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단순한 진심>리뷰
조해진 작가의 <단순한 진심>은 언젠가 중도 포기한 책이었다. 소설은 한번 흐름을 잃게 되면 다시 이어나가기가 어려운데 그렇게 덮었던 책이었다. 그러다 새로 가입한 독서모임에서 선정한 책이라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입체적이고 선명하게 다가와서 놀랐다. 이런 이야기였나, 무섭게 몰입되었다.
내가 포기한 책만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발제하는지 지난번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두 권 모두 독서모임때문에 다시 읽었다. 책 한 권을 완주하는데도 사람의 힘이 필요한 건가. 이전에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집중이 흐려질만한 부분에서 다시 붙잡아주는 건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이었다.
사람 만나는 시간을 줄이고 생산적인(?) 일을 하려는 마음이 큰 요즘이었다. 일, 가족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감정만 쓰고 운동, 글쓰기 루틴을 지키고 싶었다.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고 내 질서를 유지하려는 이 마음이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시간 계산을 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언제든 간섭받고 침범하게 되는 게 삶이라면, 단절보다 관계의 기술을 다듬어가야 하는 게 아닐까.
문주, 문기둥이란 뜻의 이름처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늘 문밖에 서성이던 주인공이 두렵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결심하는 과정을 담은 <단순한 진심>은 다른 상황에 있는 나에게 사람들과 기꺼이 함께 하라고 말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문 안과 밖 중 어디인지 돌아보게 했다.
나와 아무 연관이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아닐까. 삶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향해 가는 여행이라면 모르는 사람과의 관계는 여정의 시작이고, 그것이 없는 인생은 플랫폼에 멈춰 있는 기차와 같은 게 아닐까.
부모, 자식, 친구가 아닌 내 호의가 돌아올지 모르는 사이에서 진심일 수 있을 때 삶은 시작되고, 작은 성의는 바람을 타고 어딘가 떨어져 또 다른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게 아닐까. 우연이 나를 만든 것처럼 나도 우연을 만들어갈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삶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닐까.
4살 때 철로에 버려진 문주는 한 기관사에게 발견되어 그의 집에서 일 년간 살다가 고아원을 거쳐 해외로 입양된다. 임신을 한 문주는 뱃속의 아이의 처음을 하나하나 느끼면서 그동안 덮어두었던 자신의 최초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한국에 돌아온다.
문주는 친어머니가 아닌 기관사를 찾고 싶어 한다. 너무 어린 나이라 생모에게 최초로 버려진 기억은 없었지만 기관사의 집을 떠날 때의 기억만큼은 생생했기 때문이었다. 기관사와 기관사의 어머니 사이에서 처음으로 소속감을 느꼈고, 비 오는 날 기관사의 어머니가 만들어준 수수부꾸미는 가족만이 나눌 수 있는 정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문주에게는 맛이 아닌 온기로 각인되어온 음식.
어렵게 기관사를 찾았지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고 대신 그의 딸 문경을 만난다. 철로에서 발견한 아이에게 문주라는 이름을 붙여준 기관사는 자신의 딸에게 문경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수수부꾸미라고 할머니가 비 오는 날이면 그 음식을 해 주곤 했는데 문경 씨도 먹어 봤겠죠?
“아, 그거라면 질리게 먹었죠.”
누군가에게는 몇 번 먹어보지 못했지만 평생을 그리워한 음식이 또 다른 이에게는 질리도록 먹는 음식이라는 설정은 얼마 안 되는 온기에 의지해 살아온 문주와 넘치는 사랑과 관심을 받고 문경의 차이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불공평한 현실 속에도 진심은 존재했다.
문경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기, 제가 한번 안아 드려도 될까요?”
“.......?”
“아빠는 제가 어디 멀리 갔다 오면 꼭 그렇게 해 줬거든요. 저는 오늘 아빠를 대신해서 여기에 온 거고요.”
아주 멀리 돌아서 온 문주를 문경이 기관사를 대신해서 안아주었고 그 품에서 문주는 조용히 흐느꼈다. 외롭게 살아온 문주의 등을 토닥이면서 나도 거기에 기대 울었다. 작은 연대의 커다란 힘을 알게 해 준 고마운 소설이었다. 외로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소설을 읽고 타인에게 좀 더 따뜻한 시선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는 것밖에 없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보면 확실하다.
문주는 철로에 딸을 버린 친부모와 기관사를 원망했지만 한국에서 만난 영화감독 서영, 소율, 은, 연희, 복희에게서 수수부꾸미 같은 훈기를 다시 한번 느끼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과 나눌 이야기를 부푼 기대로 기다린다.