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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an 11. 2022

한 권당 만 원 줄게


“방학 때 엄마하고 책 읽고 토론해볼래?”

“싫은데.”

“한 권당 만 원 줄게.”

“싫어.”

“그림책이야.”

“좋아.”     


무슨 이유에서인지 초밥이는 이번 주 내내 인상을 쓰고 있어서 덩달아 나도 녀석의 눈치를 봐야 했다. 어제는 장을 본 게 많아서 초밥이한테 주차장에 내려오라고 전화를 했더니 받지 않았다. 초밥이는 노래방이든 어디든 전화만큼은 잘 받는데 아직도 자고 있는 게 분명했다(나는 밖에 나가면 전화를 받지 않는 몹쓸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건 나를 닮지 않아 다행이다). 

     

짐을 이고 지고 집에 와서 녀석을 불렀더니 자다 깬 부스스한 얼굴로 나타났다. 어제 몇 시에 잤냐고 하니까 새벽 두 시라고 했고 그때는 오후 1시 30분이었다. 나는 무슨 말이 튀어나오려는 입을 막고 늦잠으로 입맛을 잃은 초밥이를 위해 사온 김밥과 쫄면을 차려줬다. 하지만 오후 5시에 문을 열어봤더니 녀석은 또 자고 있었다. 

     

오전과 낮시간을 잠을 자는 녀석 때문에 한 집에 같이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았다. 화장실에 휴지나 수건이 없을 때나 이 집에 나 말고도 사람이 살고 있구나를 느낄 뿐이었다. 그때마다 작은 분노가 일었지만 착한 엄마는 그러면 안된다고 다독이고 밥 먹을 때 잠깐 보는 초밥이한테 화장실에 휴지, 수건을 쓰고 나면 새 것을 걸어두라고 했다. 초밥이는 오랜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무슨 잔소리냐는 얼굴로 숟가락을 놓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오늘도 “더 먹지”라고 중얼거리며 식탁에 덩그러니 남았다.      


수업을 마친 늦은 저녁, 오랜만에 마주 앉은 초밥이가 말했다.

“나는 엄마처럼 공부 못할 것 같아.”

“엄마 별로 잘한 거 아닌데?”

“아냐. 나는 엄마 정도도 못할 거야.”

“아빠도 중고등학교 때는 공무 못했데. 그리고 네가 엄마 어릴 때보다 똑똑해. 그건 장담할 수 있어.”

“나도 엄마 때처럼 휴대폰이 없었다면 공부했을 것 같아.”     


보아하니 초밥이는 밤새 휴대폰하고 그 외 시간은 잠만 자다 보니 자신감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휴대폰이나 게임 중독이 되면 점점 무기력해지는 게 문제였다. 아무리 나의 욕망에만 몰두하는 엄마지만 녀석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야 했다. 방학인데 아빠한테 용돈을 7만 원밖에(!) 못 받았다며 불만인 초밥이에게 돈을 미끼로 독서토론을 하자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우리 아빠 김길수 씨는 방학이 되면 오빠와 나에게 계획표를 짜오라고 했다. 계획표에는 운동과 학원을 한 가지씩 넣으라고 하면서 “너희들이 필요한 걸 해주는 게 아빠가 돈을 버는 이유”라고 했다. 나는 아빠가 등록해준 에어로빅(그때는 운동이라면 이것밖에 없었다)을 아줌마와 아가씨들 사이에서 하고 영수학원을 다녔다. 두 가지 모두 결석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매일 숙제와 에어로빅복을 꼬박꼬박 챙겼다. 아빠나 나나 꽤나 성실했던 시간이었다. 같은 시간 오빠도 무협지와 게임이라는 광활한 세계에서 무림고수가 되기 위해 홀로 고독한 싸움을 이어나갔다.

    



“엄마, 책 안 줘?”

이 소리가 ‘엄마, 돈 안 줘?’ 들리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아빠 말에 복종했던 나와 엄마 말이라면 토부터 달고 보는 초밥이를 비교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방학하고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걸어주는 초밥이한테 고마워하기로만 했다.      


사실 나는 초밥이가 말대꾸를 하면 ‘얼쑤 잘한다’ 추임새를 넣고 싶은,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심정이 되고 만다. 예전에 내가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을 못 한 보상심리 때문인지 일방적으로 훈계를 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우리가 대화가 잘 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중 2를 앞두고 있는 초밥이는 질풍노도의 수치가 하루가 다르게 상승해서 말에 논리라는 게 없었다. 

“예전에 너라면 그런 핑계와 변명은 하지 않았을 텐데.”

나는 초밥이의 말에 대응하는 걸 포기하고 이런 탄식을 할 때가 많은데 녀석은 이 어미가 얼마나 참는지도 모르고 그것조차 듣기 싫어서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는 한다.     


어떨 때는 녀석이 일부러 화를 내는 것 같을 때도 있다. 내가 식탁 정리하면서 "컵은 바로 씻고 엎어놔야 내 복을 다 챙기는 기다"하면서 엄마 흉내를 내고 있는데 초밥이가 제 방에 들어가는 게 아닌가.  

“말하는 중인데 너 어디 가냐?”

“추워서 방에 들어가서 들으려고.”

“엄마하고 한 공간에 있기 싫어서 그러지?”

“문 열어 놓으려고 했어.”

“아니야, 엄마와 최대한 떨어져 있고 싶은 무의식이 작용한 거야. 엄마는 작가라서 다 알아.”

“엄마 글 쓴다고, 책 많이 읽는다고 다 아는 것처럼 굴지 마. 엄마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아? 그럴 때마다 엄마 진짜 싫어.”

싫다는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화낼 상황도 아닌데 몰래카메라 찍는 것도 아니고 냅다 화를 내서다.

“방에 빨리 가고 싶어서 일부러 화내는 거지?”

“아니라니까. 엄마 진짜 짜증 나.”

한 장 남은 치즈를 저한테만 넣어서 샌드위치 만들어줬더니 오전 9시도 안됐는데 "싫어, 짜증 나"2종 세트를 선물로 받았다. 이어지는 결정적인 한마디.     

“작가도 아니면서.”

그 말에 우리 둘 다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 말 취소해. 책을 냈는데 왜 작가 지망생야. 빨리 취소해. 매일 일어나자마자 노트북에 매달려 있는 걸 보는 장본인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

화나는데 웃긴 건 웃긴 거였다. 오전 9시도 안된 시간에 실컷 웃었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오면, 책을 찾아보니 학원에 있던 그림책들을 챙겨 오지 않아서 마땅한 게 없었다. 그때 <십시일반>이 눈에 띄었다.     

“뭐야? 엄청 두껍잖아.”
“만화니까 앞에 조금 읽고 결정해.”

“싫어. 계약위반이야.”

계약위반은 너다 이놈아. 잠 와 죽겠는데 책 읽어달라고 조를 때는 언제고 조금이라도 더 읽으면 큰 손해라도 나는 것처럼 구는 네가 계약위반이다.   

 

엄청 두꺼운 책

하지만 다음 날 보니 초밥이는 <십시일반>을 읽고 있었다.

“읽을만해?”

“어.”

‘돈 벌려면 할 수없잖아’로 들리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토론하려고 (나만) 마음먹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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