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약산 정상에서 표충사로 내려오는 길은 단풍과 낙엽으로 온통 둘러싸여 있어서 길이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인위적으로는 만든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색깔과 분위기. 단풍 카펫 길을 걷는데 가을 한복판을 걷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낙엽을 공중에 흩뿌리고 있었다. 이제 지나가면 언제 다시 이런 가을을 만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재약산은 울산과 밀양으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라고 불리는 7개 산군 중 하나다. 2년 전 나는 비박 장비를 처음 장만해서 비박의 성지라고 하는 이곳에 입성했더랬다. 70리터 배낭에 텐트, 침낭, 코펠, 버너, 식량을 넣고 배내고개에서부터 올라가기 시작했다. 신불산에 도착하니 텐트 자리를 잡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비박꾼들과 산객들로 인산인해였다. 내가 생각하는 비박은 이게 아닌데, 아무도 없는 적막한 산속에서 홀로 보낼 밤을 기대한 나는 지체 없이 영축산으로 향했다.
<2년 전 홀로 영축산을 왔을 때>
영축산 정상석 바로 밑에 텐트를 쳤다. 그리고 그날 밤 알게 되었다. 비박과 노숙은 같은 말이라는 걸. 땅에서 올라오는 찬기를 참으며 자는데 대피소에서의 하룻밤이 얼마나 사치스러운가를 깨달았다. 10월이었지만 1081미터의 고지에서의 밤은 추웠다. 자고 일어났지만 온몸이 찌뿌둥했고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그래도 살림살이 챙길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이슬을 잔뜩 머금은 텐트를 접고 짐을 쌌다.
<처량했던 나의 하룻밤>
영축산을 내려오는 길은 사방이 억새밭이었다. 이른 아침이었고 그 길의 앞도 뒤도 오직 나밖에 없었다. 사막을 걷는 것 같기도 하고 억새로 만든 물길을 헤엄을 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제압하는 강력한 존재 있었으니 그건 바로 배낭이었다. 어깨가 빠질 것 같았고 허리는 끊어질 것 같았다. 이게 없다면 넘실거리는 황금물결에 춤이라도 출 텐데.
전날부터 얼마 걷지 못하고 주저앉기를 거듭했다. 비박을 온 사람들을 유심히 보니 거의 팀으로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분들은 혼자 왔다는 나에게 그러면 장비를 분담할 수 없어서 짐이 많다고 혼자 오면 안 된다고 했다.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혼자 왔는데 혼자 오면 안 된다고 하면 어쩌라는 건지. 그 말을 듣고 나니 어쩐지 엄마 잃은 아이와 같은 심정이 되어버렸다. 아무튼 나의 비박 체험은 그렇게 시작과 동시에 막을 내렸다.
아참 나는 오늘 재약산에 왔지, 오를 때부터 2년 전 기억이 떠오르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말이 길어져버렸다. 도시락밖에 든 게 없는 35리터 배낭이 공기처럼 가벼웠다. 그때는 술 한 병도 가지고 오지 못했고 초라한 밥상이었는데 오늘은 홍어회, 배추쌈, 젓갈, 계란말이로 푸짐했다. 거기다 유선수, 환 씨, 주사장, 아부지가 경쟁적이라도 하듯이 막걸리를 메고 와서 막걸리도 넘쳐났다. 오히려 인당 두병씩만 갖고 오라고 설득을 해야 할 정도였다.
"막걸리 세병에 생수 두 병을 넣어야 디팩이 딱 맞는데? 안 그러면 공간이 남아서 덜그럭 소리가 나서 안 돼."
유선수의 대답이었다.
그러면 막걸리 대신에 생수를 세 병으로 하면 되잖아요, 라는 말이 나오려고 했지만 그가 그런 해결책을 바라지 않을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내가 메고 오지 않은 막걸리를 먹어서 그런지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래서 단풍이 더욱 고와 보였나? 짐을 나눌 사람들이 있다는 게 이렇게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보다는 함께가 좋다는 쉬운 결론을 내고 싶지는 않다. 2년 전 나는 분명 벅차고 외로웠지만, 혼자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내 몸체만 한 배낭을 메고 걷는 나 자신이 믿음직스러웠다. 누구나 혼자 무언가를 해야 하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을 감내한 뒤에야 누군가와 함께하는 즐거움도 배가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산에서는 따로 걷고 내려와서는 함께 하산주를 나누는 우리 팀이 느끼는 감정도 이와 비슷할 것 같다. 각자 자기 몫의 짐을 지고 걷고, 끝난 뒤에는 음식을 나누며 수고한 서로의 등을 두드리는 게 말이다.
이번에는 유선수가 충남 홍성에서 공수해온 굴로 굴무침을 준비했다. 굴은 유난히 크고 싱싱했고 배추에 싸 먹으니 굴 향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자꾸자꾸 먹고 싶어 지는 그런 맛이었다. 먹는데 흐름이 끊어지면 안 되니까 바쁘게 쌈을 싸면서 생각했다. 언젠가 다시 혼자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날에는 오늘을 기억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