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이 사랑하는 것

by 김준정

박대장은 36구간이 산행거리 10km로 평소보다 짧아서 여유로운 산행이 될 거라고 했다. 나는 간밤에 잠이 안 와서 뒤척이다가 새벽 1시에 겨우 잠들었고 4시에 일어났다. 잠이 모자라서인지 초반 오성산 올라갈 때부터 힘들었다. 김선배는 오성산까지만 올라가면 오늘 산행은 끝난 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하지만 오성산 이후에도 비탈진 오르막이 이어졌다. 잡풀과 잔가지가 길을 막고 있어서 마치 싸움을 하듯 팔을 휘두르며 뚫고 지나가는가 하면 나무가 통째로 가로눕고 있어서 위로 넘거나 아래로 기어서 통과해야 했다. 그렇다고 내 가 박 대장과 김선배를 원망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여유로운 산행’의 정의와 ‘끝났다’의 말을 곱씹는 시간을 가졌다.


아침으로 구운 계란만 먹었더니 영 힘이 없었다. 오성산을 지나고는 밥 먹을 시간만 기다리고 이었는데 앞서 걷던 을씨가 두릅이 있다고 했다. 나는 조그맣게 올라온 여린 두릅 두 개를 땄는데, 아마도 배고픈 뇌가 시킨 생존본능이 발동이 된 것 같았다.


4월이라 꽃이 만발했다. 산 벚꽃, 얼레지, 할미꽃, 토종 철쭉이 가는 곳마다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특히 토종 철쭉은 연분홍으로 자주색의 진달래와 구분이 되었고, 은은하면서도 화사한 분위기가 있었다. 따뜻한 봄볕을 받으며 온갖 새순과 꽃들이 지천인 길은 걷는 기분은 충만한 기쁨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하기야 밥이라도 먹고 나니까 꽃도 예뻐 보였다.


밥을 먹고 난 후에는 급경사의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로프를 잡고도 발 디딜 곳이 여의치 않아서 발이 밀려났다. 로프는 개인이 등산객을 위해 매어 놓은 것 같았다. 낯 모르는 타인을 위해 이런 수고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투정을 부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올라간 봉은 유치산으로 꽤 참신한 이름이었다. 유치산의 정상석은 유난히 커서 어쩐지 과한 느낌이 들었다. 박 대장은 정상석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삐진 아이처럼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고, 아부지는 정상석을 안고 춤이라도 추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래서 이름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산을 하나 더 넘어야 하나? 설마 앞에 버티고 있는 저 산은 아니겠지?’를 계산하고 있는데, 주언니가 말했다.

“저기, 버스 보인다.”

끝이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듬직하고 당당한지 한참을 봤다. 다가갈수록 위풍당당한 위용이 더욱 드러났고, 그럴수록 내 마음도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그때 우리의 마음은 하나였다. 산악인 가장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하산주 메뉴는 돼지 두루치기였는데, 아부지와 금선배의 합작품이었다. 양념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당기는 맛이었는데, 특히 데친 콩나물이랑 같이 먹으니까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차에서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을 읽었는데, 술의 파괴적인 힘을 경고하는 내용이었다. 그 때문인지 맥주를 많이 마셨다. 여전히 볕은 따뜻했고, 얼음 속에 묻어 둔 맥주는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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