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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Dec 09. 2021

엄마도 잘되고 싶어

학교 가는 초밥이를 배웅하기 위해 나는 현관에 서있었다. 초밥이는 마지막까지 거울에서 눈을 떼지 않다가 “갔다 오게”하고는 휙 나가버렸다. 오늘도 안 봤어, 혼자 남은 나는 중얼거렸다. 


우리가 집안일하는 문제로 다툰 이후로 녀석은 계속 이런 식이었다.  

    

“내가 하기로 해놓고 미룬 건 알겠는데 간식 때문에 엄마가 힘들다면 그건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다이어트할 거라서 안 먹을 거야.”

“간식은 엄마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지금 우리가 하는 이야기와 상관없어.”  

   

집에서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학원, 주짓수 갔다 오면 침대와 한 몸이 돼서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게 밉상이었다. 자기 방의 바닥이 실종되는 것도 모자라 녀석은 책가방과 패딩이 내 침대까지 침범하는 ‘선’을 넘고 말았고 결국 내 안의 박사장이 나오고 말았다. 

    

“너 잘되려고 공부하는 것처럼 엄마도 잘되고 싶어.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껴서 글 쓰고 싶다고. 엄마도 집안일하는데 쓰는 시간이 아까워. 그런데 왜 엄마만 동동거리면서 바빠야 하는 건데.”    

 

과일을 이고 지고 와서 학교에서 돌아온 초밥이가 먹도록 수업 전에 감, 사과를 깎아놓았다. 나는 매일 딸의 아침거리, 간식을 신경 쓰는데 녀석은 우리 생활 또는 나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게 서운했다. 내가 더 챙겨야 하는 게 맞지만, 저도 십 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이라도 엄마를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예전에 초밥이가 네다섯 살 꼬마였을 때 텔레비전을 보면서  “엄마도 엄마 보고 싶은 거 볼 껀데?”라고 하면 초밥이는 “그래, 그럼”이라고 했고 공평하게 보고 싶은 걸 저 한번, 나 한 번씩 봤다. 자기가 생각해도 자기처럼 엄마도 보고 싶은 게 있을 거라는 걸 아는 것 같았다. 분명히 그랬는데 이 삐딱한 아이는 누구란 말인가.     

“엄마 말은 우리 생활에 필요한 노동에 네가 관심을 가지기를 바란다는 뜻이야.”

“알겠으니까 내 간식은 신경 쓰지 마.”

유치원을 다닐 때도 녀석은 이렇게 유치하지 않았다.     


아침에 밥을 먹기는 하는데 아주 조금만 먹었고 왜 더 안 먹냐고 하면 배부르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자식이 밥 남기는 거라는 걸 알았다. 학교에서 돌아온 녀석에게 “다녀왔어?”라고 하면 “어” 하고 제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배고플 것 같아서 “사과라도 줄까?”하고 다가가면 “아니, 괜찮아”라며 철벽을 쳤다.


안 먹기, 안 웃기, 말 안 하기 공격을 하는 녀석이 나는 하나도 우습지 않았다. 그 세 개의 위력은 실로 대단해서 왜 안 먹는데, 왜 안 웃지, 아무 말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며 안절부절못했다. 우리의 위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인 싸움에서 나는 무조건 질 수밖에 없었다. 이기려면 덜 사랑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나는 백번이고 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건 참 외로운 일이다. 한 사람으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가 그 한 사람이 없으면 세상 전부를 잃는 기분이라는 건. 두려울 만큼 커다란 이 마음을 잘 간수하지 못하면 나한테도 딸한테도 해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로부터 독립운동하는 딸과 이제는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초밥이의 방문을 두드리지 않았고 먹을 걸 이것저것 권하지도 않았다. 인사만 하고 궁금해(죽겠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말을 걸지 않고 걱정하지 않는 게 이토록 힘든 일이라니. 사랑하니까 묻지 않는다. 네 덕분에 인생을 새로 배우는구나.

    

사일째 되던 날 초밥이가 드디어 말을 걸었다.

“엄마, 나 어때?”

초밥이는 내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엄마옷 입을 건데 괜찮지, 라는 뜻이었다.

“괜찮은데?”

그래 내가 무슨 힘이 있냐 네 마음대로 해라, 는 뜻이었다.   



얼마 전에 마음에 꼭 드는 패딩을 샀다. 막상 사고 나니 집에만 있는 내가 입고 나갈 데는 없고 흰색 패딩을 마르고 닳도록 입는 초밥이가 눈에 밟혔다. 초밥이한테 가격표도 떼지 않은 패딩을 입어보라고 했더니 빨간색은 못 나가는 애들이나 입는 거라고 펄쩍 뛰는 게 아닌가. 절대 약자인 나는 검정색으로 바꿔오라는 어명을 받들고 쇼핑몰로 갈 수밖에 없었다.


“딸이 검은색으로 바꿔오라고 했는데 그건 마음에 안 들고 다른 것도 안 어울리는데 어쩌죠?”

“학생들은 흰색 아니면 검은색을 선호하지만 손님한테는 빨간색이 어울려요.”

“그렇죠?”

직원에 말에 용기를 얻어서 나는 그대로 옷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옷을 바꾸러 갔는데 이 디자인의 검은색은 별로라서 못 바꿨어.”

“그냥 엄마 입어.”

“한번 입어나 봐.”

“그냥 엄마 입어.”     


나는 밖에 나갈 일도 없고 땀이 많아서 패딩은 안맞다며 억지로 입어보게 했다.     

“우와. 예쁘다 예뻐! 패션은 따라가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거야. 네가 바로 그 변화의 시작이 되는 거지. 어때? 솔직히 예쁘지?”

“괜찮네. 입을게.”

“근데 내가 왜 사정을 하는 거지?”

“그냥 엄마 입어.”

“아냐 아냐.” 

패딩 대신에 엄마는 네 사진 올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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