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우인 지 선생님이 내가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밥을 사겠다고 해서 만났다. 그분도 수학 선생님이라 아이들과 학교 이야기로 대화는 즐거웠다.
“그동안 트레킹 하면서 모은 자료를 글로 정리하고 싶은데 워낙 글재주가 없어서 말이야. 그래도 사장시키기는 아깝다고 생각하던 차에 준정 씨가 책을 냈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반갑더라고.”
지 선생님은 몽블랑, 록키산맥, 뉴질랜드, 크로아티아 등지의 외국 트레킹을 가이드 없이 해왔다. 트레킹 코스, 랜트카, 숙박, 주차, 취사를 사전 조사하려면 국내에 있는 자료로는 부족해서 현지의 트레킹 가이드 북을 주문해서 원서로 된 글을 읽어가며 준비했다고 했다. 얼마나 조사(공부)를 했는지 뉴질랜드를 가기 전에 뉴질랜드의 어떤 길을 걷는 꿈을 꿨는데 실제로 간 곳도 꿈에서 본 것과 비슷해서 놀랐다고.
“크로아티아를 패키지여행으로 갔을 때, 가이드가 20분을 주고 다음 코스로 이동하는 게 나하고 안 맞더라고. 마음에 드는 장소에서는 맥주도 한 잔 하면서 둘러보고 싶은데 말이야. 그저 점만 찍는 여행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지.”
끌리는 장소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르기, 어쩌면 그걸 위해 여행을 하는지 모른다. 일상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여행만큼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해도 괜찮으니까.
“과외하는 거 힘들지 않아? 나도 예전에 잠깐 과외한 적이 있는데 너무 힘들었거든. 성적을 올려줘야 하잖아. 한 학생은 도저히 못하겠어서 과외비를 돌려준 적도 있었다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적만 올려주기를 바라는(것 같은) 부모도 가끔은 있지만 제가 만약 학부모라면 그걸 바라지 않을 것 같아요. 아이가 조금씩 할만하다는 마음과 의욕이 생긴다면 만족할 것 같아요.”
내가 초등학생 수업을 안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 중에는 아이를 만드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분들에게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4학년인 한 아이는 늘 힘이 없고 표정이 어두웠다. 학교를 마치면 기본적으로 서너 개의 학원을 순회하는 아이였고 어머니는 경시대회 일정과 준비에 관한 상담을 자주 하는 분이었다. 학원에서 아이는 휴지를 물에 적셔와서 잘게 찢어서 바닥에 버리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했는데 아이가 가고 난 후 의자 주변에는 휴지로 가득했다.
뭘 물어도 대답도 하지 않고 기운 없던 아이를 어머니도 볼 텐데 이상하지 않았을까. 아이다운 발랄함과 호기심이 사라진 눈빛이 공부보다 문제가 아닐까. 어머니에게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지만 집에서는 말을 잘한다, 놀려고만 궁리를 해서 걱정이다 등의 말로 어머니는 나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수학 학원장인 내가 한 말이 하는 일과 참으로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고등학생 정도면 본인한테 이야기하면 된다. 매번 통하는 건 아니지만 아이의 얘기를 듣다 보면 내가 하는 고민과 다르지 않아서 놀랄 때가 많았다. 내가 힘들었던 이유와 내 경우에 도움을 받았던 방법을 공유했다. 그저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기도 하니까.
“교사 자녀 중에 실패한 케이스가 많아. 동료 교사 아들은 중학교 때까지 스파르타식으로 공부를 시켜서 곧잘 했는데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고등학교에 가더니 적응을 못하고 결국 공부를 포기하더라고.”
“고등학교 공부는 학습적인 능력보다 비인지 능력인 끈기, 인내심, 회복탄력성이 필요한데 그건 공부 말고 운동이나 친구관계에서도 키울 수 있어요. 통제하는 부모 아래에 있는 아이들은 경험의 양이 작고 제한적이어서 내면의 힘을 키울 기회가 적은 거죠. 말씀하신 그 학생은 겉으로는 성적이 좋아도 내면은 약한 아이일 가능성이 높아요.”
“나도 후회가 되는 일이 내가 아이들을 가르친 거야. 절대 부모가 아이 공부를 가르치면 안 되는 거더라고. 부모는 자기도 모르게 높은 기준을 세워놓고 거기에 아이를 맞추려고 하거든. 한 번은 아이가 수학 시험을 보는데 손이 덜덜 떨려서 시험을 못 봤다는 거야. 점수가 안 좋으면 나한테 혼날까 봐.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가르치는 걸 그만뒀다니까.”
지 선생님은 ‘다시 아이를 낳아서 기르면 이제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다시 아이를 낳아서 기르면 이제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참 명언이었다.
지 선생님은 현재 퇴직을 5년 앞두고 있는데, 명예퇴직과 정년까지의 근무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금전적으로는 지금 퇴직하나 정년을 채우나 차이가 없어.”
“하지만 시간이 생기잖아요.”
“그건 그렇지.”
말씀은 안 하시지만 정년 이후의 삶이 막막하게 다가올 것 같았다. 경제적인 걱정이 없다고 모든 불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33년간 해온 일의 끝을 맞이한다는 허탈감이 나한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딸이 쌍꺼풀 수술을 해달라고 하길래 성인이 되면 네 마음대로 하고 지금은 반대하는 엄마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했어요.”
“나도 20살 넘으면 네 마음대로 하고 살아라 그 말 많이 써먹었거든? 그런데 군대 가야지, 취업해야지, 여전히 간섭하게 되더라고.”
뭐든 끝이 없는 것 같았다. 자식을 키우는 것도, 일도, 인생살이 모두.
지 선생님이 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책을 알려달라고 해서 <소년의 레시피>를 추천했는데, 얼마 뒤 지 선생님은 배지영 작가에게 강의 요청을 하고 싶다며 연락처를 물었다.
<소년의 레시피>는 “테이블 서너 개짜리 작은 식당을 차리고 싶은 제규”가 야자를 하지 않고 저녁밥을 짓는 이야기다. 배지영 작가가 하는 도서관 강의에서 나는 질문을 하다가 울었던 적이 있다. 다음 달이면 학원을 폐업하고 이제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문득 제규가 자기를 뺀 다른 학생들은 야자를 하고 있는 학교를 나와서 버스 타러 가는 모습이 지금의 내 상황에 투영되어서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였다. 갑자기 터진 울음 때문에 말을 잇지 못하는 나에게 배지영 작가는 휴지와 물을 갖다 주며 안절부절못했던 일이 떠올랐다.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산다는 게 그토록 어려운 일인지. 두렵고 외로운 마음을 이겨낸 제규처럼 나도 담담히 걸어가고 싶었지만 그때는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하늘에 수많은 별이 있는 것처럼 아이들의 꿈도 수없이 다양하다. 모두 한 가지만 바라보게 하는데서 사라지는 꿈이 얼마나 많을까. 이런 논리라면 시골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시작도 하기 전에 져버린 건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말을 아이들이 들었으면 좋겠다. 나만 두려운 게 아니라 앞장서서 가는 사람도 나와 다른 불안을 가지고 있고 우리 모두 멈추지 않고 간다면 방향은 상관없다는 걸 아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끌리는 대로 살아도 괜찮다. 인생이든 여행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