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아부지

by 김준정


가짜 아부지는 73세로 우리 아빠보다 한살이 많다.


“내가 딸한테 왜 결혼을 안 하냐고 했어. 그랬더니 딸이 아부지는 결혼해서 뭐 좋은 게 있었냐고, 왜 결혼하라고 하냐고 하더란 말이지. 그래서 내가 속으로 그랬어. 너를 낳았지 않았냐고 말이야.”

“따님한테 직접 얘기하지 그러셨어요.”


가짜 아부지는 (아부지라고 부르기 전부터) 대기업 연구실에 일한다는 딸 얘기를 자주 했다. 나를 보면 딸 생각이 나는 것 같았다.


울산 가지산을 갔을 때다. 아부지는 늘 ‘한번 해병은 죽어도 해병’이라며 군대 얘기를 많이 했는데, 울산에 사는 군대 동기가 찾아오기로 했다고 했다. 새벽에 차에 타면서부터 친구와 전화 통화에, 군대 얘기에 한껏 들떠 있었다. 내가 물었다.


“그 친구분 몇 년 만에 만나는 거예요?”

“십 년도 넘었지.”

십 년 동안 안 만난 20대 시절의 군대 동기를 아부지가 괜히 무리하게 만나자고 한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그것도 (30분 만에 먹는) 하산주 먹는 장소에 오라고 하다니. 십 년 만의 조우를 양철 밥상을 두고 하게 생겼다.


산행을 마치고, 산악회 버스 있는 곳을 갔다. 버스는 (오늘따라) 외진 다리 밑에 주차되어 있었는데 어떻게 설명했는지 그곳에 친구분 내외가 기다리고 계셨다. 눈물이 글썽한 채로.


따로 말씀 나누시라고 한 상을 차려드렸다. 얼마나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어김없이 버스 시동이 걸렸고 그들은 일어서야 했다. 아부지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먼저 차에 올라타버렸다. 왜 저러시지? 남겨진 친구분한테 나라도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와주셔서 고맙습니다"했더니 친구분은 “저 친구와 군대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을 넘겼는지 모른다”며 눈물을 훔치셨다. 차에 타서보니 눈이 벌겋게 되어서 울음을 꾹꾹 참고 있는 아부지가 보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식지 않을 만큼 뜨거운 감정이란 뭘까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진정이 된 아부지는 예의 천진난만함으로 친구와의 추억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다.

“친구분이 해병대에서 아부지하고 죽을 고비 많이 넘겼다고 하시던데요?”

“그랬지. 저 친구하고 나하고 사건이 많았지.”

“그런데 그때 전쟁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죽을 뻔했어요? 대구에 있는 진짜 아부지는 월남전에 참전했어도 군대 얘기 잘 안 하시는데.”


그 순간 폭소가 터졌고, 조용하던 버스 안은 소란스러워졌다. 모두 우리 얘기를 듣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부지는 멋쩍어하며 육군 백마부대를 자기가 잘 안다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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