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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Oct 19. 2021

수학은 저랑 안 맞아요

다음은 요즘 나에게 가르침을 아끼지 않는 몽자와의 대화다.   

  

“수학은 정말 저랑 안 맞는 거 같아요.”

이번 시험에도 몽자는 수학에 분투했지만 간신히 50점 넘은 점수를 받았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공부를 할수록 수학은 나랑 안 맞는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눈까지 빨갛게 된 채 말하는 몽자에게 나는 어떤 말도 선뜻 꺼낼 수가 없었다.     


“나도 말이야. 학원을 그만둘 때는 과외는 안 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돈이 빨리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시작했는데... 지금은 글을 쓰니까 과외가 소중해졌어. 예전에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없어서 힘들어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선생님은 글을 쓰고 싶으니까 과외도 좋아졌잖아요. 저한테는 그런 꿈이 없어요.”

또 꿈 타령이다. 

“나도 마흔한 살에야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는데 이상할 것도 없지...”     


참으로 아득하고 막연한, 동요가사로 나오는 우리의 꿈은 어느 날 나무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씨앗을 심어서 싹을 내고 나무가 될 때까지 물을 주고 정성스럽게 가꾸워야 하는 무엇이다.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이라면 그 오랜 기다림을 참을 수 있고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런 기다림을 이겨낸 사람이기에 박수를 치고 울컥한 이유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싹이나 씨앗으로 남아있는 뭔가가 있어서일지 모른다.   

  

“제가 방송국 PD에 대해서 알아봤는데 제 성적으로는 어림없겠더라고요.”     

이번에는 실현 가능성이란 턱이다. 이럴 때 도전해봐,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같은 소리를 하면 우리 어린 학인의 영혼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리기 때문에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야 했다.  

   

예전에는 PD라고 하면 국내 3사 방송국 PD 공채시험에 합격해야 하지만 지금은 케이블 TV는 물론 유튜브, 팟캐스트 정말 다양해졌다. 독특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능력이 중요하지 선발기준에 맞추기 위한 스펙은 중요하지 않다. 영혼 없이 스펙을 키우다 보면 자아가 쪼그라들지 않을까. 창작자는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전에도 몽자와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고 그때 이길보라 감독의 책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를 선물했다. 이 책을 읽었는지는 오직 몽자만 알겠지만.     


이길보라 감독의 부모는 주저하는 딸에게 “괜찮아, 경험.”이라고 했다. 

“그건 엄마, 아빠의 방식이었다. 입술 대신 손과 표정으로 말하는 부모는 몸의 경험을 통해 지식을 습득했다. 모르니까 일단 해보고 가보고 만져보고 느껴보는 것. 자연스레 내 삶의 방식도 그리되었다.”

농아였던 부모님의 방식을 이길보라 감독이 배운 거였다.    

 

“PD를 조금 더 알아봐. 그리고 또 얘기해줘.”


내가 어떤 일에 대해 연구한 시간이 늘어날수록 애정이 커지고 다른 사람의 말이 중요하지 않게 된다. 하나의 직업에도 많은 길이 있고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범이와도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생활기록부에 쓸 진로를 써야 하는데 뭘 쓸지 모르겠어요.”

“성적 생각하지 말고 최초에 하고 싶었던 거 써.”

“그게 의사예요. 돈도 많이 벌고 싶고 남을 위하는 일이기도 해서...”

“그럼 그걸로 쓰고 방법을 찾아보는 거야. 길은 있게 마련이니까. 이 일이 나한테 맞는지는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 혹시 실패하거나 잘못된 선택이었다 해도 남는 건 있을 거야. 적어도 시도조차 하지 않고 ‘하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하는 미련은 남지 않겠지.”     


“사실은 제가 천체물리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별을 보는 순간이 행복했고 신비로웠어요. 그리고 궁금했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뒤에 나오는 말은 안 들어도 알 것 같았다. 천체물리학과를 졸업해서 교수되기는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고, 고학력 백수가 될 승산이 크다는 뭐 그런 말을 들어왔을 거다. 그것도 범이가 헤쳐나가야 하는 현실이고 이상적인 환경이 아니라는 게 포기해야 하는 이유는 아니다. 그걸 극복해서 얻는 꿈이기에 빛나는 게 아닐까. 하늘의 별처럼.      


가슴속에 빛나는 별을 품고 있는 아이들을 많이도 만났다. 나는 그걸 본 증인이다. 하늘에 별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그 시간은 행복하고 신비로웠다. 어떻게 하면 그 별에 닿을 수 있을까 나도 궁금했다.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 이제는 아이가 아닌 그들를 만나도 나는 그 별을 기억할 것이다. 생각해보니 지금 우리의 시간은 너무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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