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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Dec 21. 2021

나만의 <엄마의 원피스>

“<82년생 김지영>보다 더 재미있어요.”     


<엄마의 원피스>를 읽고 이렇게 말한 사람은 당연히 가족이다. 나와 동갑인 새언니. 언니 입장에서는 책에 나오는 인물(엄마, 아빠, 오빠, 나, 초밥)이 죄다 아는 사람이다 보니 영상 지원까지 되었을 거다. 가족 찬스를 감안하더라도 언니가 카톡 프사를 내 책으로 한 걸 보면 뭔가 감동을 받은 게 아닐까, 생각해버리기로 했다.     


지 선생님도 “인생 2막을 기대하게 되는 책”이라고 했다. 지 선생님은 나한테 자극을 받아서 트레킹을 한 이야기를 하루 꼬박 매달려서 한 꼭지 완성시켰다고 했다.     

 

“재미있게 살을 붙여야 하는데 글재주가 없어서 그건 못하겠더라고.”

“지 선생님은 학생들과 지리산 종주를 하고 텃밭에서 키운 배추로 김치 담그는 일을 오래 해오셨잖아요. 그런 일들이 글을 힘 있게 만들어줄 거예요.”     


글이 삶과 일치하면 진정성이 생긴다는 걸 알았고 언젠가부터 좋은 글을 쓰려면 잘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글이 끝이 아니라 더 넓은 곳으로 데려가 준다는 생각이 든 이유다. 나의 한계를 매번 확인하는 작업이 쉽지는 않지만 오늘이 다가 아니기에 계속해보자는 다짐이 일기도 한다.  

   

문제는 책에 나오는 엄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와하노?”

“책 읽었어요? 살다 보면 그럴 때도 있잖아요. 엄마는 없었어요?”

“없다. 너거들이 있는데 내가 그런 생각을 와하노.”     


거짓말. 엄마는 아직도 내가 꼬마인 줄 아는지 솔직하지 못했다. 자기 마음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세월이 오래되어서 마음이 없어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바로 엄마와 나의 다른 지점이다. 자기감정을 들여다볼 여유도 없이 살아온 엄마와 나를 버리고 싶지 않은 나.  

엄마와 나의 다른 삶을 그린 <엄마의 원피스>

   

엄마가 책을 읽을 때마다 전화를 하는 바람에 엄마한테 전화가 오면 나는 이번에는 뭐 때문에 그러나 걱정을 해야 했다.


“아(초밥) 입에서 와 짐이 된다는 말이 나오게 하노?”

“이렇게 따질 거면 그냥 읽지 마요.”

나는 킥킥거리는데 엄마는 갑자기 울컥하더니,

“그거 읽는데 눈물이 핑 돌아가. 아한테 캐라. 할매가 우리 손녀 많이 생각하는데 전화 자주 못해가 미안하다꼬.”

“엄마 그런데요. 옛날에 그 초밥이 없어요. 이제 다른 아이거든요. 나도 할 말 있으면 마음속에 있는 초밥이한테 말해요. 엄마도 그렇게 해요.”

그제야 엄마는 아 그렇나, 하면서 웃었다. 엄마가 브런치를 볼 수 있다면 변신한 초밥이에 대해 알 수 있을 텐데.     


엄마는 집에서는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사실 책만 펴면 잠이 와서) 병원에 약을 타러 갔을 때 기다리면서 읽는다고 했다.     

“요새 아들 몇 명 갈키노? 밥은 먹고사나?”

“아침에 밥 먹었는데요? 병원 갔어요? 엄마 그냥 책 안 읽으면 안 돼요?”

“과외하는 학생이 그만뒀다꼬 나와가 물어본다.”

아직 완독 하지 못한 엄마가 책에 나온 걸로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전화를 할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초밥이다.

“아빠한테 엄마 책 냈다고 말했다?”

“왜?”

“아빠가 나 전교 부회장 선거 연설문 쓰는 거 도와준다고 하길래 엄마랑 하면 된다고 말하다가 생각나서.”

“아빠가 뭐래?”

“자비로 낸 건지 출판사에서 낸 건지 묻던데?”

“ㅋㅋㅋ그래서?”

“11명 작가들이랑 같이 냈는데 비용은 후원받았다고 했어. 그리고 엄마 책 인기 많다고 했어. 아빠가 막 웃더니 책에 자기 욕 잔뜩 쓰여있는 거 아니냐고 했어.”

유구무언이요, 침묵은 금이라고 했다. 

   

영화 <패밀리 맨>은 월스트리트에서 잘 나가는 투자회자 사장인 주인공이 13년 전 연인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영화에서만 허락되는 방식으로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다. 나도 결혼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생각해봤다.     


“엄마가 아빠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엄마는 교수가 되었을 것 같아.”

“교수되려면 적어도 25년은 당겨야 돼. 13년으로 모자라.”

녀석은 와하하 웃더니, “작가?”라고 했다.

“아냐, 작가도 안되었을 거야.”

만약 작가가 되었다면 그때도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일을 겪고 난 후겠지라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아냐. 지금이 좋아. 네가 있잖아. 이렇게 식탁에 발을 걸치고 케이크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는 네가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이인조가) 내 생일 선물로 준 쿠폰인데 네가 먹고 싶은 걸로 사 오니까 너무 좋아.”

녀석은 킥킥거리더니 “엄마가 사준다며?”라고 했다.

“그런 미끼가 없으면 너랑 마주 보고 앉아있을 수나 있냐? 아무튼 이 길을 오지 않았다면 <엄마의 원피스>는 탄생되지 않았을 거고 그랬다면 많은 독자들이 아쉬워했겠지. 이제 <엄마의 원피스>는 내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것이거든.”

“아니야. 그냥 엄마 거야.”

"맞아. 엄마만의 것이야. 아무도 몰라. 와하하하”     


둘이서 배를 잡고 한참을 웃었다. 우리만 통하는 방식으로 웃는 이런 건 여기밖에 없겠지. 엄마는 이 시간을 선택할래. 

박모니카 작가님이 만들어준 키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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