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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Mar 02. 2022

우리 책 얘기 언제 해

“근데 우리 책 얘기 언제 해?”

“지금 하고 있잖아. 책 내용만 얘기 안 해도 돼.”


초밥이는 “그래?”하더니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떤 아이에 대해 말하는 중이었다.

“아무튼 걔가 내 프사 보정이 심하다고 해서(개쩐다고 했다) 다른 애들이 ‘왜 초밥이 예쁘잖아?’했더니 ‘헐’이라고 했데.”

나한테는 해운대 모래알 개수보다 중요하지 않는 이야기를 모래알 세는 심정으로 들어야 했다.     


“오늘 걔한테 내 프사 보정 심하다고 뒷담 깠냐고 물어봤거든? 근데 안 했다는 거야. ‘프사 올렸네’ 그 말만 했다는 거 있지.”

“보정 심하다고 하면 안 되는 거냐?”

녀석은 세상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냐는 듯 눈이 동그랗게 치켜떴다.

“당연히 안되지.”

“걔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

나도 초밥이 보정이 CG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걔’와 심리적 동질감을 느꼈다.   

  

“그래. 생각은 할 수는 있어. 하지만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면 안 되지.”

“친구가 그런 말 하면 서운하겠지만 걔는 친구도 아니잖아.”

“‘최 00’ 친구 맞아. 페메도 하고 주짓수 같이 다니는 애야.”     

‘최 00’는 초밥이한테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친구라는데 별 수 없었다. 하기야 나도 그만할 때는 학교나 학원을 같이 다니면 다 친구라고 생각했으니. 그 많던 친구(싱아)는 다 어디로 갔을꼬.      


“엄마는 자기만 특별한 생각이 있고 다른 사람은 그만큼 못 미친다고 생각하는 게 짜증 나.”

"....."

“아빠도 그런데 엄마도 마찬가지야. 둘이 똑같아.”

네가 고생이 많겠구나. 그래도 내가 너희 아버님보다 덜하다.     


초밥이와 첫 번째 토론한 책은 김영경 작가의 <색이 변하는 아이가 있었다>(도서출판 노란 상상)였다. 색이 없던 여자아이가 어느 날 파란색의 남자아이를 만나고 숲에서 소나기를 함께 맞은 뒤 파란색으로 색이 변하는 이야기.     


“어제 벽장 안에 들어가서 통화하던 애 누구냐?”

벽장에 들어가면 썸이 시작되었다는 신호다.

“주짓수 같이 다니는 오빠. 완전 잘 생겼어.”

“한번 보자.”

(사진 봄)

“넌 누구를 닮아서 그렇게 눈이 낮은 거냐? 나는 예전에 잘 생겼다고 인정한 남자가 별로 없었는데 너는 마음이 어찌 그리 바다 같은지 아무나 다 잘생겼데. 15년 인생에서 잘 생겼다고 한 남자가 대체 몇 명이냐? 게다가 일관성도 없어요, 한동안은 통통한 사람이 좋다더니 요즘은 죄다 슬림핏이잖아?”

내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초밥이가 말했다.

“그게 어때서.”     

보정없이도 빈틈없이 귀여웠던 초밥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나에 비해 초밥이는 겁이 없었다. 좋으면 좋은 거였다. 어쩌면 나는 무해한 사람, 안심하고 좋아해도 되는 사람을 찾았는지 모른다. 개성과 주장이 강해서 기싸움을 해야 할 것 같은 사람보다 어른스럽고 진중한 사람이 좋다고,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주 가끔 예외는 있었다. 그나저나 그 많던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꼬.     


중 3 때 나도 내 뒷담을 전해 듣고 최초 발설자를 찾기 위해 이반저반 다닌 적이 있었다. 그래 놓고 초밥이한테 걔는 자기 생각을 말한 것뿐이라는 소리나 했으니. 나야말로 과거에 대해 CG급 보정을 한 셈이다.

    

그날 이야기를 할 때는 몰랐지만 이 글을 쓰다 보니 나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남은 해줄 수 없는 말을 딸이니까 해준 건데(그러니까 엄마가 친구가 없는 거야, 라며), 나는 어린아이가 하는 투정쯤으로 들었다. 토론을 하기로 했으면 아이를 나와 동등한 위치에 놓고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어야 했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남들처럼 살려고 한 지난 시간이 후회되어서 딸은 자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되길 바래서 독서토론을 시작했는데 내가 장애물이 된 것 같았다. 초밥이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듣지 못하고 내 감정을 투사하고 취향까지 평가하려고 하다니. 나는 내 부모와 다른 또 다른 피해의식으로 딸을 바라본 게 아닐까. 내가 원하는 색을 아이에게 입히려고 한 게 아닐까.  

    

무색의 소녀가 수족관에서 은빛 물고기를 만났을 때 처음으로 색이 변했고, 소년을 만나고 또다시 색이 변한다. 그렇게 자식이 자기 색을 찾아가는 과정을 부모는 불안하지만 지켜볼 수밖에 없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그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집 같은 존재가 되어주는 것밖에 없다.


며칠 후 초밥이는 썸을 타던 오빠야와 연락하지 않는다고 했고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너 좋아하는 거 사 왔어.”

“뭔데?”

대답만 하고 거실로 나오지 않는 초밥이의 방문을 열고 나는 호두과자를 넣어줬다.

“아직 따뜻해. 내가 속에 품고 왔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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