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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ul 08. 2022

엄마, 나 수학 포기했어

“나 수학 포기했어. 수학 점수 조금 올리는데 시간 쓰느니 다른 과목을 팔래.”

“그래. 엄마는 네가 인생에서 수학 하나쯤 제껴도 괜찮다고 생각해.”

“진짜?”
“그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나온 대사야. 나는 중학교 2학년에 수학을 포기하겠다는 너의 빠른 판단이 존경스러울 뿐이다야.”    
 


초밥이는 ‘수학 조기 포기’(조기졸업도 아니고)에 대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과학은 한 두 개 공식만 외우면 문제를 풀 수 있는데 수학은 유형이 많아서 공부할 게 많다는, 말 그대로 가성비가 떨어지는 과목이라고 했다.      

‘수학 시험을 위한 공부’란 문제가 뇌에 가닿기도 전에 손이 알아서 문제를 풀도록 손에 뇌가 달린 것처럼 연습해야 하는 걸 초밥이는 벌써 간파했던 것이었다. 똑똑한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이가 담임선생님 면담을 갔을 때다.  

   

선생님: 1학년부터 수학이 이렇게 떨어지면 갈수록 더 큰 일이거든요.
동백: 저는 필구가 그냥 인생에서 수학 하나쯤은 그냥 좀 제껴놔도 된다 괜찮다 생각하고 있어요. 


동백이가 말한 수학은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 중 하나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수학을 못해도 괜찮다는 건 아들이 남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 말고 나에게 중요한 것을 품고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말이 아닐까.    

 

“첨에는 너희 우등생이 아닌 거 화났어. 어이가 없었고 화가 났지. 하지만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어. 아이들이 공부 잘하면 왜 좋니? 하, 그거야 당연히 그러면 너희가 성공하고 너희가 별로 돈 걱정 안 할 확률도 높고, 살기도 편하고.... 그랬지. 그런데 다시 물었어. 정말 그 이유가 다일까? 묻고 또 물었더니 맨 마지막에 말이야 어이없게도, 너희가 공부를 잘하면 내가 좋은 거 같았어. 너희가 아니라 내가 말이야.”     


공지영 작가의 <즐거운 나의 집> 속 글이다.     

 

부모는 왜 자식이 공부를 잘하기를 바랄까? 자식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 것처럼 부모는 자식이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면 일단 기쁘다. 배운다는 건 삶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에 나를 통해 세상에 태어난 존재가 힘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부모에게 뿌듯한 일은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엄마, 나 시험 끝나고 캐리비안베이 갈 거야.”

“20살 되면 강남에 헌팅 많이 하는 술집 갈 거야”  

   

(좀 숨겨주면 안 되겠니) 이런 야심 찬 포부를 밝히는 녀석을 내가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학교 옆 ‘소룡동 야외수영장’이 너의 캐리비안베이라며 캐리비아행은 저지시키더라도 앞으로 내가 일일이 따라다닐 수도 없고 어떻게 두 발 달린 인간을 막나. 녀석이 스스로 조심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한 권당 만원씩 줘가며 하는 독서 토론, 뒷목 잡는 제안에도 내가 분노 버튼을 누르지 않는 이유는 초밥이가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기르길 바래서다. 색종이는 아니지만 수학을 접었다가 펴는 과정에서 공부가 나한테 왜 필요한지, 수학은 왜 해야 하는지 질문하는 시간이 될 거라 믿는다. 충분히 생각하고 내 것으로 받아들인 것에는 애착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래야만 이후 힘든 순간이 왔을 때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는 이 시점이 되면 성적 때문에 내가 과외하는 학생 중에 그만두는 경우가 있고, 신규생 문의도 들어온다. 특히 중학교 때 최상위권이라 믿었던 성적이 고등학교에 유지되지 않는 고 1의 변동이 크다. 중학교 시험은 선생님이 반복해 짚어주면 점수가 나오지만, 고등수학은 내용과 논리가 복잡해져서 스스로 익혀야만 해결된다.     


성적 부진이라는 이유로 가르치던 학생이 떠나고, 같은 이유로 신입생이 들어온다. 나는 이들이 거쳐가는 간이역 같다. 선로를 바꿀 능력이 없는 나는 들어오고 지나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다. 목적지가 하나인 기차, 기껏 도착해도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열심히 달린다. 대안이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 고장 난 라디오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부모님이 자녀에게 적응하는 과정이니 걱정 말라고 하면, 아이들도 서서히 페이스를 찾아갈 수 있다. 부모님이 불안해하고 실망하면 아이들은 고스란히 느끼고 체념한다.


한 정신과 의사가 요즘 아이들은 외동이나 형제가 적어서 부모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자라다 보니 자의식 과잉이 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스스로 성취한 것이 아닌, 부모의 높은 기대에 자신을 맞춰서 첫 번째 실패에 대한 타격이 크다고 했다.   

  

중학교야말로 다채로운 실패를 하기에 적합한 시기가 아닐까. 지름길을 알려주는 학원보다 부모가 아이의 방식을 지지해주고 망하면 위로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학부모와 과외선생님이라는 교차로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다.

셀카는 포기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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