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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Mar 08. 2022

삶이든 정치든 ‘디테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대선후보 3차 토론회에서 안철수 후보가 이재명 후보에게 한 질문이다.

“소득 하위 88퍼센트인 국민에게 지급한 5차 재난지원금을 이재명 후보는 경기도민에게 100퍼센트를 지급했는데 그 결정이 지금도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어서 안철수 후보는 키가 다른 사람이 담장을 넘겨보는 그림을 보여주며 선별복지가 형평성에 맞다고 설파했다.      


이에 이재명 후보는,

“의자를 만드는 돈을 키가 큰 사람이 가장 많이 냈기 때문에 그 사람한테도 혜택을 줘야 합니다. 선별복지보다는 담장을 낮추는 노력을 동시에 해야겠지요.”    

 

일인당 25만 원을 받는 재난지원금을 나는 받지 못했다. 나는 상위 12퍼센트의 소득과 관계가  없지만 서류상의 문제로 그렇게 되었다. 자세한 이유는 말하고 싶지 않지만 나처럼 혜택이 간절히 필요하지만 받지 못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날 토론에서도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을 돌보는 엄마가 이혼한 남편과 딸이 있어서 부양의무자 기준에 맞지 않아 아무 지원을 받지 못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죽음을 선택했고 시신도 6개월간 방치되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나왔다. 몇 개의 조항으로 한 사람의 처지를 판단할 수는 없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세상사를 간단하게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이든 정치든 ‘디테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형평성’을 말하는 안철수 후보의 의견은 언뜻 들으면 맞는 말인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건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사람은 자신의 경험 안에서 판단하는 데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아닐까. 나는 그 토론을 보면서 무릎을 탁 쳤고 이재명 후보에게 ‘경험’에서 체득한 확신을 보았다.     


100분 토론에서 유시민 작가가 한 이야기도 와닿았다.

“어느 분이 대통령이 되든 나의 대통령으로 받아들여야지, 이런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유시민 작가는 보수진영에서는 한 번도 진보 진영의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임기 내내 부정하고 깎아내리는 공격만 해왔다, 이제는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지지한 후보가 당선이 되지 않을 상황을 가정하고 인정하려는 노력은 진영을 막론하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자기의 이권이 달려있는, 후보의 선거캠프의 대표가 나와서 하는 비방식 토론이 아닌 ‘시민’의 자격으로 의견을 나누는 토론이 많았으면 좋겠다.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당선이 되면 한자리 얻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나은 방향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설사 여러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고 입방아에 오르더라도 앞에 나서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시민’ 한 사람이지만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났으면 좋겠다. 아마 유시민 작가도 그런 마음으로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있지 않을까.     


유시민 작가의 말에는 군더더기나 짐작, 부언이 없고 논리 정연하게 핵심만 전달해서 감탄하게 되는데, 나는 그 이유가 늘 글을 쓰고 책을 읽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다듬고 자료를 찾아서 오류가 없는지 확인하는 일을 평생에 걸쳐 해오면서 사고를 정리를 해온 결과가 아닐까. 나의 사고를 둘러싼 껍데기를 벗기고 그 안에 있는 본질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어느새 말과 글은 같아진 게 아닌가 싶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개정판을 읽으면서 나는 유시민 작가를 ‘현역’이라고 인정했다. 매일 읽고 쓰면서 생각을 다듬는 일을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는 사람의 힘은 실로 대단했고 부러웠다. 

     

대학을 들어간 새내기 시절 그는 남산에 올라서 서울의 야경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 불빛들 중 하나가 내 것이 되는 날이 있겠지, 출세를 꿈꾼 적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이십대지만 잔뜩 멋을 내고 대학로를 누비는 대학생과 구로공단에서 불법 노동으로 지쳐 누렇게 뜬 노동자의 얼굴을 보면서 양심 때문에 자신은 출세 안일주의의 길을 갈 수 없음을 예감했다고 했다.   

  

군부독재정치 아래에서 시민의 자유과 인권이 침해받는 상황에서 청년 유시민은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유럽은 우리나라와 무엇이 다르고 어떻게 민주주의를 확립할 수 있었는지 알고자 했고 자기가 아는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다. 그렇게 쓴 책이 <거꾸로 읽는 세계사>라고 했다.     


28세에 쓴 책을 60대가 되어 다시 쓰는 기분은 어떤 걸까. 과거 혈기 넘치는 자신을 독대하는 심정은. 삶을 헛되이 살지 않았다는, 순간순간 힘들었지만 길을 잃지 않고 여기까지 온 자신을 안아주는 기분일까. 삶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곳에 나를 데려다 놓지만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근사했다.   


말은 삶과 일치해야 비로소 힘을 얻고, 글을 쓰면서 부족한 점을 되돌아보는 반성적인 태도가 삶에도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유시민 작가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유명해지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된 이후에도 그가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기도 하다.       

언뜻 들으면 맞는 말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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