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한 번 못해보고 일만 하다가 마흔이 된 여자가 있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사고로 일이 무산되어 졸지에 백수가 된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이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이때 타이밍도 절묘하게 연하남이 등장하고 찬실을 따라온다. 대뜸 찬실은 “오늘 우리 집에 자고 갈 거예요?”라며 남자가 기겁해서 도망갈 소리를 하지만, 이상하게도 남자는 순순히 그러겠다고 한다. 찬실은 남자를 안고 “십 년 만에 남자 처음 안아봐요”라고 속으로 생각해도 되는 말을 해버린다. 아 진짜, 푼수 같은데 그래도 몰래 숨어서 지켜보고 싶은 캐릭터다.
이제 일 말고 연애에 열정적이기로 한 건지 사귀는 것도 아닌데 도시락을 싸서 남자를 찾아가는 연애초보 인증하는 찬실. 이쯤에서 연애 초반전에(만) 강한 내가 한 수 가르쳐주고 싶은 심정이다. 무턱대고 고백까지 직진하는 그녀에게 남자는 “좋은 누나로 생각한다”며 브레이크를 걸고 이런 결말을 혼자만 모른 찬실은 도망가다가 도시락 보자기가 풀어지는 모습까지 보여주시고 퇴장한다.
영화는 김초희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상업성에 기대지 않고 마이너한 감독의 취향을 오랜 시간 숙성시킨 곰삭은 맛이 났다. 많은 사람의 기호에 맞춘 기술자가 되기보다 자기의 독특한 감성으로 세계를 구축하고 그것으로 공감을 얻는다는 건 근사한 일이다. 이것이 진정한 간지요, 성공이 아닐까.
김초희 감독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쓴 시나리오라고 했다. 자기 인생에 비로소 결실을 맺는다는 생각으로 빛날 ‘찬’, 열매 ‘실’로 주인공 이름을 만들었다고.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평생 영화만 하면서 살 줄 알았는데”라는 찬실의 대사처럼 감독도 영화만 있으면 다른 건 필요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애정이 컸던 일에서 버림을 받았을 때 그만큼 상처가 컸다는 그녀는 “어디에 있든 내가 주인이면 된다(수처작주 입처개진)”는 임제 스님의 말씀에서 희망을 찾고,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에요. 저요,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같은 대사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결과가 중요하다고 하던데요?”
고 3인 형룡이가 말했다. 형룡이가 말한 결과란 시험 점수를 말하는 것일 테고, 6개월 뒤에 있을 수능 점수를 말한 것이다. 입학하게 되는 대학교가 서열이 어느 정도 되는지 그래서 연봉이 얼마인 회사에 취직하게 되는지, 결혼은 하는지, 아이는 몇 명을 낳고 어디에서 사느냐 하는 앞으로 줄줄이 자신에게 매겨질 결과.
그럼 이 모든 걸 다 거친 나는 모든 게 끝나버린 걸까? 수많은 결과들의 총체, 더 이상 점수를 줄 것도 도전할 곳도 없는 ‘결과’ 그 자체?
“미안하지만 나도 현재 진행형이거든?”
형룡이한테 말해줬다. 영화라면 끝이 있겠지만 인생은 죽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는 영화라고. 아니 죽은 후에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평가되는지도 모른다고.
한 끼 맛있는 식사를 해도 다음 끼니를 챙겨야 하고 괜찮은 글을 한편 썼다고 해도 다시 글을 써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과정에서 다음이 조금씩 수월해진다면 잘해나가고 있는 거라고, 그것이 곧 결과라고 생각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한 달 만에 요가를 하는데 온 몸이 나를 공격하는 기분이었다. 고통스럽지만 내일은 조금 편해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원찮은 몸을 펴줬다. 그저 요가를 하는 시간을 몸에 쌓는다고 생각하면서. 이십 대 날씬했던 몸만 내 것이 아니다. 그때보다 배 나오고 쳐진 이 몸뚱이도 내 것이고 70대의 어느 날은 지금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젊음 그 자체로 빛이 났던 시절보다 내가 보낸 시간의 역사인 지금의 몸이 보다 의미 있다(고 생각해야지 어떡하겠나).
찬실이가 하숙하는 주인집 할머니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한다고 했다. 그걸 애써서 한다고. 콩나물을 다듬을 때도 한글을 배울 때도 그 순간에 열심히 한다는 할머니. 아, 할머니 같은 마음이라면 찬실이는 영화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나도 매일 요가도 하고 글도 쓰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만만한 친구가 하나 생긴 것 같았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나는 찬실이가 보고 싶어서 혼자 밥 먹을 때, 쉴 때 영화를 틀어놓았다. 찬실은 그날 아침에 KTX 타고 부산에서 온 사람처럼 40년간 보존된 사투리를 구사했고, 인터뷰를 하는 김초희 감독도 역시 현란했다. 찬실, 김초희 감독, 나 셋이 있으면 사투리로 대동 단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에 서울 사람이 끼면 알아듣지도 못하겠지만 기에 눌려서 말 한마디 못할 것 같은 분위기.
“당신 멋있는 사람이에요. 조금만 더 힘을 내봐요.”
장국영 귀신이 하는 이 말은 꼭 나한테 하는 말 같았고, 김초희 감독이 왜 영화를 그만두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만든 영화지만 너무 사랑해서 내 것이 되어버렸듯이 그녀도 그런 영화를 누군가에게 주고 싶었던 거다.
성과에 급급하지 않고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인물을 그리고 싶었다는 김초희 감독을 보고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는 사람에게는 철학이 깃든다는 말이 생각났다. 마흔이어도 소녀처럼 꿈을 꾸고 사랑과 외로움 사이에서 갈등하는 찬실이는 복이 많은 게 맞다.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과 사랑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