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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Feb 18. 2021

달이네 토스트

학원을 폐업하고 딸의 픽업을 시작했다. 수영을 다니는 딸은 자유형에서 배형으로 진도를 나갔고, 초급반에서 중급반이 되었지만 나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채 열기가 식지 않아서 발그레하게 상기된 딸의 얼굴과 나(씻지도 않고 기다림에 지친 얼굴)는 확연한 대비를 이루었다.   

   

“엄마 오늘 양치도 안 했다?”

“말하지 마.”

녀석은 뒷자리에 앉았다.      


학원에서 일할 때, 딸이 어두운 길을 갈 상황이면 몹쓸 상상이 들어서 전화를 몇 번씩 해댔다. 그때의 보상심리가 작용해서 처음에는 기꺼운 마음으로 모시러 갔다. 하지만 한번 출동에 삼사십 분, 끝나면 또 데리러 가야 해서 2시간은 족히 걸리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출동시간이 다가오면 어쩐지 글도 안 써지고 책도 안 읽히는 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니라, 아무 일도 못하게 했다.      


하루는 그런 번민과 함께 기다리고 있는데 초밥이가 김밥을 들고 탔다.

“나도 먹어보자.”

“댄스학원 밑에 있는 가게인데 토스트도 맛있어.”

김밥은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었다. 담백하면서 자꾸 당기는 맛.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나는 거지? 금방 한 밥으로 싼 건가?      

“내일은 4줄 사와. 얼마야?”

“한 줄에 1,500원.”

요즘도 1,500원짜리 김밥이 있나? 김밥 다음에는 초밥이가 강력 추천하는 피자 토스트를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벌지 않으니까 외식비가 부담스러웠다. 식당에 파는 음료수 가격이 비싸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 낯설면서도 확실히 기분 나쁜 감정이었다. 이 정도는 아직 괜찮다며 호기를 부리며 먹기 싫다는 초밥이를 끌고 파스타를 먹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나도 모르게 말이 없어지는 바람에 안 그래도 눈치 빠른 초밥이는 비싼 곳은 안 가려고 했다.     


“달이네 토스트 가보자. 거기 있는 메뉴 다 시켜서 먹어보는 거야.”

댄스학원 앞에 내려주면서 초밥이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녀석도 좋다고 했다.     

김밥집, 피자가게, 꽃집, 분식집, 다시 김밥집, 토스트 가게, 핫도그 가게 그 옆에 ‘달이네 토스트’가 있었다. 고만고만한 음식점들이 많기도 했다. 이 가게들이 다 장사가 되는 걸까, 하면서 가게 문을 열었다.

     

“어!”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사장님이 아는 분이었다. 예전 학원 일층에 있던 ‘커플 토스트’ 사장님. 그곳에서 나는 학생들 간식도 많이 샀고 짬이 날 때 잠깐 내려와서 저녁을 때우기도 했다. 일 년 동안은 바로 건너편 건물 3층에 살기도 했기 때문에 사장님은 우리 가족을 자주 봐온 분이었다.     

“어머나! 이게 누구냐? 그러면 그 꼬맹이가 이렇게나 컸단 말이야? 세상에.”

사장님도 단번에 나를 알아보셨다.


“어머니는? 대구 내려가시고?”

“네, 작년에 내려가셨어요.”     

어린이집 차가 토스트 가게 앞에 섰고 엄마는 사장님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가 초밥이와 가게에서 한참 놀다가 집으로 오고는 했다. 대구에서 손녀를 봐주러 군산에 온 엄마한테는 말 상대를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당시에 엄마는 나보다는 사장님과 더 많은 대화를 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부터 초밥이는 어린이집 차가 내리자마자 학원 건물로 직행해서 내가 있는 교실까지 단숨에 올라왔다. 어린이집 가방이 끌릴 정도로 다리가 짧았을 때였는데 얼마나 빠른지 엄마가 잡지도 못할 정도였다. 내가 수업을 하고 있을 때 밖에서 초밥이와 엄마가 실랑이하는 소리가 나서 밖을 내다보면 초밥이는 나를 보자마자 단박에 해바라기 같은 얼굴로 바뀌었다. 괴력을 발휘해 할머니를 밀쳐내고 나에게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그 모습이 지금도 사진처럼 남아있다(지금 나를 바라보는 초밥이 얼굴과 대비가 되어 실소가 나왔다. 인생무상이 실감되는 순간이다).     


초밥이는 집에 가기 싫다며 떼를 썼지만 수업을 해야 하는 나는 어쩔 수가 없었다. 저렇게 엄마와 있고 싶어 하는데 놀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내 새끼 마음 아프게 하고 일을 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복도에서 울리는 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심란한 마음으로 수업을 이어서해야 했던 그 시간이 떠올랐다.    

 

“사장님 왜 이사 오셨어요?”

“거기 애들이 줄었잖아. 장사가 안 돼서 이리 왔지.”

“아 네...”

“여기는 괜찮으세요?”

“아니, 이 줄만 해도 김밥집이 너무 많잖아. 그냥 내 인건비만 겨우 벌어.”     


‘커플 토스트’와 ‘업 수학학원’이 있던 지곡동은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이 가장 드셌던 지곡초등학교 옆에 있었다. 군산의 핫플레이스라 할 수 있는 그곳에서 나는 초기 정착의 어려움 없이 학원생이 금방 늘었다. 토스트 가게 앞에도 늘 아이들로 북적거려서 사장님은 직원을 둘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다. 어쩐지 사장님이나 나나 좋은 시절 다 지나버린 것 같아서 짠한 마음이 되었다.     


지곡동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나운동과 수송동이 있는데 수송동에 신축 아파트가 생기면서 사람들이 그리 이사를 많이 갔다. 그전까지는 나운동과 지곡동에 아파트가 밀집해 있었다. 그때 사장님은 나운동, 나는 수송동을 택해 지곡동을 떠났다.     


사업이 잘 되면 순전히 내가 잘해서 잘 되는 것으로 생각한 시절이었다. 

“우리 세대는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이 되었고 정년이 보장되는 축복받은 세대지.”

나보다 12살이 많은 분희 언니의 말이다. 이 386세대의 부모들은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으로 힘든 시기를 겪기는 했지만 공부를 하면 출세한다는 사고가 강하다. 주변에 안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학창 시절 공부를 잘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녀 공부에 열성적이었다.      


386세대 학부모 시기의 끝물과 학생들의 숫자가 급격한 하락세를 겪기 직전에 내가 학원시장에 뛰어들었고 마지막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나는 노력이라는 씨줄과 운이라는 날줄이 만나야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노력만으로 되는 걸 아니라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학원 번영기와 딸의 해바라기 시절을 반추하고 있는 사이 아무것도 모르는 초밥이는 떡볶이를 잘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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