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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by 김준정

아침부터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오빠와 엄마가 싸웠는데 아빠가 참견하면서 일이 커졌다. 고등학생이던 오빠도 그날은 참지 않았고 아빠가 오빠를 때리는 데까지 가고 말았다. 그때쯤 나는 이 모든 상황이 지긋지긋했다. 더 이상 세 명의 다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내가 동요되는 게 싫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에 오래 고통을 당하다 보니 무감각해지기도 했다.


아빠는 나를 학교로 데려다주면서 좀 전의 상황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이었다. 나는 듣고 싶지 않을뿐더러 위로라면 더욱더 하고 싶지 않았다.


“이게 모두 아빠 때문이야. 아빠의 폭력성을 오빠가 그대로 배운 거라고.”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고 말이 끝나는 동시에 아빠는 나의 뺨을 때렸다. 그날은 아빠가 나에게 처음으로 손찌검을 한 날이었고, 내가 난생처음 아빠에게 대들었던 날이었다. 나는 얼굴을 감싸 쥐고 차에서 내려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가족이라면 이제 진저리가 난다고 그중에서도 아빠가 가장 싫다고 속으로 외쳤다.


내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빠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잠깐 본 아빠의 얼굴은 세상이 무너져버린 사람의 것이었다. 때린 사람은 아빠였지만 그렇게 아픈 얼굴로 아빠는 얼마나 그 자리에 있었을까?


아빠는 자신의 속마음을 나에게 자주 말해왔다. 엄마와 싸운 후에는 자신의 진심은 그게 아니었다고 엄마가 인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엄마를 좋아한다고 했다. 오빠를 때리고 나서도 오빠가 똑똑하니까 그게 아까워서 그러는 거라고, 아빠도 마음 아프지만 오빠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아빠가 무서웠지만 나마저 아빠를 싫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빠가 불쌍하니까 나만큼은 아빠 편이 되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준정이 너는 아빠 마음 알지? 너만은 아빠 마음을 알아줘야 한다."


주문처럼 했던 아빠의 그 말 때문에 나는 항상 아빠와 연결되어 있었고 어떤 결정을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아빠를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빠가 인정할만한 것을 선택했다. 그건 세상으로부터의 인정을 의미했고 나의 가치가 결정되는 일처럼 느껴졌다.


아빠도 나약하고 불안했기 때문에 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단 한 사람만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아빠는 알까? 그 딸은 아빠와 분리하지 못해서 오랫동안 힘들어했다는 걸. 실패 앞에서 아빠의 비난이 먼저 떠오르고 세상 전부에게 부정당하는 좌절감에 시달려왔다는 걸.


산다는 건 실패도 포함하는 일이라는 걸 아빠는 왜 알려주지 않았을까? 실패를 피하려고 하면 아예 시도 자체를 하지 않거나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게 된다는 왜 알려주지 않았을까? 실현 가능성이 높은 일로 적당히 타협하고 원하는 일이었다고 남과 자신을 속이고 살게 된다는 걸 아빠는 몰랐던 걸까? 나는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나는 나림이에게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서는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넘어져도 괜찮다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딸에게 말하고 싶었다. 내가 그토록 아빠한테 듣고 싶었던 이야기. 아빠가 그렇게 말해줬더라면 나는 세상 모두에게 응원을 받은 것처럼 힘이 났을 테니까.


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를 보라고 이렇게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가고 있다고, 그 길이 내가 바라는 길이라면 아픔쯤은 감수할 수 있는 거라고. 말이 아닌 나의 뒷모습으로 말하고 싶었다.


겁쟁이 같은 나 자신을 마주할 때마다, 내 길을 가야겠다는 다짐을 할 때마다 아빠와의 독립을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독립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글부터 써보기로 했다. 갈수록 쇠약해지는 아빠를 보면 언젠가는 아빠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아빠한테 빚을 진 사람이니까, 아빠 마음을 가장 많이 알아버린 사람이니까 아빠 곁에는 당연히 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아빠를 위로할 수 있을까? 평생 외로웠던 아빠를 안아줄 수 있을까?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왔지만 불안하고 가련한 아빠를. 이제는 정말 작은 노인이 되어버린 아빠를 이해해줄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강하면서도 약한 사람을 알고 있다. 나는 아빠보다 강한 사람을 알지 못한다. 나는 아빠보다 약한 사람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빠를 누구보다 사랑한다. 어쩌면 아빠를 더 사랑하기 위해 이 글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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