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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Dec 19. 2021

팔씨름해 볼래?

아침 겸 점심으로 스파게티를 만드려다가 아침부터 밥도 안 먹고 나간 초밥이에게 전화했더니 당연히 안 받았다. 기운 달리는 나나 먹자 하고 새우, 브로콜리, 양파를 야무지게 넣고 막 먹으려고 하는데 현관 비번 누르는 소리가 나더니 녀석이 들어왔다. 내 입으로 가져가던 포크를 초밥이 손에 넘겨줬더니 초밥이는 앉아서 먹기 시작했다.    

 

“네 것도 하려고 전화했었는데.”

“수학 보강 갔었어.”

“아, 그랬구나.”

‘그래도 전화 온 거 봤으면 전화하면 좋았잖아’는 속으로 삼키고 스파게티 면을 삶기 위해 물을 끓였다.

“이번에는 새우 많이 넣어.”

‘지금 만드는 건 내건데’라는 말은 또 속으로 삼키고 “어”라고 했다.   

  

“팔씨름해볼래?”

“팔씨름은 왜?”

“너 세다며? 한번 붙어보자.”     


갑자기 왜 팔씨름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주짓수에서 맨날 누구 발라버렸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있는, 태권도 5년, 킥복싱 2년, 주짓수 1년을 한 녀석과 이제는 제대로 붙어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걸까. 

  

초등학교 5학년 2반 여자 팔씨름 대회 1등에 빛나는, 33초면 1급을 주는 체력장 매달리기에서 1분도 가뿐했던 나다. 초밥이도 5학년 때 반에서 팔씨름을 해서 1등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뭐 그런 것도 닮나 했었다. 



    

불쑥 꺼낸 말이었지만 막상 하려고 하니 자리 선정부터 자못 진지한 분위기가 흘렀다. 

“왼손으로 해.”

“오른손잡이인데 왜 왼손으로 하냐? 네가 왼손이 세냐?”

“내가 어린데 좀 봐줘.”

“네가 어리긴 뭐가 어려. 늙은 엄마를 봐줘야지.”

“그럼 오른손 한판 하고 왼손도 해.”

“일단 해.”     


손을 잡을 때 밑에서 꺾어서 잡으려고 하는 녀석에게 잔기술 쓰지 말라며 인상을 쓰고는 나는 오른쪽 어깨를 살짝 감았다. 팔씨름에는 손보다 무게 중심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 시작한다. 준비, 시작.”


처음에는 비등비등했다. 모든 것이 정지하고 오직 악력만 존재하는 순간, 나는 생각했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하다, 팔씨름은 힘이 아니라 순발력이다, 찰나에 힘을 쏟아붓고 상대가 멈칫할 때 그때 넘겨버려야 한다. 오랜만이었지만 몸은 기억하고 이었다.

    

결과는 나의 승리였다.

“이번에는 왼손으로 해.”

“좋을 대로.”

“이번에는 내가 시작할 거야.”

녀석은 힘만 있지 기술은 나보다 한 수 아래라는 걸 간파한 나는 자신만만했다.     


자리 잡을 때도 녀석이 원하는 대로 접어주고도 두 번째도 내가 이겼다. 아, 녀석의 얼굴을 사진을 찍어놓았어야 하는데. ‘이 아줌마 뭐지? 왜 이렇게 힘이 센 거야?’ 존경은 아니지만 나를 낯설게 바라보는 눈빛이라니. 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 혼란스러운 얼굴을 사진으로 두고두고 봤어야 했는데.   


“한 판 더해.”

초밥이가 웃음기 싹 가신 얼굴로 말했다. 이미 전세는 내쪽으로 기울었고 녀석은 심리적으로 위축되어있었다. 한 번쯤 진다 해도 그냥 져줬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성숙한 스포츠인인 나는 이번에도 최선을 다하고 말았고 또 이겨버렸다. 녀석이 잘 쓰는 ‘발라버렸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말. 나는 두 팔을 펼치고 오~~~ 하면서 거실을 가로지르면서 세리머니를 했고 초밥이는 그런 나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봤다.     


“놀랐냐?”

“어. 좀 의외네.”

“넌 아직 나한테 안돼. 알았어?”

녀석은 쓸쓸한 패자의 뒷모습을 보이며 자기 방으로 퇴장했고 나는 좀처럼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껄껄껄 웃어댔다.      


문제 될 것 없는 작은 기술을 쓰기는 했지만 뭐랄까 손을 잡는데 이건 꼭 이겨야 한다, 나의 자존심과 위계가 이 승부에 달려있다는 절박함이 생겼다. 최근에 내가 이렇게 용을 쓴 일이 있었나 싶었다. 그간 녀석 때문에 생긴 아니꼬움, 억울함이 추진력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 옆에 서봐” 하면서 자기 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녀석은 나와 거울 앞에 나란히 서서 키를 재보고는 했다. “조금만 더 크면 엄마 따라잡을 수 있어”라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 순간 내 키를 훌쩍 넘더니 “헐, 엄마 왜 이렇게 작아? 귀엽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지금은 초밥이가 나보다 5센티미터가 크다)     


그때마다 나는 분명 좋아야 하는데 좋지만은 않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자식이 커가는 건 뿌듯하지만 나는 늙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오늘의 승리는 그 알 수 없는 상실감을 보상해주는 일이었다. 10시간씩 산에서 스틱을 찍고 매일 푸시업 100개를 한 보람이 있었다. 앞으로 녀석이 까불면 "팔씨름할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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