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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Oct 13. 2022

드넓은 바다를 보여주라

오늘 소감03


나는 수학 학원 선생님인 주제에 ‘수학이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의문을 품어왔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에서 의문은 증폭된다.     


“오늘 친구 생일이라 애들은 치킨 먹으러 가는데 저만 못 갔어요.”

“왜 안 갔어? 지금 가. 다음에 보강하고.”

“진짜 그래도 돼요?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친구 생일에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과 수학학원 가는 일 중 뭐가 더 중요한가. 마음은 친구들과 있는데 학원에 앉아있다고 공부가 되나.      


학생들이 매일 편의점에서 저녁을 때우는 걸 보면 나는 얼마나 대단한 일이기에 성장기 아이들이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들은 잘 크는 게 우선순위가 아닌가.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친구들과 놀지 못하면서 기껏 시험지 몇 장 푸는 게 무슨 소용인가.    

 

차분히 앉아서 개념을 읽어보고 예제를 따라 써보면 얼마든지 혼자 공부할 수 있다. 그래도 어려우면 유튜브에 단원명을 치면 친절한 강의는 넘쳐난다.      


그런 걸 가르치고 싶었다. 혼자 공부할 수 있고, 혼자 해도 되고, 결국 혼자 해야 한다는 것.  

    

“문제랑 해설 쓰니까 이해되지 않냐?”

“네.”

“누가 설명 안 해줘도 알겠지?”     


아이가 친구 생일이라 학원을 빠지면 안 되냐고 할 때 부모 입장에서 앞으로 핑계만 있으면 결석하는 습관이 될 것 같아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소아정신과 지나영 교수는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에게 기본적인 삶의 근본과 사랑과 존재가치를 줬으면 발달과정에 따라 자기 조절 능력을 키워준다고 생각해야 해요. 모든 것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본질 외의 것이 아이의 성패를 가르지 않습니다. 작은 것들은 힘을 빼도 괜찮습니다.”     


지나영 교수가 말하는 삶의 근본은 신뢰, 책임감, 기여, 배려다. 이 4가지 가치와 긍정적 마음자세, 즉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가능성을 찾는 태도를 부모가 삶으로써 보여주라고 했다. 그러면 자녀가 휴대폰을 하루에 몇 시간 하느냐 하는 문제들은 자녀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나영 교수가 쓴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 육아>에 있는 부분이다.  

   

“생텍쥐베리는 누군가에게 배 만드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한다면 드넓은 바다를 보여주라고 했다.”    

 

많은 부모가 배 만드는 법을 가르치려고 하지만, 아이가 바다를 보고 ‘넓고 아름다운 바다는 어떤 곳일까, 저 뒤에 뭐가 있을까?’라고 호기심을 느끼면 ‘배를 타고 저기를 가봐야겠다, 탐험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이게 바로 ‘영감’이라고 부르는 내적 동기다.     


시험대비를 하다 보면 과정보다 결과만 중요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볼 때 결과는 사라지고 과정만 남는 게 맞는 것 같다.     


“100점을 맞아도 기분이 나쁠 것 같은 그런 기분 아세요?”

학원에 8시간을 붙들려 있다가 시험을 본 학생의 말이다.    

  

“중학교 1학년 때 학원에서 강제적으로 공부를 시켜서 수학 100점을 맞았다고 해봐. 그 점수는 사라지고 괴롭고 억울했던 기억만 남지 않냐?”     


학생이 성적이 오른 걸 계기로 자신감과 학습 의욕이 생긴 게 아니라면 부정적 학습 정서만 가질 수 있다. 

     

시험 준비 어느 정도 되었어? 

이제 뭘 하면 좋을 것 같아? 

교과서, 모의고사, 학교에서 준 프린트 풀면 좋을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혼자 시험 준비를 할 수 있고, 혼자 해도 되고, 결국 혼자 해야 한다는 걸 알기를 바랐다.     


나의 질문에 싫다고 하는 아이들보다,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나는 더 걱정이었다. 자기 의사를 말하고 의견이 수용되는 경험이 적은 아이들이 수학 점수만 잘 나오면 되는 걸까. 겉으로 볼 때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 아이들이 남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게 당연하게 될까 봐, 아이들의 생기가 없는 얼굴이 나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뭐라도 가르치는 사람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걸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학생들에게 세상에 가능성은 많고 너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는데, 나는 정작 그 말을 믿고 있는지 자신이 없었다.                     

함께 읽어요. 경상도 사투리가 '씨게' 나오는 교수님 강의도 강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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