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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an 25. 2022

아이가 쓴 쪽지에 가슴이 철렁한

짧고 비치고 민망한, 보고 있으면 혀 차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치마를 입고 집을 나서는 초밥이를 나는 불러 세워야 했다.     


“지금 입고 있는 치마와 속바지와의 차이점이 뭐냐?”     


녀석은 치마는 치마고 속바지는 속바지지, 라는 하나마나한 대답을 했고 나는 조용히 다른 옷으로 갈아입기를 종용했지만 녀석이 말을 들어먹지 않아서 ‘착용 금지’ 처분을 내렸다. 민주적인 협의를 하고 싶었지만 그 치마는 천도 모자라고 주권도 없었다. 녀석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짧은 건 똑같은 검은색 치마를 입고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그만할 때는 어른 흉내를 내고 싶고 때로는 노답 같은 패션도 자기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속옷은 남들에게 그 존재를 알릴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초밥이가 나가고 정적을 친구 삼아 있다 보니 나는 뜻밖의 감정과 마주하게 되었다. 친구와의 약속이 있고 옷 때문에 엄마와 실랑이를 하는 저 아이가 부러웠다. 게다가 오늘은 토요일, 평일과 주말의 차이가 없고 약속은 나와의 약속밖에 없는 나와 대비가 되었다. 냉장고에서 달랑 반찬 한 개를 꺼내서 식은 밥을 한 술 뜨고 있자니 적적함이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일요일, 듬직한 산악인인 나는 새벽 3시에 일어나 배낭을 싸는데 식탁에 쪽지 한 장이 놓여있었다.  

    

“어머니. 소녀, 어머니가 산에 가셨을 때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 라면이 없사옵니다.... 식탁에 5000원만 올려놔주시면 안 될까요. 라면이 먹고 싶사옵니다.”     

가슴 철렁하게 한 쪽지

와하하, 웃어야 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어제 초밥이와 나눈 대화 때문이었다.     


“집에 안 들어와도 돼. 친구 집에서 자고 오고 싶을 때 와.”     

밤 10시까지 놀겠다는 초밥이한테 나는 말했다. 더 놀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한 통금시간을 아무리 늦춰도 부족할 테니 실컷 놀라는 뜻이었다. 나의 진지한 말투에 녀석은 당황했다.

    

“왜? 나는 집에서 자고 싶은데.”

“엄마 때문에 집에 들어와야 된다고 생각하면 억울하잖아.”

“아냐. 파자마 파티가 아니면 친구 집에서 자는 건 싫어.”     


바로 어제 그런 이야기가 오갔는데 편지를 보니 나로서는 겁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런 말이라도 적혀있을 줄 알았다.


“어머니 말씀을 듣고 보니 집을 나가서 생활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사옵니다. 역시 어머니는 현명하시옵니다. 자유와 독립을 높은 가치로 두는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소녀 세상 밖으로 나가보겠사옵니다. 아참, 비상식량으로 라면 한 봉지는 가져가겠사옵니다.”      

(나의 상상 속 편지)


녀석이 집이라도 나갔을 거라고 생각을 한 게 어이없으면서도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쩌나, 이제부터 이런 걸 걱정할 때가 되었나, 하는 생각은 이 새벽에 대구에 있는 부모님까지 이어졌다.     

 

한 번은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는데 배낭을 메고 나오는 아빠와 딱 마주친 적이 있다. 길이라면 어디라도 피해 볼 텐데 엘리베이터를 내리는 순간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아빠와 조우하는 바람에 나는 안녕하세요, 안녕히 다녀오세요 중 어느 말도 하지 못한 채 벽에 비켜섰고 아빠는 체념한 얼굴로 내가 방금 내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아빠는 그날 어느 산에 갔나, 지금의 나보다 몇 배는 복잡한 마음이었겠지, 이십 년 전에는 궁금하지 않았던 질문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나는 산에서 먹을 어묵탕거리, 사과, 물, 수저를 차곡차곡 챙겼다. 심란할 때는 산이 최고지, 아빠도 한발 한발 걸으면서 잠시나마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식을 내려놓는 시간이었기를 바란다. 물론 내가 할 소리는 아니다.



