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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Apr 27. 2022

엄마, 이번 시험 성적 기대하지 마

시험은 학생일 때만 치는 게 아니던데

“엄마 오늘 바빠?”

안 그래도 저 말이 언제 나오나 했다. 초밥이가 새벽까지 공부해서 피곤하다며 학교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여기에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었다. 전날 오후 5시 30분부터 10시까지 숙면을 취하고 목욕하고 몇 시까지 공부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걸 밤새 공부했다고 할 수 있는 건지 뭔가 이상했다.     


“아, 졸려.”

“한 시간 자고 갈래? 선생님께 전화하고.”

“진작 말하지. (화장도 다 했는데) 그냥 가.”

“잘 생각했어. 그런 거 습관 되면 불가피한 상황도 아닌데 이용하게 되거든. 학생들이 결석을 쉽게 생각하는 거 보면 엄마는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때로는 그런 일이 남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불편해도 규율을 따르려고 하는 사람한테 신뢰가 쌓이는 건데, 그지?” 

“엄마 나 늦었어.”     


차 안에서의 대화.

“애들이 나 마스크 벗은 것도 괜찮대.”

“그 말에는 마스크 쓰는 편이 더 낫다는 뜻이 전제되어 있다, 그지?”

초밥이는 룸미러로 마스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얼굴을 비교했다.

“엄마는 어때?”

“화장한 걸 기준으로 하면 안 쓰는 게 나아.”

“너는 좀 마기꾼(마스크 사기꾼)이고, 그지?”

“나 좀 잘게.”    

 

그날도 초밥이는 집에 돌아와 밤 10시까지 자고 심란한 얼굴로 일어나 커피와 과자를 사 왔다. 내 생각에는 그냥 두 시간 공부하고 자면 될 것 같은데 어디서 시험공부는 밤새워하는 거라고 들었는지 벌써 며칠째 이어진 루틴이다.     


“엄마, 이번 시험 성적 기대하지 마.”

“설마 내가 기대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처음에는 평균 95점을 목표로 잡았거든? 하다 보니까 안 되겠어서 90점, 지금은 85점으로 낮췄어. 그래도 90점은 넘어야 잘하는 거지?”   

  

“엄마는 있잖아, 그 많은 시험을 보면서 왜 한 번도 ‘이번 시험 못 봐도 괜찮아’라고 말해준 어른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살아보니까 시험은 학생일 때만 치는 게 아니던데 말이지.”     


좋은 성적뿐 아니라 참담한 결과일수록 남기는 게 더 많더라는 말을 예전에 들었더라면 (물론 못 알아 들었겠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한결 편안해지지 않았을까.      



초등학교 4학년 초밥이는 60점을 받은 수학 시험지를 가져와서 나한테 잘한 거냐고 물어봤다. 엄마가 뭐라고 하나 기다리고 있던 녀석에게 내가 “50점 넘으면 잘한 거지”라고 하자 순간 초밥이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내 말이 곧 하느님 말씀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때쯤 나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상담센터에 상담 신청을 했는데, 기질 검사 결과 초밥이는 행동, 규범, 이상 지능은 높았지만, 탐구 지능은 낮게 나왔다.      


“탐구 지능은 공부 지능이라고 할 수 있고 지적 욕구와 연결되는데 아이는 이 영역이 낮게 나왔어요.”

상담사님의 친절한 설명에 내가 말했다.

“그래서 초밥이가 50, 60점에 만족했나 봐요. 이제 이해가 돼요.”

“보통 이런 얘기를 들으면 탐구 지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시는데 초밥이 어머니는 다르시네요.”

나의 반가움에 선생님이 기쁘게 화답했다.  

   

초밥이가 몸무게로 상위 3퍼센트를 찍던 날, 검사 결과를 알려주던 의사 선생님은 “그래도 키도 상위 10퍼센트 안에 듭니다”라고 나한테 위로가 담긴 말을 전했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지만 나는 초밥이의 믿음직한 팔뚝을 보며 건강하기만 하면 돼,라고 되뇌었고, 이번에는 내 자식은 공부는 아니야, 체념을 했다. 두 번째라 조금 쉬웠다.     


리더십이 있고 활동적인 성격이라는 검사 결과를 증명하듯, 수업시간이 남을 때 선생님들은 초밥이 이름을 부르며 “노래 한번 틀어봐”한단다. 내가 “무슨 마당쇠냐?”라고 했더니 녀석은 큭큭거리더니, “학교를 마칠 때가 되면 어떨 때는 아쉽다니까”라고 했다.      



독서모임을 하는 지인이 내게 상담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주변에서 6학년인데 영수학원 안 보내냐고 그래요. 저도 학원을 보내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건 아는데, 그것 말고 제가 뭘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만난 많은 학부모들도 공부가 다가 아닌 걸 알지만, 자녀가 자칫 방만한 생활로 이어질까 봐 공부라도 하라고 한다고 했다. 학습을 중시하는 학교와 사회분위기에서 열등감을 가지지 않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부모가 어떤 계기를 통해 사회적 성공이 다가 아니라는 걸 경험했거나 봉준호 감독, 한강 작가처럼 예술가 특유의 분위기에서 성장하지 않았다면, 부모가 중심을 잡기는 어렵다고 나도 생각한다.      


중학교 2학년 초밥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와 비슷한 수학 점수를 받아왔다. 신이라는 연출가의 짜임새 있는 구성에 나는 감탄부터 했지만, 교복을 입은 채 잠들 정도로 공부를 하고 받아온 소중한 점수 앞에서 이번만큼은 웃을 수 없었다. 


뭐가 문제지, 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초밥이한테 수학은 매일 공부를 해야 하는 과목이야,라고 하려다가 내가 문제를 풀어왔던 그 수많은 시간에 다른 걸 했더라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하는 느닷없는 자기 성찰로 이어졌다.      


매일 수학 문제를 풀었지만 좋아하지는 않았다. 잘 풀리는 날에 기분이 좋았지만 그건 안도에 가까운 감정이었지 가슴이 부푸는 감정은 아니었다.          


수학으로 매일 하는 힘은 길러졌을까. 아무튼 계속하다 보면 늦게라도 원하는 걸 할 수 있게 되는 거겠지. 수학장수로 밥벌이를 하는 걸 감사해야지. 적성에 맞는 일과 맞지 않는 일을 부단히 해온 결과 이런 답없는 생각을 하는 내가 된 것이 아닌가.      


자기가 직접 겪고 깨달은 것이 아니면 남에게 가르칠 수 없는 것 같다. 부모 스스로 내가 어떤 기질의 사람인지, 지난 시간에서 힘들었던 원인과 앞으로의 길을 찾을 때,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지 않을까. 나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나를 거울처럼 보여주는 자식이 불안한 것일지도 모르니까.

순대국밥이나 먹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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