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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Aug 02. 2021

학부모가 수업료를깎아달라고한다면

운이 좋은 날이었다. 과외 사이트를 통해 중학교 1학년 과외가 들어왔다. 학생의 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내가 올린 자기소개서, 교습 방식을 꼼꼼히 읽었는지 질문 없이 곧바로 수업시간 이야기로 넘어갔다.     


“1대 1 수업을 원해요.”

“아. 그러세요? 보통 선생님들은 1대 1, 주 2회 수업을 하시는데, 저는 2대 1, 주 3회 수업을 하고 있어요. 지금은 방학이라 시간표가 나오니까 첫 달은 1대 1 수업을 하고 다음 달은 상황 봐서 다시 정하면 어떨까요?”

나의 제안을 어머니는 흔쾌히 승낙했다.      


지금 하고 있는 고 3 학생들(4명)의 수업이 곧 종료되기 때문에 손실을 메우려면 신입생이 시급한 시점이었다. 그런 내 입장에서 고객에게 맞추는 건 당연했다.     


“선생님이 공지한 금액은 2대 1 수업 기준이니까 제가 수업료를 더 부담하도록 하겠습니다.”

수업료는 똑같이 받으려고 생각했던 나는 어머니의 말이 의외였다. 그냥 하는 인사치레라고 생각했다.

“아니에요. 부담되실 텐데 수업료는 똑같이 받을게요.”

“그럴 수는 없죠. 두 배까지는 아니어도 1.5배의 수업료를 내겠습니다.”     


두 명 기준으로 정한 수업료인데 그 시간이 한 명에게 할애된다면 두 명분의 비용을 부담하는 게 맞지만 20년 교습하는 동안 조금이라도 적게 내려는 사람은 있어도 더 내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더욱이 이번처럼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뜻을 굽히지 않는 경우는 난생처음이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어 보이는 사람일수록 수업료에 인색한 경우가 많았다. 다수의 학원을 보내고 있어서일 수도 있고 이전에 원장한테 말해서 수업료를 깎은 경험이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학부모가 수업료 할인을 요구할 때 나는 다른 학생들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그래도 사정조로 거듭 말하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손을 들고 만다. 돈보다 고객의 기분이 상하기 때문이다. 

     

같은 서비스를 받는데 다른 사람보다 많이 돈을 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화가 나지 않을까? 나는 눈앞의 한 명의 고객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다수의 선량한 고객들을 배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첫 번째 자책이 드는 순간이었다.     


해당 학생을 수업을 하면서 어쩐지 손해를 봤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선생님인데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 이 무슨 이상한 유교사상에 젖은 생각이냐, 정당한 대가가 있어야 좋은 교육서비스가 나오는 거지, 했다가 아주 복잡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그러니까 학부모님들 수업료 깎지 말아 주세요).     


수업료를 깎는 데 성공한 사람은 다른 학원장이나 과외선생님에게도 할인을 해달라고 할지 모른다. 결국 나는 익명의 동종업종 사자들에게도 피해를 준 셈이다. 두 번째 자책.     


이건 자존감과도 연결된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가치를 스스로 평가 절하했다는 (세 번째) 자책을 하게 된다. 이런 것들이 마음속에 먼지처럼 쌓이면 스스로 위축되고 만다. 나를 지켜줄 조직이나 동료 없이 홀로 망망대해를 작은 돛단배에 의지해 노를 저어 가고 있는 자영업자가 스스로에 대한 믿음조차 없다면 어떡하겠는가. 어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사교육에서도 일타강사는 소수이고, 그 외 평범(하지만 실력과 애정을 겸비한)한 다수의 강사와 원장은 자신의 실력을 믿어야 하는 이유다.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니 예전에 억울했던 일들이 마구 떠오지만, 그중 한 가지만 말해보겠다. 남편이 다니는 직장 상사의 자녀였다. 선불인 수업료가 수업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입금을 하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학생의 어머니가 문자를 보냈다.


“아이가 수업 시간이 늦어서 힘들다고 하네요. 죄송해요.”     

수강취소를 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럴 수 있다. 수업시간이나 방식이 맞지 않을 수 있고 또 다른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문자에는 일주일치 수업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일주일 수업료는 00입니다. 아래 계좌로 입금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자를 전송하자마자 전화가 왔다.   

  

“좁은 지역 사회에서 자주 볼 사이인데 서로 얼굴 붉히지 말기로 해요.”

그분이 전화로 한 얘기를 요약하면 이런 뜻이었다. 나는 수업에 대한 대가를 말한 것뿐이었는데 이 분의 반응은 놀라웠다. 아마도 이 분은 내가 상관의 부인인 자신에게 수업료를 요구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거나 한 달 수업을 하지 않은 경우에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일주일을 ‘무료 시범수업’으로 생각했거나. 얼마 뒤 수업료는 입금되었고 이건 내가 학원을 운영하는 동안 잘했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일들 중 하나가 되었다.     


아무튼 오늘처럼 경우 바른 분을 만나고 보니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행운이 날아가지 않게 입을 꼭 다물고 있어야 했을까. 그날 밤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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