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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Feb 15. 2022

우리 이제 마흔다섯이다?

돈 안 드는 관리 01-레몬 물

동동맘에게 새해 문안차 전화를 걸었다.


나: 깜짝 놀랄 소식 알려줄까?

동동맘(이하 동): 뭔데?

나: 너 이제 마흔다섯이다. 믿어져?   


믿고 말고 간에 애초부터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고 해마다 꼬박꼬박 업그레이드해서 찾아오는 나이 앞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야속한 세월을 원망하다가 만만한 친구한테 전화하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예상보다 태연한 동동맘은 작년에 받은 충격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해서 45세의 타격은 실감이 안된다고 했다. 

     

동: 머리카락이 갑자기 빠지고 피부가 늘어지는 게 작년에 진짜 심했다니까.

나: 한 번씩 꺾일 때가 있더라고. 거울에 왠 낯선 여자가 나인 척하잖아.

동: 아냐. 진짜 낯선 사람은 사진에 있어.  

  

20살에 만난 우리가 45세의 소회를 나누고 있자니 동동맘과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1학년 초 단대 엠티를 갔을 때였다. 학부였던 우리는 1학년 때는 다른 과 소속이었는데 바로 옆 줄에 동동 맘이 남자들과(!)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가느다란 몸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동동맘을 내가 견제의 시선을 담아 바라봤던 순간을 회상하는 사이 동동 맘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너는 운동해서 아직 괜찮아. 하지만 나는 이미 틀렸어.”     


반전의 묘미가 있는 게 인생이라 했던가. 허리가 한 줌도 안되었던 그 여학생과 나는 남들에게는 하등 중요하지 않고 오직 나한테만 충격으로 다가오는 갖가지 노화의 징후로 대화를 이어갔다. 


나: 근데 좀 이상해. 수명이 90세라면 45세는 젊은 거잖아. 당대의 대표 미인이라는 사람들마저 늙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이 상실감은 대체 뭐지?

동: 야, 그 사람들은 여전히 예쁘잖아.

나: 조금만 늙어 보이거나 살이 찌면 네티즌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악성 댓글을 다는 통에 관리하느라 얼마나 전전긍긍하겠냐. 이래서 내가 연예인 안 했다니까.

동: 그런 거냐?     


늙지 못하는 벌을 받은 것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안티에이징 한 연예인들의 얼굴을 보면 나는 감탄보다는 탄식이 나온다. 나이의 흔적은 지웠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불안은 지워지지 않아서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소개하는 동안 비법은 눈여겨보고 따라 하지만(지금도 레몬 물을 벌컥대고 있다) 그건 어디까지나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예쁘다는 말 때문이 아니라 내 몸과 건강을 위해서다. 피부과 시술, 성형, 네일숍 관리는 이제 돈이 없어 못하니 차라리 잘되었다는 정신승리를 하기에 이르렀다.     

 

노화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면 돈이 안 드는 관리도 많다. 아까 말한 레몬 물 마시기, 공복 유산소, 탄수화물 섭취 줄이기, 쌀뜨물 세수, 홈트레이닝, 라면, 햄, 과자 같은 가공식품 먹지 않기 등등은 오히려 돈이 없으면 더 하기 쉬운 것들이다.  

  

돈 안 들이고 관리하기


최고의 안티에이징 비법은 노화가 두려운 이유와 현명하게 마음을 다스린 사람들을 찾아보는 거다. 애청하는 유튜브 <알릴레오 북스>에는 많은 젊은 미남, 미녀들이 출연한다. 각계각층의 전문가로 통하는 그분들은 대다수 50대 이상이지만 한 분야에 정통하기 위해 긴 시간을 보냈고 여전히 도전하는 ‘젊음’을 가지고 있었다. 지식뿐 아니라 태도와 말투에서 기품이 느껴지는 분을 보면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알릴레오 북스 52, 53회에 출연한 성공회대 김창남 교수를 보고 저분처럼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백발에 맑은 혈색은 평소 검소하고 단순한 생활을 보여주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사색과 독서로 보내온 시간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았다. 외모는 겉을 치장하는 게 아닌 향기처럼 안에서 풍겨져 나오는 게 아닐까. 저마다 보낸 시간과 생각이 다른 향기를 만드는 게 아닐까. 

    

"단기수들은 벽에다가 달력을 그려놓고, 하루 지나가면 사선을 하나 긋고 오후가 지나가면 사선을 사선을 또 하나 그어서 X자로 지워 갑니다. 만기 날짜만 기다립니다. 하루하루는 지워 가야 할 나날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기가 없는 무기수의 경우는 그 하루하루가 무언가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하루하루가 깨달음으로 채워지고 자기 자신이 변화해 가야 그 긴 세월을 견딥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에 있는 구절이다.      


“하루하루가 무언가 의미가 있어야”하는 건 장기수에게만 통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장기수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우리도 “하루하루가 깨달음으로 채워지고 자기 자신이 변화해 가야 그 긴 세월을 견”디는 게 아닐까. 외형적으로 잃어가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지만 내 안에 쌓아가고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싶은 이유다.     

설 연휴에 보모님 집에 있는 동안 내가 다녔던 대학교로 아침마다 산책을 했다. 캠퍼스를 걷다 보면 싱그러운 추억에 잠기는 게 아니라 회한과 반성에 잠기는 건 왜인지. 교양동에서 본관까지 이 먼 길을 구두를 신고 잘도 돌아다녔네, 후드티에 면바지, 운동화가 얼마나 예뻤을 나이인데 어쩌자고 나는 출근복장에 화장은 또 왜 그렇게 무섭게 했을꼬(실제로 흠칫 놀라는 학우들도 있었다).      


스파 브랜드에서 스무 살에 입었으면 딱이었을 레몬색 후드티와 면바지를 사면서 스무 살에 하고 싶었던 걸 지금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드티, 면바지에 캔버스화를 신고 해가 잘 드는 도서관 창가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고 친구들과 밤새 책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60세 문안 인사로 나는 동동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마흔다섯이라고 호들갑 떨었던 거 기억나? 뭐든 할 수 있는 힘이 있었을 때였는데 다 늙어버린 것처럼 왜 그랬을까?”     


스무 살에  하고 싶었던 걸 지금 해도 늦지는 않았을 거다. 길어진 해는 여전히 하늘에 떠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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