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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Dec 31. 2021

친절한 남자가 좋아

방학하는 날 초밥이는 짐을 싸서 아빠한테 갔다. 일주일 있다 온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참느라 혼났다. 초밥이를 버스정류장까지 태워주면서 결국 참지 못하고 말해버렸다.  

   

“인간의 가장 큰 욕구가 자유에 대한 욕구잖아. 범죄를 저지르면 감옥에 가두는 이유가 뭐겠어? 자유를 제한하는 게 가장 큰 형벌이기 때문이지.” 

이에 질세라 초밥이도 집에 왔는데 엄마가 없을 때가 가장 좋다고 했다. 이렇게 또 우리는 한마음이 되었다.     

초밥이가 보미까지 데리고 가서 집은 적막강산이 따로 없어서 좋았고 사과를 먹을 때 달라고 귀찮게 하는 보미가 없으니 허전해서 좋았다. 2.5킬로그램밖에 안 되는 녀석이 산책할 때 나를 얼마나 끌고 다니는지 며칠은 홀가분해서 좋았다. 초밥이도 넷플릭스에 동시접속 뜬다며 업그레이드시켜 달라며 톡을 한 것 말고는 나를 찾지 않았다.

    

초밥이와 외로움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는 언제가 외로워?”

“너를 불렀는데 바쁘다며 안 오고 거실에서 노래 부르고 나는 방에서 오직 주부습진과 함께 있을 때.”   

  

마흔 전에는 뭔지도 몰랐던 주부습진이 언젠가부터 친구 하자고 나타나서 괴롭혔다. 이번에 찾아온 놈은 병원에서 처방받은 연고를 아무리 발라도 끈질기게 달라붙더니 결국 피까지 보게 했다. 물이 닿는 게 무섭지만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해서 어찌어찌하는데 정작 고통은 몸이 아닌 마음에 찾아왔다. 외로움이었다. 아무도 몰라주고 내 눈에만 보이는 주부습진이 외롭게 했다.     


“어, 심하네.”

초밥이가 내 손가락을 보더니 말했다(거의 3주 동안 함께 한 내 친구를 초밥이는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조금 나아졌어?”하고 물어봤다. 다분히 의식적인 말이었지만 연고보다 나았다.     


“너 그거 아냐? 엄마는 옛날에(3인 가족 시절) 더 외로웠다?”

초밥이는 나의 사설이 길어질 것을 예감하고 휴대폰으로 관심을 돌렸다.      


허망하고 부질없는 짧은 연애로 점철된 이십 대와 한 남자와 가족이 되기 위해 몸부림쳤던 삼십 대를 거쳐 현재 나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무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세련되고 능력 있고 섹시한데 어리지 않은 남자가 좋은 건 여전하고 주변 지인들한테 물어봐도 다들 그렇단다. 드라마 <하이에나>의 주지훈은 아줌마들에게 마음속 연인이라는 건 놀랄 일도 아니다. 문제는 그런 남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내가 김혜수가 아니라는 것뿐.


보연, 코나, 채사장과 연말 모임을 하면서 서로 이상형을 말하다가 ‘세련되고 능력 있고 섹시한데 어리지 않는’이라는 조건에서 하나 더 추가하는데 일제히 합의했다. 그건 바로 '친절'이다.


"이제는 친절한 남자가 좋아."

합창을 했다.


사랑도 능력이라고 했다. 수행을 많이 해오신 스님, 목사님, 수녀님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위로가 되는 것처럼 사랑의 능력이 큰 사람은 아내나 애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 혹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다정할 수 있다.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넘실거려서 그 사람 주위에 흩뿌려지는 거라고 믿는다.      


예전에는 오직 나만을 향하는 사랑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친구들에게조차 아주 조금만 친절하고 (내가 모르는) 그의 주변의 여자들에게는 차가운 남자로 통할수록 그의 사랑이 진심이라고 믿었다.  

   

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나에게 사랑을 맹세하는 모습보다 주변 사람에게 냉정한 모습이 어쩌면 그의 진짜 모습일지 모르는데. 그걸 깨닫는 대가로 이별과 후회를 해야 했지만, 아직 나에게 기회가 남아있는지조차 알 수없지만 (눼눼, 그 말 같지도 않은 조건부터 집어치워야 합니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얼마 전에 보톡스를 맞으러 갔다. (아이크림보다 보톡스가 싸게 먹히기도 하지만 자신감에 생기는 주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커튼을 사이에 두고 두 명의 환자(는 아니지만)가 누워있으면 의사가 AI처럼 일타이피로 두 명에게 주사를 놓았고 이후 간호사가 시술 후 주의사항을 마찬가지로 AI처럼 말했다. 나는 적지 않은 경험을 통해 보톡스를 맞은 후에 술을 먹지 마라, 사우나를 하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어겨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고 간호사가 나한테도 똑같은 말을 할까 봐 옆의 환자에게 말하는 걸 잘 들어뒀다.   

  

“주의사항 알려드릴게요.”

“말씀하시는 거 다 들었어요.”

“진짜요? 그럼 말씀 안 드려도 될까요? 사실 목이 아프거든요.”

“잘 들리던데요? 그냥 한 번만 하셔도 될 것 같아요.”

“목소리가 작다고 매일 혼나요. 그래서 매일 녹초가 되고요.”

간호사는 여러 번 고맙다고 했다.     


의사가 주사를 놓을 때 의사가 해도 되는 “따끔, 따끔”이라는 말을 간호사가 했는데 의사는 주사만 놓는데만 에너지를 써야 하는 모양이었다. 자연스럽게 생기는 주름을 없애는 것만큼 그 과정도 지극히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간호사의 노동을 부당하게 요구하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아무튼 예전이라면 무심했던 일에서 조금은 사려 깊으려고 애쓰고 싶다. 글을 써서인지 돈을 적게 벌어서인지 아니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더 열심히 다정해지고 싶다. 나 또한 외롭고 아픈 날 모르는 사람의 정다운 말 한마디에 위로받을지 모르니까.


자유로워서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외롭다고 하는 게 웃기다고 생각했다. 외로움도 주부습진처럼 왔다가는 거라면, 연고보다 나은 다정한 말을 많이 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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