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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Oct 24. 2021

청바지 부부는 잘 내려왔을까?

2020. 10. 02

앞서 걷는 희남이 삼촌은 잠깐 보이는가 싶더니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삼촌의 주황색 모자가 부표 같았다. 산죽과 잡풀이 키만큼 자라 있는 비탐로에서 모자는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부표처럼 잡힐 듯하면서도 이내 멀어지다가 사라지고는 했다. 어디쯤 왔는지,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는 나로서는 오직 부표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절박함을 시험이라도 하듯 삼촌은 알바(길 잘 못 들기)를 두 번을 했다. 기껏 오른 길을 도로 내려가더니 “아까 거기가 맞는 가벼”하고 다시 올라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번에는 제발 맞기를 바라며 따라가는 수밖에.     


“장거리 산행을 하면 몸이 비상체계로 돌입해 지방을 태워서 에너지원을 공급하지.”


삼촌이 한 말이다. 지방으로 에너지를 만드는 건 인체에 가장 무리가 없는 방법으로 외부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아도 힘이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효율적인 몸의 시스템은 시간당 2.5km 이상 속도, 20킬로 미터 이상 산행을 꾸준히 해야 만들어진다고 했다.    


나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장거리 산행으로 내장지방이 빠진다고 한 대장님은 50대지만 군살이 없는 슬림한 체격에 잔근육이 있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중년에 날렵한 몸을 갖는다는 건 몸 관리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자기 절제와 노쇠하지 않은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는. 어쩌면 수행자의 수련도 이와 닮지 않았을까?  

  

“저도 훈련할래요.”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기는 하지만 삼촌은 특수공작대원 훈련으로 잘못 받아들인 걸까? 길도 없는 비탈길을 거스르고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를 무한반복을 하다니. 내변산 탐방지원센터에서 낙조대-망포대-신선봉-세봉-인장 바위-내변산 탐방지원센터로 오는 코스였다. 21.3킬로미터, 9시간 산행(1시간 휴식). 초반 6시간 동안은 빨치산 루트인가 싶을 길이 아닌 길을 헤치고 다녔다.    


“말소리 들리지?”


삼촌은 민가로 침투 명령을 하는 대장 같았다. 나는 6시간 만에 민간인으로 돌아가는 기분으로 재백이 고개에서 비탐로에서 지정 탐방로로 합류했다.


“여기서부터 관음봉으로 올라 쳐서 세봉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힘 좀 써야 할 거여.”


지금까지는 뭐 차라도 타고 왔어요? 하지만 내게는 말할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관음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세 번 가봤는데 갈 때마다 힘들었다. 지리산 천왕봉 올라가는 데 비견할만한 인내심이 필요한 길이다. 정상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하얗게 질려서 뭐라고 욕이라도 할 것 같은 표정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질려버렸다는, 다시 여기를 오나 봐라 하고 중얼거리며 올라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내가 간 날은 추석 이튿날이었는데, 이런 연휴에는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오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왕년(20대)에 왔던 가락을 믿고 올라오는 거겠지만 모처럼의 등산이 야속한 세월이 체력도 함께 가져가 버렸음을 깨닫는 데는 얼마 안 되는 시간이면 충분하다.  


나도 삼촌의 특별 관리를 받으며 관음봉까지 겨우 올라왔다. 벤치에 몸을 던지듯 쓰러진 채 거친 숨을 쉬고 있으려니 재백이 고개(0.9km 앞)에서 봤던 청바지 부부가 올라왔다. 남편의 표정도 심상치 않았지만 뒤따라 올라오는 아내의 얼굴을 보는 순간 풋,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원망과 후회가 한데 섞여있었다.


“이 길 뭔가 잘못된 것 같죠?”


나도 모르게 말을 걸고 있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말할 기운이 없어서 대답은 못합니다) 그녀는 고개만 힘차게 끄덕였다.    


삼촌과 훈련을 시작한 지 오늘로 세 번째인데 후반에 내가 힘이 빠졌다 싶으면 황송하게도 특별관리를 해줬다. 바로 뒤에서 몰면서 사기를 충전용 말을 하는.

“준정 씨 대단 혀, 나는 그 나이에 봉우리 하나나 타고 산 밑에서 파전이나 먹고 있었당게.”

하나도 고맙지 않은 그 말을 들으며 묵묵히 걸어야 했다. 칭찬이 아니라 채찍이었다. 

   

“산을 타다 보면 사는 거랑 똑같다는 생각을 혀. 진짜 힘든 순간을 만나면 살기 위해서는 이 고비를 어떻게든 넘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뻔한 얘기일까? 몸에 한계가 와서 딱 포기하고 싶은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 하나도 뻔하지 않다. 아득해진 머릿속으로 이 분은 그런 고비를 그렇게 하나씩 넘어왔구나, 그래서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뿐이다.    


등산 초입의 오르막이 벅차게 느껴진다. 산에 와서까지 오르막을 피하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구나, 그래서 힘이 드는구나 할 때가 있다. 가끔 평평한 길이 나와서 웬 호강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잠시일 뿐 삐쭉 오른 산을 찾아온 이상 오르막이 당연하듯 산다는 것도 고달픈 게 당연한 게 아닌가 싶다.    


오늘은 초반 능선까지 오를 때는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몸에 익지 않아서 힘들었던 시간이 떠올랐고 능선을 탔는데도 여전히 오르락내리락하고 길을 잃고, 없는 길을 찾아갈 때는 앞으로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짐작했다. 어차피 그런 게 인생이라면 나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촌은 내변산 탐방지원센터에 있는 슈퍼의 맥주가 특별히 시원하다고 했다. 듣고도 별생각 없이 캔맥주를 한 모금 마신 나는 그 짜릿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늘한 바람이 부는 테이블에 앉아서 발바닥을 조몰락거리며 맥주를 홀짝거리다 보니 언감생심 고생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청바지 부부는 잘 내려왔을까? 번호 알면 전화라도 걸고 싶네.”


삼촌의 한가한 소리를 들으면서 두 번째 맥주캔을 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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