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팀이 참여율 저조 위기를 겪고 있을 때 환씨가 왔다. 전 달에 딱 떨어지는 10명이 참가해서 곧 한 자리 수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환씨는 도시락으로 머리고기와 묵은지, 그리고 순대를 삼단 찬합에 꽉꽉 채워왔다. 장인 김치 감별사를 자처하는 아부지가 말했다.
“담을 줄 아는 사람 솜씨고만?”
일차 통과라는 뜻이었다.
이게 다가 아니라는 듯 환씨가 가방에서 막걸리 세 통을 꺼내자 아부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어느샌가 환씨가 아부지를 “형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스무 살이 넘게 차이 나는 분을 본지 몇 시간 만에 ‘형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환씨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주일 뒤 내장산 산행에 환씨가 나타나자(호남정맥에 한 번 참가하고 안 오는 경우가 많다) 나는 아부지에게 “친구 왔어요”하고 알려줬다. 아부지 얼굴에 술을 바라볼 때와 같은 미소가 번지는 걸 볼 수 있었다. 내장산 신선봉을 향해서 맹렬히 올라가고 있는데 환씨가 누군가에게 “야 어쩌고 저쩌고, 너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누구랑 또 친구가 돼버린 건가 했더니 숙여사였다. 들어보니 어지간히 친밀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분위기였다.
“두 분 헤어졌던 사이였는데, 여기서 다시 만난 거예요?”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오르는 중이라 그런지 질문도 전투적으로 나왔다.
“무슨 소리양? 얘 좀 봐. 옛날 애인을 왜 여기서 만나냐? 조용한 데서 따로 만나지. 우리 초등학교 동창이양.”
숙여사가 특유의 리듬에 맞춰 말했다. 숙여사의 말에는 자문자답의 형식을 갖추고 있어서 얘기하다 보면 어리둥절해질 때가 있다. 질문을 했다 싶어서 답을 하려고 하면 숙여사가 말을 잇고, 이제 내 차례인가 해서 입을 열려고 하면 숙여사는 이미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중간에 어떻게든 끼어들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그녀의 철옹성 같은 수비 기술은 국가대표 축구선수에게 전수해도 좋을 정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나는 그만 전의를 상실한 채 방청객이 돼버리고 마는데 어라? 환씨는 숙여사와 대등한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숙여사의 말에 호응을 하는 것처럼 해서 찬스를 잡은 뒤 반박을 하고, 언니가 “아니양”할라치면 “그렇지”하면서 허허 웃으며 말을 이어서 공격권을 내주지 않는 식이었다. 환씨의 유려한 드리블 실력에 나는 감탄하고 말았다.
‘호응-찬스-드리블-다시 호응’의 환씨의 기술에 비하면 나는 뻥축구나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의 마음이 일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의 하는 ‘호응’이 내게 없었던 것이 패배 원인이었다.
처음에 환씨는 몸무게가 99킬로그램이라고 했다. 이상한 건 다이어트 중이라고 하면서 막걸리를 줄기차게 마셔대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막걸리 다이어트’를 하는 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는데, 환씨는 석 달 만에 91킬로그램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했고, ‘완전체’의 몸이 되었다며 뿌듯해했다. 그 모습에 나는 앞자리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고 얘기하려다가 그만두었다.
5월 10일에는 축령산 산행을 하고 ‘아침고요 수목원을’을 찾았다.‘아침고요 수목원’은 축령산이 있는 경기도 가평에 있는 곳으로 규모도 크고 테마별로 조성이 되어 있었다. 그중‘서화연’은 연못 주변으로 정자와 꽃들이 어우러져 한국정원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많은 관람객이 있었고 모두 한껏 멋을 낸 모습이었는데 나는 땀과 비에 젖은 몸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동네 공원도 아닌데 슬리퍼를 끌면서 돌아다니려니 어째 기분이 침울해졌다. 뜬금없이 환씨의 ‘성공’과 ‘완전체’가 떠올랐다. 그라면 신경도 쓰지 않을 텐데.
뒤풀이로 머리 고기와 미나리김치를 먹을 때는 나도 슬리퍼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수목원에서 팔지 않는 머리고기와 (먹을 수 있는) 미나리의 향긋함이 좋다고만 생각했다. 차에서 <내겐 홍시뿐이야> 소설을 읽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끝나는 바람에 아부지의 인생 강론을 들어야 했다. 아부지는 자신이 말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