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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un 18. 2022

특별하지 않은 날, 동네 맥주집

월요일 수업을 마치자 엄청난 일을 끝낸 것 같은 기분에 초밥이에게 밤마실을 제안했다. 초밥이도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수학여행 중이어야 했다. 에버랜드를 다녀온 흥이 남아있었고 내일은 순천행이 예정돼 있었다.     

“한 잔 하러 가자.”


집 앞에 손님으로 늘 붐비는 맥주집을 보기만 하다 가봤는데 안주는 저렴했고 주인은 친절했으며 맥주 맛도 좋았다. 등산을 다녀와 희남이 삼촌이랑 갔는데 두 잔 마시고 세 잔째 주문하려고 할 때 삼촌이 잘 시간(저녁 7시)이라며 가자고 하는 바람에 대낮처럼 훤한 밖으로 나온 게 어제였다.     


나는 생맥주 500cc, 초밥이는 콜라를 주문했다. 

“잔을 얼려서 주네.”

“호프집의 기본이지.”     

출근도장 찍을까 봐 걱정되지만

엄마가 실 짜는 기술자였을 때, 엄마는 열흘이나 보름짜리 일을 하고 보수를 받는 프리랜서였다. 수금하러 공장에 찾아갈 때 몇 번인가 나를 데리고 갔는데, 한 번은 엄마가 공장 앞 허름한 식당에 음식을 주문하고 나한테 먹으면서 기다리라고 한 적이 있다.    

 

중간에 구멍이 뚫린 양은 철판 위에 동글동글한 ‘고기’가 나왔다. 꼬릿 하고 고소한 맛은 물론 불에다 직접 구워 먹는 것까지 완전 내 취향이었다. 나중에 아빠한테 그때 먹었던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해서 달성공원 근처 곱창집에 갔는데 작고 기름이 많던 막창에 비해 곱창은 크고 질기기만 했다. 막창과 곱창의 차이를 설명할 수 없었던 나는 그 고기가 아니라며 먹지 않았고, 때마침 불에 기름이 떨어져 불길과 함께 아빠의 화도 함께 치솟았던 일이 떠올랐다.


젊고 당당했던 엄마의 리즈 시절과 어쩌다 맛본 어른의 맛은 추억이 되었다. 그렇다. 나는 초밥이에게도 그런 기억을 주고 싶어 여기 온 것이다. 술 마시고 싶은데 불러낼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초밥이는 학교에 보육원에 사는 아이가 있는데 최근에 엄마와 살게 되었다고 했고 나는 그 아이 사정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했다. 나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이야기했다. 


학교 몇 시까지 가야 해? 

학원 결석한다고 선생님한테 문자 했어? 

엄마 데려다줘.

엄마 옷 입어도 돼?    

 

이런 건 대화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 건 느긋하게 마주 앉아 몰라도 상관없는 일들을 얘기하는 시간일지 모른다.


“친구 아빠가 영어학원 원장님이라고 했잖아. 걔가 80점 맞았다고 하니까 아빠가 카톡으로 그런 정신머리로 아무것도 못한다며 혼내는 거 봤는데 심하더라.”     


초밥이가 시험을 망쳤다고 울 때 초밥이 아버님에게 전화가 왔었다. 시험이라는 게 어려울 때도 있고 쉬울 때도 있지, 점수만 보고 못 쳤다고 할 수 없지, 문제가 어떻게 나왔는지 봐야지, 한마디 한마디 조심스럽게 하는 게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평범한 말일 수 있지만 오랜 시간 시험 준비를 했고, 남보다 좀 더 많은 실패를 해본 사람인 걸 아는 나로서는 그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이었다. 성공만 한 아빠가 아니어서. 시험을 못 봤을 때 본인이 가장 힘들다는 걸 아는 사람이 아빠라서.     


자기가 이룬 작은 성공이 다라고 생각하는 부모는 아이를 좁은 곳에 가두고 채근할지 모른다. 아이가 보다 너른 곳에서 다른 길을 갈 수 있다고 인정하는 건 부모가 길을 벗어나는 경험을 하고서야 가능한 게 아닐까.   

   

어쩌면 나도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면 만족되지 않는 것을 자식을 통해 채우려 했을지 모른다.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 생각일 수 있지만, 적어도 모범적이지 않은 엄마라서 자식에게 강하게 요구할 수 없게 된 것만 해도 소득이었다.


안주는 염통구이, 치즈스틱, 얼큰 라면을 차례차례 주문했다. 염통구이는 냉동실에서 화석이 되려고 하던 걸 꺼낸 것 같았고 치즈스틱은 냉동식품이었다. 얼큰 라면은 인공적인 매운맛이 강해 중간에 사리가 들려 죽을 뻔했다. 그래도 염통 꼬지는 알뜰하게 빼먹었고 치즈와 라면은 언제나 옳으니까 괜찮았다.     


“할아버지 좋아?”

“어.”

“왜?”
“이유가 있어야 해?”
    


초밥이가 쌍꺼풀 수술한 걸 할머니는 모를 수 있지만, 손녀를 찬찬히 들여다 보기를 즐기는 할아버지는 대번에 알 거라고 하다 나온 얘기다. (쌍꺼풀 수술은 초밥이 아버님이 결국 시켜주었다) 일 년에 두세 번 보면서 버럭 큰소리에 아빠가 용돈 얼마 주냐, 옷을 잘 사주냐 같은 곤란한 질문을 하는 할아버지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초밥이는 전화도 먼저 하고, 용돈을 보내주면 왜 또 주셨냐며 (좋아하면서) 미안해한다. 

     

초밥이가 할아버지를 좋다고 하니까 뭐랄까 든든하면서 고마웠다. 집요한 간섭으로 힘들게 하지만 누구보다 마음 여린 우리 아빠를 알아주는 것 같아서.     


특별하지 않은 날, 동네 맥주집에 가는 것처럼 사소한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푹 자고 일어나 새로운 힘이 충전되듯 지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기대와 요구를 하지 않고 잔잔하게 혹은 무심하게 바라볼 수 있는 지금이 그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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