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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an 01. 2022

백숙 같은 글

윤희가 뭘 갖다 주러 집에 들른다길래 내가 “밥해줄 테니까 점심때 와”라고 했다. 그랬더니 윤희가 “오늘 내 생일이야”라며 개인정보를 노출시키는 바람에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생일상에 뭘 차리나.   

   

숙고의 시간을 보낸 후 백숙으로 결정했다. 백숙은 생각보다 만들기 간단하다. 일은 가스레인지가 하고 나는 닭을 목욕시키고 냄비에 앉히기만 하면 된다. 초밥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면서 토종닭 16호를 사 왔다. 다리가 얼마나 크고 튼실한지 제일 큰 냄비도 모자라서 산악회에서 쓰다가 보관하고 있던 들통에 넣고 한 시간 반을 푹 고왔다.    

  

둘이 먹기에는 많은 양이었다. 문득 같은 아파트에 사는 툰자 작가가 생각났다.     

“저희 집에서 같이 점심 드시면 어떨까요? 윤희도 오기로 했는데 같이 드시면 좋을 것 같아요.”

툰자 작가는 식사를 대접받기는 미안하니까 차 마실 때 불러달라고 했지만, 나는 조금도 수고스럽지 않다며 밀어붙였다. 


툰자님과 윤희와 나는 ‘배지영 작가의 에세이 쓰기’ 1기 회원이었다. 배지영 작가는 1기가 ‘듬직한 맏이’ 같다고 했다. 에세이 쓰기 팀이 5기까지 이른 지금에 와서 보면 배지영 작가에게는 다섯 자식 중 첫 아이가 맞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도 ‘처음’으로 가득 찬 경험이었다.      


내가 쓴 글에 대한 소감을 들어보는 건 난생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회원들이 해주는 한마디 한마디를 귀를 쫑긋해서 들었고 나도 다른 사람의 글에 뭐라고 말할까 고심했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쓸 때도 회원들이 생각나서 같이 쓰는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글에 예민했던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다른 회원의 글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표현, 소재가 있으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한테는 있고 나한테는 없는 것 때문에 며칠을 끙끙거려도 글을 쓸 수없을 때도 있었다. 어딘가에 붙들린 기분. 그런 처음 앞에서 서툴렀던 나는(우리는) 모임을 유지하지 못했다. 작가님과 약속한 6개월이 지나고 우리 7명이 어떻게든 모임을 지속하는 방법을 찾았어야 했는데 노력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모임이 끝나고 일 년 만에 만난 툰자 작가는 그동안 고전 필사와 <토지>를 완독 했다고 했다. 오랜만에 그녀가 브런치에 올린 글을 읽고 글을 써왔다고 느낀 건 이것 때문이었다. 이상하게 툰자 작가가 계속 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전에 그녀가 쓴 글에 질투가 났을 때와는 달랐다. 이건 마치 집에서는 싸워도 나가면 챙기는 형제 같은 기분이었다.    

 

“선생님 글을 읽고 펑펑 운 적이 있어요. 학원을 했던 경험,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과정 등 공감하는 부분이 많기도 하고요 선생님 글은 솔직한데 담백하고 깊은 느낌. 딱 오늘 먹은 백숙 같아요. 정성을 들여 오래오래 만든 음식처럼. 글 쓰고 투고하고 힘이 들 때, 준정 쌤 글에 감동받아 울었다는 사람을 기억하세요.”     


다음 날 그녀가 보낸 문자를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백숙 같은 글” 이라니... 내 글을 보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분에 겨운 칭찬까지 들었다.      


“제가 툰자님이 글을 계속 써왔다고 느꼈다고 한 건 그냥 한 말이 아니에요(제가 빈말을 못하는 거 아시잖아요). 툰자님 글 기다릴게요.”     




갓난쟁이가 걸음마를 시작하면 사람들은 박수를 친다. 그 한 걸음에 “잘한다”는 격려를 아끼지 않고, 지지를 받은 아이는 다음 걸음도 기꺼이 내딛는다. 그런 응원은 언제부터 사라지는 걸까. 30대? 40대? 무언가에 도전하기 적당한 시기는 20대까지라고 약속을 한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럴까.    

 

책을 내고 뿌듯한 마음, 부끄러운 마음 반반이었다. 책을 읽었다는데 아무 언급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나의 부족함을 만천하에 광고라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글을 쓴 이후로 누군가의 시작을 응원하는 것이 조금 쉬워졌고 예전에 내가 칭찬, 축하에 얼마나 인색한 사람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결과보다 그 일을 하기 위해 애쓰고, 창피함을 딛고 공개한 용기에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내가 시도하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감정. 책을 읽고 평가하는 일에도 전보다 신중해졌다. 유명 작가의 신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저자가 누구보다 자기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을 테니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 어처구니없게도 베스트셀러 작가를 걱정하기까지 한다. 


백숙 회동 이후 궁금해하던 차에 툰자 작가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다시 마주한 그녀는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고 했다.


“다시 써야지 하면서도 한동안 손을 놓아서인지 내가 쓴 글이 부끄러워서 다시 덮게 돼요.”


계속 잘 쓰는 사람이 있나(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꾸준히 공개하는 사람이 멋있다. 반짝이지 않아도 고심하고 정성스럽게 쓴 글이 감동을 준다. ‘고심’과 ‘정성’을 가진 작가의 글은 대충 읽을 수 없다.     


“토막글을 생각나는 대로 써놨다가 공개하기로 정한 날에 퇴고해서 올리면 어때요? 발행 약속을 지키는 걸 목표로요.”   


“순간순간 이런 글을 왜 쓰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럴 때 함께 고민할만한 주제의 글을 읽고 나의 부족한 글도 누군가에게는 생각할 거리를 주겠지, 싶었어요.”

최근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진우 작가의 <제이쌤, 도와주세요>를 툰자 작가에게 보내주었다. 


이 글의 초안도 6개월 전 툰자 작가를 만났을 때 썼고 이번에 보태고 고쳤다. 툰자님은 내가 브런치에 올린 글 중에 <온수매트는 따뜻하지만>이 자기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아서 좋았다고 했다. 썩 잘 썼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글이 좋다는 말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글을 공개하고 나면 이제 내 것이 아닌가 보다.   

   

작가는 ‘되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쓰면서 끊임없이 생각이 바뀌고 모아지고 넓어지는 기분이다. 이렇게 작가가 되어가는 건가, 계속 써나간다면 그 길에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 그런 기대만으로 길을 걸어도 괜찮겠다.

      

백숙 같은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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