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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Aug 09. 2021

대학 가는 건 시간 낭비, 돈 낭비

대학 수시 원서를 쓰는 시기가 다가오면서 나는 고민이 많다. 앱 개발자가 되기 위해 컴퓨터공학과를 가고 싶지만 경쟁률이 높아서다. 어디에서 들었는데 앱 개발자의 직업 수명이 낮다고 하고, 컴퓨터를 다루는데 젬병인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까지 일어서 총체적 난국이다.

     

학교에서 학급별로 하는 뮤지컬 공연을 할 때 내가 연출한 작품으로 반이 1등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느꼈던 짜릿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PPT를 만들어서 발표하는 수행평가를 친구들은 싫어하지만 나는 그런 작업이 공부보다 재미있었다. 내가 만들 걸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공감을 얻는 경험은 큰 기쁨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직업이 앱 개발자이기는 하지만 컴퓨터 공학은 내용보다는 코딩이나 프로그래밍을 배운다고 (또) 어디선가 들었다. 요즘 코딩은 초등학교 방과 후에서도 배울 수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대학이 아니어도 학원이나 다른 방법으로 배울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럼 나는 대체 무슨 과를 가야 할까. 엄마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과가 없으면 간호학과를 가라고 하는데 내키지 않는다. 나는 서비스직보다는 혼자 내 생각에 집중하는 일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엄마 말대로 생계가 불안하면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우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뒤에 원하는 공부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면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은데 아, 어떻게 해야 할까...



    

율이한테 이런 얘기를 들은 나는 막막한 기분부터 들었다. 25년 전 내가 대학의 원서를 쓸 때나 달라진 점이 조금도 없어서였다.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나의 기질과 학과에 대한 지식이 이토록 부족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얼마 안 되는 정보로 성적에 맞춰 학과를 정하는 건 내 경우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냥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하면 어때? 대학이 직업훈련소는 아니니까. 전공을 살린 직업, 그 직업의 수명까지 생각하니까 복잡한 것 같아. 세상은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지금 그걸 판단하는 것도 무리고.”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고민이 되는 건 대학 등록금이 비싸기 때문이 아닐까? 나도 대학 가서 배운 걸 생각하면 시간 낭비, 돈 낭비였다고 생각해. 대학을 가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야.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천천히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아보는 것도 늦지 않아.”  

   

사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대학을 가는 일이 얼마나 가성비 떨어지는 일인지. 다수의 사람들이 대학을 가니까, 어쩌면 대학 간판이 필요할지 모르니까 대학을 가는 것뿐이다.     


나와 함께 등산하는 “사서 고생”멤버인 희남이 삼촌의 직업은 목수다. 삼촌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대학을 다니는데 들어가는 4,000만 원을 줄 테니 배낭여행을 다녀봐. 그러면 살아있는 지식을 얻게 될 거야. 아니면 아부지하고 같이 일을 해보는 것도 공부여. 생각해보고 말혀.”


이십여 년간 자신이 땀을 흘린 노동현장에서 아들과 함께 일하면서 일의 기쁨과 가치를 배우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이제 곧 내 품을 떠나 세상으로 날아갈 아들과 마지막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일 끝나고 둘이서 소주를 마시면서 얼마나 웃었나 몰라. 지나고 나니까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     


마지막으로 아들과 한 스킨십이 그립다고 삼촌은 요즘도 자주 얘기하고는 한다. 그렇게 아들  씨는 아버지와 2년간 함께 일을 했고 이후 가구에 관심이 생겨서 가구 디자인을 대학에서 전공하고 현재는 가구 업체인 <전산시스템>의 대표가 되었다. 일을 해서 번 돈 3,000만 원과 부모님이 준 5,000만 원이 사업 밑천이었다. 창업한 지 3년 만에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입소문이 나서 요즘은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네이버 신문에 “완판 가구”라고 기사가 난 걸 삼촌이 나한테 자랑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유명 연예인에게도 의뢰가 들어왔지만, 직접 집에 와서 세팅까지 해달라는 말에 산 씨는 거절했다고 했다. 일반 소비자들처럼 직접 골라서 구입하라고 했다고. 연예인들에게 판매하면 홍보효과가 크다는 건 알지만 직업적 자존심이 발동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그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기의 소신을 지키면서 한발 한발 걸어 나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 결과뿐 아니라 과정에서도 스스로 당당하고 싶은 마음. 그런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우린 어쩌면 결과만 생각하느라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진로에 대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조급함을 심어주는 게 아닐까. 세상에 못할 일은 없고 얼마를 벌고 얼마나 안정적이냐 보다 내가 원하고 자부심을 얻을 수 있는 일이라면, 더불어 그 일을 통해 뭔가를 배울 수 있다면 어떤 일이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고 있는 사업이 망하거나 다니고 있는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괜찮다는 마음이 필요할 것 같다. 나 자신만 잃지 않는다면 다시 길을 찾을 수 있고 그 안에서 웃을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청소년상담센터에서 하는 기질검사, 진로상담을 학생들이 많이 해봤으면 좋겠다. 나에 대해 알아가고 내 안에서 들리는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배포가 커질지 모른다.


“선생님 말이야. 학원을 폐업하고 책도 내고 공부법 강의도 하고 싶었어. 일 년 정도 준비하면 가능할 줄 알았지만 어림없는 생각이었지. 일 년 만에 돈이 떨어져서 과외를 시작할 때 얼마나 자괴감이 들었는지 몰라. 그런데 이제는 알겠어. 훈련이 필요하다는 걸.”     


폐업을 한 직후에 나는 수학 공부법 유튜브를 시작했다. 이십 년간 수업을 해왔으니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만들어내 본 적이 없는 내가 만든 영상은 허접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은 내가 언제 책을 내고 강의를 하느냐보다 그 과정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길에서 배운 것이 분명 다른 방식으로 나한테 도움이 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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