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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Oct 31. 2020

안되는데도 계속할 수 있는 사람

매일 저녁 세 시간은 집에서 수학 과외를 한다. 그 외 시간은 자유다. 글 쓸 시간은 충분하고,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쓰면 된다. 일 년 동안 쓴 글도 상당한 양이되었다. 하지만 전에 쓴 글을 읽으면 누가 이런 글을 읽어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면 오늘 쓰는 글에도 집중하기가 힘들고 다음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어제’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진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다 보면 책 한 권 내지 못한 작가 지망생의 습작은 막을 내리겠지.


마흔둘의 나이로 12년간 운영하던 학원을 폐업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억울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더 이상은 계속할 수가 없었다.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억지로 하기 위해서는 술을 마셔야 했고, 여행을 가야 했고, 쇼핑을 해야 했다. 남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이는 운동이나 취미 생활은 그저 현재를 견디기 위한 보상일 뿐이었다.


일하는데 대다수의 시간을 보내고 나머지 시간은 버티는데 썼다. 일을 통해 내가 나아지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모든 게 불확실했지만 이렇게 나이가 들어버리면 후회하리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요가 동작을 따라 하면서 나태해지지 말자고, 대퇴골에 힘을 주면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지나친 조바심은 자신감을 떨어트리고 허둥거리게만 할 뿐이다. 어깨와 귀를 멀어지게 하기 위해서 어깨 긴장을 풀어야 하듯 이완도 필요하다고 몸으로 느껴본다.


긴장과 이완을 오가며 균형을 찾는 일.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요가 동작을 따라가면서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한테서 빠져나와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 같아서 좋았다. 글을 쓰는 일도 그렇다.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나의 생각이나 감정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조금씩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고 느끼는 일. 글 쓰는 일과 요가가 나에게 그런 일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영원처럼 느껴지는 그 시간을 견디고 나면 내가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어디에는 힘을 주고 어디에는 힘을 빼(지지는 않지만) 그러기 위해 애를 쓰는 내가 좋다, 안 되는데도 버둥거리는 내가 좋다. 손이 발이 닿지 않아서 겨우 발목을 잡고도 상체와 하체가 폴더폰처럼 접히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 순간이 좋다. 몸매가 좋아지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안 되는데도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과외를 처음 시작할 즈음 준이는 일주일에 한 번은 아팠다. 딱 봐도 건강해 보이는 녀석이 뭐가 이렇게 자주 아픈 건지 아파서 못 오겠다는 학생에게 오라고 할 수도 없고 난감했다.


시험이 끝난 토요일이었다. (이번 시험은 71점으로 반에서 2등. 준이에게 최고점이었다) 수업시간은 오전 10시 30분. 완벽한 가을 날씨였고 나도 수업을 째고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은 날이었다. 준이가 못 온다는 문자가 올 확률은 99%라고 생각하고 휴대폰을 흘끔거렸다. 딩동 딩동, 전화가 아니라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어서 와. 오늘 왠지 너 아플 줄 알았는데 말이야. “

(날씨가 좋으면 아프고 숙제 안 하면 아프고 아무 때나 아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잖아, 넌)

나는 준이에게 말했다.


"제가 예전에는 좀 그랬죠."

준이가 말을 이었다.

"그러면 타격이 크더라고요. 한 번 수업을 빠지면 공부하는 양이 줄어드는 게 확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면 그다음에 공부할 때 이게 힘이 빠져서..."

"어제 못한 공부 때문에 오늘 공부가 안 되는?"

"아!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아... 이 녀석 정말... 눈물이 날 뻔했다. 준이는 하루의 소중함을 알고 한 시간의 소중함을 알아버렸다. 가르치는 입장과 배우는 입장.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따로 있지 않았다. 이 모두를 함께 할 때 진정 함께 하는 것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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