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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Oct 24. 2021

저 거짓말 안 했어요

드라마 <D.P.>에서 피자배달원(정해인)이 피자와 거스름돈 500원을 아이한테 건네고 돌아섰는데 아이 엄마가 나오더니 왜 거스름돈 500원을 주지 않느냐고 했다. 배달원은 주었다고 했지만 여자는 믿지 않았고 “얼마 안 되는 돈 가지고 왜 거짓말하냐”라고 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배달원은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돌아가 벨을 누르고 말했다.     


“저 거짓말 안 했어요.”     


그 장면에서 나는 '아무것도 바뀌는 것이 없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학생이 결석해서 보강을 하려고 했더니 토요일밖에 시간이 안 된다고 해서 토요일 시간을 정했다. 수업시간이 되어서 학생에게 문자가 왔다.     


“오늘 못 가는데 내일은 안돼요?”


내일은 산에 가야 돼서 안된다고(이걸 왜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답장을 보냈다.  

    

그 학생은 결석이 잦았다. 매주 보강을 했지만 학생은 어느 순간부터 고마움보다는 보강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보강을 해주기 싫어도 학습량이 줄어들면 성적 향상이 되지 않으니 결국 보강을 할 수밖에 없다. 과외 선생님이 무슨 힘이 있나. 


학원인일 때 나는 학부모의 어떤 요구도 받아들이는 게 프로라고 생각했다. 한 번은 알고 지내던 원장이 대화 중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대형마트는 고객이 사용한 물건을 가지고 와서 반품을 요구해도 받아줘. 그러면 고객은 브랜드를 믿고 안심하고 구매하게 되는 거야."


그분의 말은 학부모가 어떤 무리한 요구를 해도 수용하는 게 고객의 신뢰를 얻는 일이다, 라는 취지였다. 그 말을 들을 때 나는 반박하기는커녕 이 분은 참 프로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는구나, 그래서 학원이 잘돼나, 나도 불평을 할 게 아니라 그런 태도를 배워야겠다는 반성과 다짐을 했던 것 같다.


이제는 그 과정에서 내가 소모되고 피폐되어갔다는 걸 알았다. 내가 착취당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면 나도 다른 곳에서 누군가를 착취하게 된다는 것도. 내 일을 소중하게 여기는 내 관점에서의 의미가 커져서 만들어진 태도가 아니라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태도는 결국 나를 병들게 한다. 일정 시기는 그렇게 할 수 있으나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스스로를 참을 수 없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 학생에게  ‘당일 결석 통보 시 보강은 불가능하다’는 걸 말했다. 원칙을 사전에 공지하지 않고 그냥 알아주기를 바라고 학생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졌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기도 했다. 보강을 결석했을 때는 “시간을 비워놓았는데 네가 오지 않으면 나는 그 시간을 활용할 수가 없다"라며 "보강의 보강은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려줬다. 아직은 어린 학생들을 너그럽게 대할 필요는 있다. 약속을 지키는 것에도 배우는 게 있고 나는 그런 부분도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기도 하다.


한 번은 토요일 아침 수업 시간에  한 어머니에게 전화를 받았다. 

“토요일에는 애가 일어나기 힘들어하는데 왜 수업 시간을 바꿨어요?”

다소 감정적인 말투였다.


주중에 제시간에 오지 못해서 토요일로 하는 게 낫겠다고 학생과 합의하에 수업시간을 변경한 거였다. 아마 어머니는 학생을 깨우다가 짜증이 나서 나한테 나한테 전화를 한 것 같았다. 수업시간을 변경하게 된 상황을 설명을 했지만 그분은 내 얘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 얘기만 쏟아냈다. 토요일 오전 9시, 수업이 시작되는 그 시간에 감정이 격앙된 분의 이야기를 한참을 듣다가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수업 시간 변경을 어머니와 의논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내가 학생을 제대로 지도를 못하는 것 같으니 수업은 종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한 말이 뜻밖이었는지 그분은 당황해하며 아니라고, 자기가 오해한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최대한 차분하고 예의 바르게 그분이 하는 얘기를 듣고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했다. 당장은 아니어도 곧 수업은 그만하게 될 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좋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처음이었다. 내가 먼저 수업을 그만하자고 한 건. 이제 그만 왔으면 하는 학생도 있었고 무례한 학부모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애들 가르치는 사람이고 이런 거 저런 거 가리면 일을 어떻게 하나 싶어서 참기만 했다. 기준과 최소한의 스스로를 보호하는 장치가 내게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어떤 경계를 넘어설 때는 스톱을 말할 수 있어야 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일을 할 때 뭔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내가 선택권을 가진 기분이었고 다시 부당한 일이 생기더라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건 오히려 당당하게 일에 집중하게 했다. 일정 범위 안에서는 몸을 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다른 사람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내가 결정한 것이었다.


한번 버리는 경험도 때로는 필요하다. 학원을 폐업하고 10개월 동안 수입 없이 지내보니 그래도 살게 된다는 걸 알았고 그때 배짱이 생긴 것 같기도 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에서 내가 나를 구할 수 있다, 보호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들자 일을 대하는 자세가 적극적이 되었다. 


어쩌면 예전에 나는 최소한의 나를 지키는 기준과 경계 없이 흘러가는 대로 나를 내버려 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 놓고 남을 향해 부질없는 원망을 한 건 아니었는지,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한 건 아닌지, 생각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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