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어먹은 떡이 마음에 걸려서
내가 사랑하는 상점 02
내가 이 떡을 만난 건 보연 언니 전시회에서였다. 언니가 손님이 가지고 왔다며 권했는데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정사각형 모양의 떡이 꽤나 고급스러워 보였다. 전시회에 와서 식탐을 부리면 안 될 것 같아서 사양했다. 하지만 점심을 건너뛰었고 오후 4시가 되고 보니 배가 고팠고 그런 내 눈에 작품보다 떡한테로 자꾸만 눈길이 갔다. 떡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기분.
블루베리 잼이 들어간 보라색 떡을 집었다. 포장을 뜯으며 맛은 기대하지 않았다. 너무 예뻐서 모양에만 신경 쓴, 카페에서 디저트용으로 파는 떡인가 보다 했다. 한 입을 베어 무니 블루베리 잼이 스며 나왔다. 향긋한 잼이 떡과 잘 어울렸다. 무엇보다 설기가 구수하고 쫀득했다. 단번에 재료가 좋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언니, 이거 어디 거야?”
“<사월>이라고 어디 있나 봐.”
나는 솟구치는 식욕을 참지 못하고 떡 하나를 더 집었다. 이번엔 오레오 떡. 오레오 쿠키 모양이 정면이 있고 전체적으로 쿠앤크 아이스크림 같은 느낌이었다. 달콤 새콤한 게 블루베리 떡이었다면 오레오 떡은 시큼 텁텁한 초코 맛이었는데 이것도 떡과 묘하게 어울렸다. 언니가 나림이 주라며 블루베리 떡을 줬는데 그것까지 냉큼 받아왔다. 손님 접대용 떡을 집까지 가지고 오는 일은 보통 때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나의 체면을 구기게 한 떡은 나림이를 기쁘게 했다. "(그냥) 떡이네" 하고 받아 든 녀석은 한 입 먹고는 “어디서 샀어?”하고 물었고 나는 “얻어왔어" 했다.
왠지 비쌀 것 같았다. 하나에 이삼천 원 우습게 하는 마카롱처럼. 내가 먹은 떡들도 적어도 마카롱 가격만큼 할 것 같았다. 특이한 디자인과 좋은 재료로 무장하고 비싼 가격을 앞세운 것들은 나를 고민하게 만든다. 사기에는 내 지갑이 빈곤하고 안 사자니 돈 때문에 먹고 싶은 것도 못 먹나 싶어서 처량하고. 비싸고 맛있는 음식은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다 싶을 때도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군산 사월’을 쳐보고 가게를 찾아갔다. 인상 좋은 사장님이 맞아주었는데 떡의 가격을 보고 나는 놀라고 말았다. 하나에 600원에서 1,200원이라니. 거기서 천 원을 더 받아도 절대 비싸다고 생각되지 않는 퀄리티였는데 가격까지 저렴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 욕심껏 이것저것 담았는데도 가격은 8,700원. 거기다 사장님이 떡을 세 개나 서비스로 넣어주시는 게 아닌가? 오후라 이제 떡을 못 파니까 괜찮다고 하면서 말이다.
한 번은 오후 5시에 떡을 사러 갔더니 정말 떡이 떨어지고 없었다. 그러자 사장님은 주방으로 가더니 떡 5개를 내왔다.
“냉동시켜 놓은 떡이에요. 이왕 오셨으니까 이거라도 가져가세요.”
내가 돈을 내겠다고 해도 사장님은 한사코 받지 않으려고 해서 어쩔 수없이 떡을 얻어왔다. 도대체 몇 번째인지. 그때가 여름이어서 2시간쯤 지나니까 자연해동이 되었다. 먹어보니 금방 한 떡과 차이가 없었다. 사장님은 다음에는 떡이 있는지 전화하고 오라고 했다.
얻어먹은 떡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사월>은 시청 근처에 있는데 군산시에서 책 출판지원금을 주는 공모전이 있어서 시청에 서류를 제출하러 갔다. 신춘문예 등단 이력도, 출간한 책도 없는 내가 될 리도 없겠지만 “지원도 하지 않으면 기회 자체가 없는 거잖아”라는 보연 언니 말을 듣고 출판 기획서를 써서 냈다. 그리고 나오는데 <사월>이 생각났다. 시간을 보니 또 오후 5시, 떡이 없을 것 같았지만 전화를 하지 않고 그냥 갔다. 커피라도 사서 지난번 은혜에 보답하려고 말이다.
오늘은 떡이 꽤 남아있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이것저것 골랐다. 냉동실에 쟁여두고 먹으면 되겠지. 14,000원어치 떡을 사는데 (또) 사장님은 떡을 다섯 개나 덤으로 줬다.
“백설기 주문받아서 만들고 남은 거예요. 금방 나온 거니까 따뜻할 때 드셔 보세요.”
장사를 해야지 자꾸 공짜로 줘버리면 어떻게 해요, 그러면서도 내 입은 헤벌죽 벌어졌다.
차에 타자마자 백설기부터 하나 먹었다. 이번에는 따뜻하기까지 해서 음...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내가 첫눈 아니 첫 입에 반한 블루베리 떡을 먹었고, 팥떡을 먹었다. 공모전은 내기만 하면 떨어지지만 사월은 가기만 하면 공짜 떡이 생긴다. 오늘따라 떡이 입에 착착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