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심한 애인 같은
내가 새로 산 운동화를 초밥이가 신고 갔다. 나는 하얀 새 운동화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옷이나 가방보다 새 신발을 신을 때 기분이 가장 좋다. 특히 요즘처럼 출근하지 않을 때는 구두보다 운동화를 자주 신는데 새 걸 신으면 그 기분은 적어도 한 달 이상은 간다. 그걸 딸한테 양보한 거다. 나는 딸에게 한 달의 기쁨을 바쳤다.
큰맘 먹고 운동화를 빨았다. 먼저 초밥이 꺼를 솔로 문질렀는데 때가 안 빠지길래 옥시 싹싹 욕실 청소 세제를 묻혔더니 까만 게 지워졌다. 이제 알았쓰, 내 걸 집어 들자 산에 가면 금세 더러워질걸 왜 힘들여서 하얗게 만들어야 할까, 세탁소의 운동화 세탁비 3,000원은 어쩌면 비싼 게 아닐지 몰라, 하는 번민에 휩싸였다.
아무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서 운동화를 화장실 세면대에 그대로 뒀다. 젖은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던 초밥이가 이틀 동안 물에 잠겨있던 그것을 건졌다.
“네 꺼는 엄마가 쓱싹쓱싹 했어. 엄마 꺼만 하면 돼.”
초밥이는 쳐다보지 않았지만 나는 솔에 세제를 묻히는 시늉을 하며 방법을 알려줬다.
다음날 운동화는 당연히 마르지 않았고 평소에는 슬리퍼를 잘만 신고 다니는 초밥이는 인상을 썼다. 나는 톡딜에서 23,000원을 주고 산(완전 득템) 내 운동화를 내놓아야 했다. 초밥이는 묵묵히 신발을 신어보는 것으로 성의를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녀석은 내 앞에서는 극히 감정을 절제하고 비축해뒀다가 친구들과 있을 때 쓰려는 것 같았다. 자기 방에서 “와 정말? 대박!” 뭔 대화도 아닌 통화를 낄낄거리며 하다가 방을 나오는 순간 절약 버튼을 눌렀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바뀌었다. 다중이도 아니고 무섭기도 했다.
아침에는 더 시니컬해서 궁금한 게 있어도 함부로 물어보면 안 된다. 초밥이가 일어나기 전에 살금살금 샌드위치를 만들어놓고 10월이지만 얼음물을 먹는 녀석을 위해 얼음을 꺼냈다. 초밥이가 일어나서 식탁 앞에 앉았는데, 내가 “잠깐만”하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초밥이는 “으으응”으로 기다리기 싫다는 의사를 전했다. 할 수 없이 먹고 있는 사진을 찍었다.
하는 일도 없이 분주한 아침이라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초밥이가 “완전 맛있어. 오늘”이라고 했다. 수고했다는 뜻이었다.
“오늘은 치즈랑 계란 프라이를 추가했어.”
요럴 때 말해야 한다.
녀석의 교복 치마가 더 짧아진 것 같았지만 아무 말하지 않았다. 말을 하면 할수록 사랑받을 수 없으니까.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시집살이하고 똑같다.
초밥이가 내 얼굴을 보고 “엄마”라고 부를 때는 원하는 게 있을 때다. 긴장이 되는 순간이다.
“엄마, 우리 통금시간을 정해볼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기본 9시로 정하고, 더 늦을 때는 미리 허락받기, 어때?”
으음...
녀석은 버스 잘못 탔다고 10시를 넘겼고 스터디 카페 간다며 11시 넘겼고 비디오방인지를 가서 영화가 덜 끝났다면서 9시를 넘겼다. 그때마다 내 이성이 안드로메다로 넘어가지 않도록 붙들어 매야 했다. 늦은 시간에 오는 것이 걱정되고 집에서 기다리는 엄마를 생각하지 않는 딸에게 서운하지만 그래도 강제로 귀가시간을 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장소 옮길 때마다 엄마한테 문자하고, 어때?”
“생각 중이야.”
“엄마 나 정도면 엄마한테 잡혀 사는 거야. 내 친구들은 통금시간이라는 게 아예 없어.”
“네 친구들은 밀림에 사냐?”
“극과 극인 두 부류가 있어. 하나는 엄마가 위치 추적하고 늦게 오면 친구들한테 전화하는 엄마, 그런 애들은 배 째라하고 집에 더 늦게 들어가. 다른 부류는 평소에는 신경 안 쓰다가...”
“갑자기 휴대폰 뺏고 외출 금지하지?”
“어. 어떻게 알았어?”
“근데 위치추적을 한다고?”
“아파트랑 애가 간 곳 CCTV도 본데.”
“엄마의 간섭 때문에 반발심에 애가 늦게 들어가는 걸까, 애가 통제불능이라 엄마의 간섭이 심해진 걸까, 뭐가 먼저일까?”
“당연히 엄마 때문이지. 아무튼 엄마 말 한마디에 집으로 달려오는 애는 나밖에 없다니까.”
우리 집도 문제면서 남의 집 걱정이나 하고 있는 우리. 편집 왕인 녀석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건 아니지만 나 말고도 아이의 친목도모 활동에 걱정인 분들이 많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아이와 친구처럼 편하게 대하더라도 부모의 권위는 있어야 하고, 잔소리는 하지 않지만 아이가 지켜야 하는 기준은 있어야 한다.
나는 초밥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능력이 있는 아이라고(제발) 믿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내 불안에 져서 감정이 가는 대로 대하지 않으려고 매일 득도의 시간을 보낸다. 엄마가 자기를 믿는다는 걸 아이가 아는 게 중요하니까. 자신의 영역과 권리를 존중하게 위해 엄마가 애쓴다는 걸 아이가 알아야 하니까.
초밥이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운동화 때문에 발 다 까졌다며(좀 작았던 모양)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보미가 문을 열어달라며 방문을 긁자 소리를 질렀다.
"저리 가, 귀찮아."
“죽이지는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