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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Feb 04. 2021

잘 쓴 에세이를 읽으면 아프다

폐업 1년 7개월, 4일째

잘 쓴 에세이를 읽으면 꼭 하루는 아프다. 김봄의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와 김얀의 <오늘부터 돈독하게>를 봤을 때도 그랬다. 그 글에는 힘들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다른 일은 감내하겠다는 근성이 숨어있었다. 그게 나와 결정적 차이였다.     


글을 쓰고 싶은데 생활이 궁색해질까 봐 겁을 내고 능력도 없는 주제에 빨리 책이나 어떤 성과물이 없어서 초조해하는 나는 이 작가들과 상대가 되지 않았다. 불안의 시간을 통과하면서도 내가 살고자 하는 삶에 대한 열망을 키워온 그들은 내공이 있었다. 그것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었고 책은 그 세계를 담은 것이었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 것이기에 아무리 웃긴 글에도 웃을 수만은 없었다. 긴 여운 뒤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들이 간 길이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런 세계를 가졌다는 게 부러웠다. 나름의 방식으로 불안을 극복한 방법을 찾은 작가들이 크게 보였다. 직장이 있든 없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든 안 하든 누구나 다가오지 않을 미래를 두려워한다. 그 길에서 내 안의 소중한 것을 버리지 않고 걸어 나갈 용기를 키워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결국 내가 선망한 건 그들의 배짱이었다.     


“매주 가는 등산처럼 부담 없이 도전하면 안 돼?” 

내가 글 쓰는 게 힘들다고 하자 희남이 삼촌이 말했다.      


희남이 삼촌이 말한 ‘부담 없이’는 아무 대가 없이도 좋아서 하는 등산처럼 글도 그런 마음으로 쓰라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힘들다고 한 이유는 내 글이 출판사에 채택되어 책이 된다거나 공모전에 당선이 되는 결과가 없어서였다.      


최근에 편성준의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읽고 나는 또 아파야 했다. 편성준 작가가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카피라이터와 기획을 하면서 쓴 글이었다. 다음은 ‘회사 관두면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란 제목의 글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비 오는 날 집에서 혼자서 책 읽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회사를 그만두었다. 마침 비가 온다. 책을 읽는다.     


나도 폐업을 한 직후에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전에 일할 때 출근 전에 가벼운 등산이나 헬스 같은 운동을 했는데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오면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그럴 때 학원 말고 다른 데로 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거창한 곳도 아니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실컷 책을 읽거나 공원을 산책하고 싶었다. 일요일 말고 평일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살면 안 되는 건지, 내 인생인데 어째서 하고 싶은 대로 못하는 건지 억울했다.    

  

그래서 그만뒀다.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겠냐 싶은 마음도 있고 일단 길을 내려와야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설사 예상치 못한 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 저질러보자 싶었다. 더 이상 기대 없는 하루를 살아낼 자신이 없었고, 이대로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나이 들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폐업한 지 1년 7개월, 4일 째다. 사람 마음처럼 변덕스러운 게 없는 게 폐업 초기에는 출근할 곳이 없어서 얼떨떨하면서도 좋았다. 오늘 뭐할지 계획할 수 있다는 게 커다란 사치 같았다. 그렇게 시간 부자가 된 건 대학 졸업 후 거의 처음이었다. 하지만 떡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임신, 출산할 때도 일했던 나는 하루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쌓이면서 불안하기 시작했다. 급격히 줄어가는 통장잔고를 보며 내가 계획한 일 년은 턱도 없고 당장이라도 일을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럴 때 딸이 뭔가를 사달라고 하면 표정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한 발 한 발 힘을 실어서 올라야 하는 등산이 글쓰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할 때마다 죽을 것 같고, 괜히 왔다고 후회하면서도 가는 등산이나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한 편을 완성하는 글쓰기는 닮았다. 둘 다 끝난 후에는 그게 또 그렇게 좋아서 아련한 마음이 돼버려서 힘든 줄 뻔히 알면서도 또다시 배낭을 싸고, 노트북을 켜게 된다.     


운동이 목적이라면 30분 홈트레이닝을 하면 된다. 8시간 이상 산행을 하려면 1000미터 이상의 고산을 가야 하고 이동시간만 왕복 3시간 이상이 걸린다. 아이젠, 스틱, 장갑, 버프. 모자 등 각종 장비를 챙겨야 하고 산에서 먹을 점심과 간식을 준비해야 한다. 캄캄한 새벽에 나가서 한밤중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오는 이 가성비 떨어지는 일을 내가 일주일에 한 번 꼬박꼬박 하는 이유가 뭘까.     


산을 타면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거스르고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런 태도가 몸에 베여 괴로움보다는 자유로움으로 온몸이 꿈틀거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밖으로 보이는 성과 말고 내 마음에 쌓이는 작은 성취감을 쌓다 보면 언젠가 정상에 다다르는 것처럼 원하는 목표에 이르게 되는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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