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장은 항상 짐이 많았다. 하산주를 위한 술, 음식, 버너, 코펠, 식기 등등.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차에 싣는 걸 도와주었을 뿐이었는데 시간은 다른 운명으로 데려다 놓았다.
그로부터 2년 후, 나는 전을 부치고 있었다. 우리 산악회는 매년 1월이면 시산제를 하는데, 제물을 여성 회원들이 준비한다. 회원들 중 가장 어리기도 하고 믿을만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내가 전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다니. 1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산악회에서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이런 파격적인 인사가 가능하게 된 것인지 파헤쳐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꼼꼼했다면 어땠을까? 아깝게 타버린 굴전을 보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나의 임무는 ‘곶감’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박대장의 허술함의 역사는 나열하기가 벅찰 정도인데, 이를 논하자면 김총무를 불러야 한다. 김총무는 수다를 사랑하는 자로, 격하게 반길 걸로 예상한다.
박대장은 호남정맥의 리딩을, 김총무는 회비수납을 맡고 있다. 둘은 함께 뒤풀이 음식과 술을 준비하는데 김총무가 박대장에게 말했다.
“영수증 챙겼냐?”
“아, 깜빡했네.”
"지난달에도 깜빡했다고 했잖아."
우리 셋은 같은 정류장에서 탄다. 깜깜한 새벽, 산악인의 상징인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입김을 불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 산행 코스나 산의 역사를 얘기할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영수증 이야기였다. 상상과 현실을 언제나 다르다는 걸 어른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김총무의 취조는 계속되었다.
“산행지 답사간 거 기름값 얼마 들었냐?”
“그거 됐어. 안 줘도 돼.”
“고속도로 통행료 영수증은?”
“됐다니까.”
뭐가 됐냐, 기준도 없냐, 공과 사도 구분 못하냐, 이래 가지고 회사 일은 어떻게 하냐며 옥신각신했다. 이건 마치 마누라가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는 모습과 흡사했는데, 그만큼 자연스러워 보이는 게 기이했다. ‘이 둘의 관계는 뭐지?’ 생각하면서 지켜봤다. 원래 부부싸움에는 끼어드는 게 아니다.
너 때문에 속 터져 죽겠다고 하는 김총무와 내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때부터였다. ‘박대장의 역사’를 공유하게 된 게.
뒤풀이 메뉴가 늘 고민이었다. 남자 둘이서 하는 음식 얘기는 참으로 조촐했다.
“닭튀김 어떠냐?”
“그거 지난달에 했잖아.”
“족발로 하자.”
“그건 그 전달에 한 거고.”
산악인의 대화라는 것이 영수증 아니면 뒤풀이 음식 얘기다. 둘의 빈약하기 짝이 없는 말을 듣다 못한 내가 끼어들고 말았다.
“두부 김치 어때요? 김치만 준비하면 되잖아요.”
그게 시작이었다. 두부김치, 고속승진의 발단, 배후 인물로는 박대장과 김총무가 있었다. 그때부터 내가 호남정맥 뒤풀이 메뉴의 ‘최고 결정권자’ 되었다. 그들은 나를‘영양사’라는 직책을 주려고 했지만 왠지 둘의 지시를 받아야 할 것 같아서 거절했다. 어차피 영양은 생각도 안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