 탄식을 내뱉었다. 틀린 문제를 풀이를 하는데 준이가 말했다.

“여기까지는 맞았는데, 아깝다. 맞을 수 있었는데.”

“시험 아니고 공부하는 중이니까 틀릴 수 있지.”


수학 개념은 문제를 통해서 익히는 것이다. 문제를 푸는 과정은 두루뭉술한 개념을 예리하게 깎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막연했던 개념이 점점 와 닿고 내 안에 자리 잡게 된다. 그러기 위해 문제를 틀리는 것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일 뿐이다.


이렇게 말하려다가 관뒀다. 나 지금 누구한테 충고를 하려는 거지? 정작 충고가 필요한 건 내가 아닌가? 수강생이 늘려면 중간에 퇴원생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럴 때 반성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 된다.


이번에는 상담이 문제였다. 수학 상담을 하는데 입시의 문제점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게 마음에 걸렸다. 여기는 어떨까, 가뜩이나 확신이 없는 학부모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다니. 내가 글쓰기를 배우러 갔는데 출판시장의 부조리를 듣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마도 내가 전문가라는 걸 알리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어차피 판단은 내 몫이 아닌걸. 그저 학생과 학부모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면 되는데. 내 역할은 교습 방식을 정확히 안내하는 것뿐이다.


그래, 이렇게 오답풀이를 했으니 다음에는 조금은 나아지겠지. 괜히 실망해서 다 그만두고 싶다거나 학부모를 탓하거나 하는 것이야말로 그만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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