   

초밥이가 라면을 끓여먹고 있는 시각, 어미는 눈 덮인 덕유산을 헤매고 다녔다. 상고대는 최고였지만 사진을 찍으려면 장갑을 벗어야 해서 손가락도 상고대가 되려고 하는 걸 피할 수 없었다. 손이 곱아서 라면 가닥도 제대로 떠먹지 못했지만 힘든 중에 언뜻언뜻 보이는 눈꽃과 배경을 이루는 새파란 하늘에 자꾸 눈길이 머물렀다.

    

집에 돌아와서 초밥이한테 동상에 걸릴 뻔하면서 찍은 동영상을 보여줬더니 녀석은 1도 공감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혼자 말하면 부끄럽지 않아?”

너는 부끄러움을 알아서 속바지와 구분이 안 가는 치마를 입고 나가냐고 묻고 싶었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초밥이가 공감하지 못한 눈꽃 터널

“엄마 한라산도 가봤어?”

“당연하지, 왜?”

“TV에 전현무가 한라산 등반하는 거 나왔거든.”

“그래? 우리 당장 제주도 가자, 한라산 가게. 엄마 등산화 두 개잖아. 아니다. 당장 네 거 하나 사자.”

“워워. 엄마 진정해. 아직은 아니야. 그냥 조금 관심이 생겼을 뿐이야.”   

  

언젠가 네가 앞으로 남은 날이 아득하게 느껴질 때 지리산 민박집에서 잠을 자면서 몇 날 며칠을 함께 걷고 싶어. 같이 눈비 맞고 개울을 건너고 오르막과 내리막, 따스한 햇살도 매서운 바람도 그냥 맞으며 걷자. 몸을 고달프게 하고서야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는 일도 있다는 걸, 그것도 괜찮은 경험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     


이 생각을 하는데 나는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서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고 있는 녀석을 그윽하게 바라봤다. 언젠가 네가 날 바라보는 눈길에서 우리 엄마 근사한데, 라는 말이 담겨있다면, 아 그날이 올 때까지 엄마는 우직하게 산을 오를 거야, 까지 문장을 완성하고 혼자 가슴이 벅차 눈물까지 조금 흘렸다.


     


 

우리가 두 번째 토론한 <어느 날 아침>은(첫 번째는 얼렁뚱땅 해치웠다) 한쪽 뿔이 사라진 사슴이 잃어버린 뿔을 찾기 위해 나선 길에서 나뭇가지를 잃어버린 개미핥기, 겨울 식량을 잃어버린 집토끼, 반쪽만 남은 달을 만나고 나머지 뿔도 빠진 채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사슴에게 새 뿔이 자라는 걸로 책은 끝이 난다.

어느날 아침, 딸에 대한 근심이 자랐다


“너의 사라진 뿔은 뭐야?”

“자존심”

“새로 생긴 뿔은?”

“자존감”

초밥이의 설명에 의하면 친구들에게 질투가 나는 건 자존심이고, 친구들이 나를 칭찬해주지 않아도 괜찮은 감정이 자존감이라고 했다. 자존심은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감정이라면 자존감은 스스로 만족스러운 상태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엄마는 사라진 뿔이 뭔데?”     

엄마한테 사라진 뿔은 흥청망청 놀고 싶은 마음이고, 새로운 뿔은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어버이 은혜와 너에 대한 근심이다.  


    


브런치에서 구독하고 있는 진우 작가님 글에서 보고 저도 다음날 헌혈을 하러 갔는데 출산 이력이 있는 여성은 혈소판 성분헌혈을 할 수없고 3차 백신을 맞은 지 일주일이 경과되지 않아서 헌혈도 하지 못하고 돌아왔어요. 요즘 코로나 19로 혈액 수급이 어렵다고 해서 헌혈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참이었거든요. 몇 달 전에 철분이 부족해서 헌혈 부적합 판정을 받아서 이번에는 영양제를 몽땅 먹고 갔는데 또 돌아오게 되었어요. 명절 앞두고 가족을 만날 생각에 마음이 분주하지만 누군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의연한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었습니다. 헌혈은 다시 하러 갈 생각이에요. 독자님들 명절 따뜻하게 보내시고 다정한 마음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아 글 공유합니다.


https://brunch.co.kr/@blueattic/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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