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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Apr 18. 2022

실수 연발하던 은행원 친구

내가 학원 강사를 시작할 때 '영'은 은행에 취직했다. 매일 숙취에 시달리면서도 친절한 김사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얼굴에 경련이 나도록 입꼬리를 올리던 김사원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오후 4시 30분이면 하루 입출금을 계산(시제 맞추기)을 하는데 틀리는 날이 신입사원 치고도 잦았기 때문이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플러스가 되는 날은 없고 하나같이 마이너스가 되어 사회초년생의 빈약한 주머니를 털어 메꾸는 일이 연일 벌어졌다.      

고참 직원들이 혀를 끌끌 차면서 몇 만 원씩 적선해준 덕분에 그나마 사원복은 벗어던지지 않던 어느 날, 김사원은 김 선생에게 전화를 했다.  

   

“이번에는 18만 원이야. 아무래도 내가 0을 하나 더 붙여서 돈을 내준 것 같은데 손님이 출금하려던 돈이 얼만지 식으로 구할 수 있지 않냐?”     


그러니까 영은 기부천사처럼 고객이 찾으려던 돈의 열 배의 돈을 내줬고, 고객은 큰 혜택에 감사하며 돌아갔다는 거다. 출금 금액을 알아내면 해당 고객에게 연락해서 사정을 얘기하고 돈을 돌려받을 거라고 영이 설명했다.     


고객이 원래 찾고자 했던 금액을 X로 두면, 

X –X = 0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영이 열 배의 돈을 내줘서 –180,000원이 되었다.


X – 10X = -180,000

-9X = -180,000

X= 20,000     


“20,000원 아니야?”

“어, 맞아. 2만 원 찾는 고객 있었어. 어떻게 찾았어? 식 알려줘.”

“마이너스된 돈을 9로 나누면 돼.”     


열 배를 줬는데 왜 9로 나눠야 하냐고 묻는 김사원에게 식을 설명했더니 다 듣고 난 김사원은 “그냥 9로 나누면 되지?”라고 했다. 중학교 1학년에 나오는 일차방정식이었다.     


특수한 값에 성립하는 등식을 방정식, 특수한 값을 해 또는 근이라고 한다. 해와 방정식은 열쇠와 자물쇠 같다. 해(열쇠)를 방정식(자물쇠)에 대입하면 등식이 성립한다(열린다). 서비스 정신과 거리가 먼 영과 은행은 맞지 않는 열쇠와 자물쇠 같았다.     


웬만해서는 잘리지 않는 서빙 아르바이트도 영은 삼일을 넘기지 못했다. 우리들(벌떼들)은 뭐 그런 악덕 사장이 있냐며 달려갈 것처럼 하다가도 영에게 자초지종을 듣다 보면 그럴만했다는, 어쩐지 사장 심정에 동화가 돼버리고는 했다.




영의 생일, 우리는 아지트 '겔랑'에 모였다. 나는 간신히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뒤늦게 합류했고, 오늘은 어제 마신 술 때문에 알코올 냄새도 못 맡는다며 라면 가닥만 삼키며 (영이 때릴까 봐) 멀리 떨어져 앉았다.  전날 내가 썸남과 시간을 보낼 때 자기를 부르지 않은 것 때문인 것 같았지만, 영은 축하연이 못마땅한 변사또처럼 내내 불퉁거리더니 벌떡 일어나서 화장실에 갔다.


얼마 뒤 화장실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고 영의 사자머리가 불쑥 나와서  “야”라고 했다. 영의 다급한 목소리에 벌떼들이 튀어나갔다. 물론 나도 나가려고 했지만 다리가 후들거리고 샌들에 발가락이 들어가지 않았다. 겨우 발가락 하나를 넣으면 퍽, 야, 삐리리 하는 험악한 말들이 날아들어서 주저앉기를 거듭했다. 참고로 '그날'을 제외하면 우리는 한 번도 폭력시비에 휘말린 적이 없는, 꿀 대신 술을 빠는 행복한 벌들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옆 테이블 손님(여자)이 통화를 하면서 화장실에서 빨리 안 나온다는 이유로 영이 문을 두드리며 친절하지 않은 말을 했고, 인간이라면 가질 수 있는 감정의 소유자로서 옆 테이블 손님은 합당한 반응을 했다. 영은 바로 손님의 머리채를 잡음으로써 육탄전으로 확장했다. 대충 상황이 파악된 벌떼들은 영의 해고 사유를 듣던 그때처럼 옆 테이블 손님에게 동화가 되어 힘을 합쳐 영을 제압하고 있었다. 나는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영 이외에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다행히 이성을 소지하고 있어서 집단 싸움으로 번지지 않았다. 영은 자리에 돌아와서도 “뭐 보노, 죽을래?”라는 정신 못 차리는 말을 하는 바람에 나는 다소 험악해 보이는 두 명의 남자에게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사과해야 했다. 영은 그런 나한테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니는 뭐 하고 있었는데?”

영은 친구가 걱정도 안 되냐며 왜 비겁하게 나오지 않았냐고 했다. 나는 발가락이 샌들에 들어가지 않았던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대해 설명했지만, 정작 친구를 위험에 빠뜨린 장본인은 듣지 않았다. 그 일은 오랫동안 영의 무모한 도발이 아닌 나의 쫄보 증거로 회자되었지만, 이것이야말로 역사 왜곡이 아닐 수 없다.




길고 긴 수업시간에 나는 전날 있었던 남학우와의 만남을 만화로 그려서 돌려보고는 했는데, 영의 자취방 책상 서랍에 내가 그린 만화와 글을 쓴 종이가 가득 있는 걸 발견한 적이 있었다. 

     

“뭐냐?”

“놔둬라. 심심할 때 읽어보는 거다.”     


그러고 보니 영이 나의 첫 독자였다. 무서운 독자. “나 가져도 돼?”하면서 연습장을 찢어서 가방에 챙기던 내 친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기는 160센티미터가 된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영에게 사람 많은 곳에서 찾기가 어렵다며 까치발 좀 하고 있으라고 했다. 세상을 올려다봐야 하는 게 못마땅했는지, 불만 가득한 얼굴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내 친구. 모두 만취하고 자기만 정신을 차리고 있는데 승리감을 느끼고 (변태처럼) 다음날 복기하는 걸 즐기던 내 친구.      


나한테 맞지 않는 열쇠를 갈고닦아 맞게 하는 것처럼 영은 20년째 은행에 근속 중이다. 지금은 시제가 틀리는 신입사원의 등을 토닥이며 9로 나누는 걸 알려줄지도 모르겠다. 친절하게.

영의 헤어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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