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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May 10. 2022

글쓰기에 대한 이토록 '정성스러운 잔소리'

책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에세이 쓰기 수업을 시작한 지 넉 달이 되었을 때, 배지영 작가가 오마이뉴스 기사에 도전해보라고 했다.

      

전에 말한 것처럼 당시 나는 어릴 때 외국에서 살았다고 해야 납득이 될 정도로 맞춤법이 틀렸다. 회원들이 격주마다 단톡방에 글을 올리면 배지영 작가가 프린트해서 첨삭을 해왔는데 유독 내 글만 작가님과 오랜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매달 아파트 대출 이자 50만 원과 상가 임대료 150만 원을 버거워하면서 이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꾸역꾸역 하는 나에게 미소가 찾아온다면 어떨까. 과연 그 친구들과 다른 그림이 그려질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미소가 큰 트렁크 가방을 끌고 계란 한 판을 들고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영화 <소공녀>와 폐업 준비에 관해 쓴 글에 작가님이 말했다.     


“‘미소가 계란 한 판을 들고 나를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이 문장 너무 좋네요.”

작가님한테 들은 첫 번째 칭찬이었고 이제는 칭찬과 격려의 차이를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오마이뉴스 최은경 편집자한테 선생님 글을 보여줬는데 이 정도면 기사로 손색이 없다고 했어요.” 

이 말은 내 귀에 캔디도 아니고 하루 종일 무한 재생되었다.      


내 글이 진짜 기사가 될 수 있을까? 집에 가자마자 오마이뉴스에 회원 가입하고, 글을 보냈다. (이 모든 과정이 결코 순조로웠다고 생각하지 마시길. 이 순간에도 나는 독수리타법이었다)     

 

다음날 오마이뉴스 편집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분에게 전화를 받았다. 기사로 올리기 전에 글에 있는 개인 정보를 공개해도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나를 “기자님”이라고 불렀다!      


“기자님”과 내 글이 채택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몹시 흥분했고, 내 글이 공신력 있는 매체에 인정받아서 뿌듯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시시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지만, 가슴 뭉클하게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 후 삼 년 동안 나는 오마이뉴스에 49개의 기사를 발행했다. 송고한 기사는 80여 편이지만 기사로 채택이 된 것이 49개. 채택된 기사는 잉걸, 버금, 으뜸, 오름으로 나누고 기사료는 각각 2,000원, 15,000원, 30,000원, 60,000원이다. 오름은 딱 세 번 받아봤는데 오름이 된 날은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밥을 사주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째졌다.     


공들여 쓴 글을 보내고 오마이뉴스에 1시간 간격으로 들어가서 확인했지만 ‘생나무’(채택되지 않은 기사)가 뜨면 그냥 나무가 되고 싶었다. 우울한 기분이 며칠 가는 바람에 글도 안 써져서 두세 달 기사를 보내지 않은 적도 있었다. 기사 채택 기준은 글의 완성도, 시의성, 당일 송고받은 기사량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았다(사실 잘 모른다).      


오마이뉴스가 “시민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기사가 될 수 있다”는 취지로 지면을 내주어서 감사하다. 시민들의 도약 발판이 되어주고 응원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요즘 나는 창작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하하) 기사를 보내지 않지만, 오마이뉴스에 대한 고마움은 변함없다.      


책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을 읽고, 나는 배지영 작가와 함께한 글쓰기 수업을 복기(복습)하는 기분이었다. 당시에 몰랐던 말이 3년 6개월의 시간이 흘러서 와닿았다.   

   

“끝에 가서 허무해지는 ‘남 디스’를 멀리하자.”     

억울한 마음에 누군가를 비난하는 글을 쓰고 나면 다음에 글을 쓰는 게 힘들었다. 남보다 내 마음을 들여다봐야 하는 일이 글 쓰는 일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애써 쓴 단어와 문장을 움푹 파이게 떠내지 않으려고 했다. 글쓰기 선생이 한꺼번에 군더더기를 찾아내 버리면 사람들은 자기 검열에 사로잡혔다.”     


책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의 한 구절이다. 누구나 갓난쟁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것처럼 배지영 작가는 모두 자기만의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녀 덕분에 에세이팀 회원들끼리도 단점보다 글에서 좋은 점을 발견해서 말해주며 계속 함께 하고 있다.   

  

삼 년이 넘는 습작 기간 동안 나는 다채로운 좌절을 경험했다. 며칠을 괴로워하다가 글 한 편을 완성하고 좋아하는, 극단의 감정 사이에서 꼬박꼬박 일희일비했다. 이건 생각보다 고된 일이어서 혼자는 힘들었다. 오래 해야 하지만 오래 하기 힘들었다. 글 쓰는 일은 마음만으로 부족하고, 씨앗처럼 물을 주고 가꾸어야 하는 일이었다. 작법서보다 ‘지속하는 힘’이 필요한 이유다.     


책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은 실제로 누군가가 쓰고 싶은 마음을 키워나가도록 도와준 작가가 쓴 글이다. 한번 생기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쓰고 싶다는 불씨를 가진 분들에게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을 추천한다. 작가가 하는 “정성스러운 잔소리”는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다정하게 일으켜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이제 맞춤법 검사기를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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